봄소식/靑石 전성훈
날이 무척 춥다. 그냥 추운 게 아니라 뼛속까지 춥다. 한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추위에 약해 겨우내 쩔쩔매며 지낸다. 늦가을인 11월 하순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내복을 꺼내 입고, 다음 해 3월 중순이 되어야 벗는다. 겨울에 외출하려면 다른 계절에 비해 준비가 조금 복잡하다. 내복을 꺼내입고 그다음에 겉옷을 입고 두툼한 외투로 온몸을 감싼다. 마지막으로 장갑을 끼고 귀마개와 목도리를 한다. 마치 젊은 날 강원도 화천 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할 때 입었던 겨울용 중무장 복장 같다. 그렇게 차려입고서 집을 나서도 몇 걸음 걸으면 금세 콧등이 시리고 콧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책스럽게 나이 든 70대 노인네가 콧물을 흘린다. 콧물이 흐르면 곧바로 뒤따라서 눈물이 나온다. 양파 껍질 깎을 때 매워서 눈물이 흐르듯이 어쩔 줄 모르고 눈물이 빗물이 되어 흐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흐르는 콧물도 훌쩍거린다. 아름답지 못한 그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어린 시절 코를 흘려 가슴 한편에 콧물 닦을 수건을 매달고 다녔던 모습이 불쑥 떠오른다. 장갑을 끼었음에도 장갑을 뚫고 들어온 차가운 기운이 손끝으로 파고든다. 손이 시려 손끝이 아려온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기에 추위에 상당히 민감하다. 이런 때에는 바깥출입을 그만두고 곧바로 따뜻한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절기로는 가장 추운 시기가 소한과 대한이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 된 것인지 절기와 계절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듯하다.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이 지나고 이토록 추위가 절정을 부릴 줄 일이야. 연일 매서운 강추위가 세상을 뒤덮어, 가뜩이나 뒤숭숭한 시절에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한다. 지구온난화와 태평양에서 발생한 라니냐현상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추위가 이토록 맹위를 떨치었는데도 한강이 얼었다는 소식을 상당히 늦게 접한다. 그동안 기상청에서 정한 한강 결빙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어린 시절에는 요즈음보다 훨씬 더 추웠던 것 같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골짜기는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올겨울 추위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봄가을이 짧아지고, 여름이 4월부터 11월 초순까지 이어지고 더위도 심해지리라는 전망이다. 우리나라 기후가 4계절 구분이 뚜렷한 온대에서 아열대 지역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가장 크게 보인다는 정월 대보름달을 날이 추운 탓에 밖에 나가서 바라보지 못해서 서운하다. 꽁꽁 얼어붙은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니 여기저기서 봄소식이 전해지리라. 새봄이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는 건 그야말로 반가운 일이다. 옛 어른들 말씀처럼, 가진 것 없는 백성에게는 춥고 배고픈 날보다는, 어깨를 펴고 허름한 옷을 입고도 다닐 수 있는 따뜻한 봄날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봄이 온다고는 하지만 실없는 사람의 헛웃음이나 마음이 헤픈 사람의 가벼운 웃음같이 봄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사리 오지 않는다.
예로부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라는 춘래불사춘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의 한 사람인 왕소군(王昭君)에게서 연유된 말이다. 왕소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멋진 말이 낙안(落雁)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려고 기러기가 내려앉았다고 하는 중국인 특유의 허풍이 돋보이는 말이다. 중국 한나라 11대 황제 원제(元帝) 시절 궁녀였던 왕소군, 흉노 왕의 후궁이 되어 머나먼 북쪽으로 끌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녀의 슬픈 사연. 흉노 왕이 죽자 그 아들의 여자로 한 많은 삶을 살았던 왕소군, 정치적 희생양인 그녀의 청춘과 삶을 위로 하고자 후세 사람인 당나리 시인 ‘동방규’가 추모 시를 지어 바친다. 사진기가 없었기에 사람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구분하던 시절, 왕녀를 대신하여 궁녀 중에 누굴 뽑을지 고민하다가 가장 못생긴 그림의 주인공을 선택해서 보냈다고 한다. 왕소군은 미인이었는데 궁중 화가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그녀 모습이 추하게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은 맑고 신선한 공기와 함께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뇌물이 판치는 세상이다. 춘래불사춘의 본래 의미와는 달리 요즘은 사회나 국가의 모습을 세월과 시절에 빗대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낼 수는 없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라고 하지만, 사람은 육신과 마음과 영혼이 모여서 하나 된 존재이므로 몸이 견디지 못하면 마음도 무너지기 쉽다.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하면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지내야 한다. 저 멀리 남쪽 어딘가에서 봄소식이 들려오리라. 한 겨울 눈 속에 피는 고매한 설중매가 봄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주리라. 그토록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 이제 그 끝을 맞이할 순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처럼, 동장군의 위용도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따뜻한 봄날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리라. (202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