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이 완연하다.
신정호(충남 아산)에 도착한 시각은, 지금 이순신 종합운동장에서
‘제97회 전국 체육대회(2016.10.7~10.13)’가 열리고 있는 10월9일
일요일 오전 9시.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지만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글씨를 수놓은 듯,
신정호수 위를 눈부시게 비췄다.
파아란 하늘을 이고 서있는 은빛 억새 사이로 신정호의 물결이 도도
하게 밀려오고, 주위가 만들어 내는 황금빛깔은 흥분의 카타르시스를
몰고 간다.
작년 12월(2015년) 나는, 8살 때 떠나온 고향(충남 아산시 선장면 가산리)
에, 80 후반의 친척 어르신만이 굳건히 지키고 있는 ‘단쟁이 마을(가산리
의 다른 이름)’을 53년 만에 찾아가 소원을 푼 일이 있다.
그리고 꼭 10개월 만에 다시 찾은 고향 길이다.
그토록 고향 찾는데 반세기가 흘렀다면, 열 달만의 두 번째 고향
방문은 ‘전국 체육대회’가 아산(충남)에서 열리게 된 바 크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한 번이 어렵지 다음은 쉽다’고.
주위 풍광에 매료되어 찬찬히 걷는데 오래된
고목나무 앞에 국화가 놓인 커피 집이 나온다.
분위기에 젖어 마시는 커피는 마음에 평화가
찾아든다.
신정호의 본래 명칭은 ‘마산 저수지’였다,고
하는데 1926년에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그 마산정馬山亭 에 올라서니 바람이 오르
내리며 가지를 흔들고 있다.
무리 지어 있는 연꽃은 철이 지나있고, 이어
국화꽃 향연이다.
푸른 하늘과 신정호를 가득 채운 국화는 빛났다.
혼자 걸어도 오롯이 혼자가 아닌, 국화야 어찌 홀로만 곱단 말이냐.
저기 줄이 길게 늘어진 그네가 보인다.
그네
여울 맹주상
봄바람에
버들잎이
즐거웁다
하늘하늘
실가지에
매달리어
그네를
타네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신정호 찾는 방문객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선수단, 임원단 여러분
아산에 오신 걸 환영 합니다’
전국체육대회 기간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꽃수레
한정식’ 앞에도 걸려 있다.
아산 시내 전체가 환영일색이구나.
이렇게 느긋하게 고향 땅을 밟아본지가 얼마만이냐.
54년 만이라면 ‘전국 체육대회’가 열리는 덕 아니더냐.
부부가 밀짚모자 쓰고 다정하게 밭을 매는 그 풍경을 지나 지붕 낮은
어느 한 집에 이르렀을 때, 개가 컹컹 짖는다.
그만 짖어라 개야, 나는 남이 아니고 고향 사람이란다.
고향 땅에서 얼마만의 호사냐.
그저 대지에 발을 디딘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인데, 여기에 무얼 더 부여
하겠는가.
고향 바람은 부드럽고 아늑했다.
포근한 마음으로 감싸주는 어머니 품 같은 곳이어서 일 테지만.
신정호를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배도 고프구나.
촌장골 대형 식당 마당에 만국기가 펄럭이는 걸 보니 이제 새로 문을
연 식당인가 보다.
이번 고향 길 2박3일 일정은 짧았지만 오래 기억될 추억 안고, 나를
키워준 제2의 고향 부천으로 올라가련다.
이 인연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일 년에 한두 번 고향 땅을 밟아 보려 하지만,
그런데 이런 말은 하기 쉬워도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공언하고 싶은 것은 그 곳이 내 탯줄을 묻어 놓은 고향
이기 때문이다.
찾아가 고향의 향기를 맡으리라.
그것만이 늦게나마 고향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다.
아산은 나에게 그런 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