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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합시다.(행16:11-15)
2024, 9/22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6:11-15절 말씀으로“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합시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셨지요? 지난주에 장로님을 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더 밝고 긍정적이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너무 무더워서 힘들었습니다. 추석이 지났는데도 열대야가 계속되더니 그제 비가오더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4개월간 계속된 더위를 끝냈습니다. 진짜 가을이 왔을까요? 하도 질려서 의심이 됩니다. 올 여름은 제가 한평생 살아온 중에서 가장 길고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세워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13절)
둘째로, 복음은 사람을 보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13절)
셋째로, 전도의 결과는 하나님의 몫입니다.(14절)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복음을 전할 때 왜 기도해야 하고, 전도의 결과가 왜 하나님의 주권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13절)
본문 1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아멘.
바울일행이 유럽 마케도니아 빌립보에 도착하여 수일이 지났습니다. 이 기간 동안 바울일행은 그간의 쌓인 여독을 풀면서 앞으로 유럽지역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여러 전도 계획을 세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도계획을 세웠고, 또 전도하는 일이 아무리 급해도 곧바로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 본문의 말씀처럼 먼저 기도로 준비를 했습니다.
바울일행은 일단 몸을 쉬어줌으로 여독이 진정되고 심신이 안정되자 마침 안식일에 혹시 기도할 곳이 있을까 싶어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는 기도처를 찾아 강가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들이 왜 기도처를 찾았을까요? 하나님은 아무 곳에나 계시기 때문에 그냥 쉬는 집에서 기도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굳이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기도처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걸 통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신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영적인 부분이라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코로나 때 교회 나오지 않고 집에서 예배드린 사람들인데, 다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주님도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공동체 신앙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마18:20)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바울일행이 기도하러 강가로 나갔던 것은 유대인들이 회당이 없을 때는 주로 강가 같은 곳에 모여 기도했기 때문인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도 그들은 그발강 가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이는 빌립보지역에는 아직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울일행이 마케도니아에서 본격적으로 전도하기에 앞서 기도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전도에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전도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 영역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기도를 못하는 것은 아마도 기도응답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만약 기도할 때 응답이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응답의 여부는 우리인생 전체를 통찰하시고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무엘과(삼상12:23) 사도바울은(롬1:9) 기도응답이 즉각적이든 지체가 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도에 있어서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은 아들로서 아버지인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도 쉬지 않고 기도하셨다면 우리 또한 기도는 너무도 당연합니다.
오늘 바울일행도 전도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사람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일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인 전도에 앞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뜻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중요한 일이라서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역사는 더 강하게 나타나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합니다. 각종 자격증을 따고, 영어공부를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인생을 배웁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기도가 없으면 성공적인 인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준비위에 충분한 기도가 있어야 성공적인 삶이 가능해집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MLuther)는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답니다.‘전에 나는 한 시간밖에 기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바빠서 세 시간씩 기도합니다.’그러니까 안 바쁠 때는 1시간 기도했지만, 바쁠 때는 3시간 기도했다는 루터의 이 말은 기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겁니다.
이렇게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든, 성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든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엡6: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늘 바울일행이 본격적인 전도에 앞서 왜 기도처를 찾았는지 생각하면서 기도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먼저 시작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시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인생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복음은 사람을 보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13절)
본문 1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아멘.
바울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해 며칠을 쉰 다음 안식일이 되자 기도하러 강가로 나왔다가 그곳에 기도하러 나온 소수의 여자들을 만나 첫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유럽에서 첫 전도치고는 참 소박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는 보통 사도바울이 전도를 하면 수백 수천 명씩 모여 복음을 듣고, 또 여러 기사와 이적들이 나타나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될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는데, 본문의 장면은 의외로 너무도 평범하고 조용하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어서 놀랍습니다.
더구나 성령께서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셨고, 또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조용하고 소박한 전도는 더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걸 볼 때도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거나 우리의 생각 이상의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삶속에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의 유럽전도는 그 시작이 너무도 미약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일행은 개의치 않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시 말해 모인 사람들의 숫자를 보지 않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사람의 숫자를 따지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자유자든 종이든,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바꾸면 말하면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럼에도 한 영혼을 너무도 가볍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한두 번 찔러보고 안 될 것 같으면 쉽게 포기하는데, 만약 그 영혼의 가치가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을 안다면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요즘은 옛날과 달리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라 전도에 몰입하면 스토커 취급을 받고, 또 사회의 부정적 시각으로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영혼의 가치를 생각하다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겔3:11절입니다.“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이렇게 전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27절에“...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복음을 받는 자도 있고 받지 않는 자도 있다는 겁니다.
말씀은 듣고 안 듣고는 그들의 책임입니다. 다만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딤후4:2절에“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이렇게 말씀합니다.
과거 부흥회가 유행하던 시절에 일부 유명부흥사들이 교회 싸이즈가 작으면 오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는데, 이런 건 오늘 바울일행이 복음을 전하는 모습과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도자로서 복음을 전할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사람의 숫자가 얼마든, 형편이 어떻든 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맞습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물론 수천, 수만의 청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시기도 하셨지만,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내려가던 이름 없는 두 제자를 찾아가셔서 자신이 부활하신 주시며 메시야임을 일깨워 주시기도 하셨습니다(눅24:13-35)
또한 함께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고 헤매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오시기도 하셨습니다.(눅15:4)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전도자로서 사람이 많든 적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사실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이 많다고 회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이 적다고 적은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 전했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함으로 천하보다도 귀한영혼을 살려내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전도의 결과는 하나님의 몫입니다.(14절)
본문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아멘.
바울일행이 낯선 마게도냐 빌립보에서 적은 일단의 여자들에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옷감장사를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던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였고, 그녀가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이걸 통해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되는데, 바로 복음은 내가 전하지만 그 회심의 여부, 다시 말해 그 결과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입술을 열어 많든 적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그들이 예수를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 복음만 전하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속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우리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로 나와 함께 신앙의 길을 함께 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아도 전혀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들의 회심의 여부가 바로 하나님이 결정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고, 그분이 이끌어 가신다는 뜻인데, 하나님의 이런 능력을 믿고 우리는 그냥 묵묵히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서든 교회에서든 우리가 감당할 일들을 잘 감당해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라면 복음을 받아들일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자라면 무슨 말을 해도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라도 아직 그 때가 아니라면 복음에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누가 구원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하다보면 백 명 중의 한 명이라도, 아니 천 명 중의 한명이라도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혹 만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위축되거나 실망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복음을 잘 전하는 유능한 사역자라도 사람의 마음까지 변화시킬 능력과 권한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러실 수 있기 때문에 전도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듣든지 안 듣든지 복음을 전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영접하고 돌아서면 너무 감사한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그냥 털어버리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고전3:6-7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 다시 말씀드립니다. 복음을 전할 때 전도자를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열심히 전하지만 성과가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럴 때 그 결과까지 책임을 지려고 하면 낙심되고 힘들어서 못합니다.
다만 기도하면서 전도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복음을 전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때문에 잘 된다고 날뛰거나, 안 된다고 코 박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 선택된 자들보다는 선택되지 못한 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거부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인데,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그리고 전도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이 원칙은 우리 인생살이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때문에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면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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