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구마 기적은 오늘날에도 가능할까?
히브 2,14-18; 마르 1,29-39 / 연중 제1주간 수요일; 2023.1.11.
우리가 연중시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듣게 된 복음에 의하면, 질병에 걸려 아픈 사람들이나 마귀에 들려 고생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막 공생활을 시작하셨음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인데, 그 이유는 기적이 일어났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문은 순식간에 전국에 퍼져서 갈릴래아 지방은 물론 유다 지방, 티로와 시돈 같은 해안 지방, 데카폴리스 같은 내륙 지방에서도 질병과 마귀로 인해 고통받던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치유와 구마 활동이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행하신 대표적인 활동이었다는 것과, 그 활동에서 종종 기적이 일어날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활동에 하느님의 능력이 내리시도록 진정성 있게 임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제자들을 비롯한 군중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에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오늘 복음 말씀을 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병을 앓고 있거나 마귀 들려 고생하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가난한 이들을 그저 불쌍하게만 여기지 않으시고 하느님께서 이들을 당신 나라의 귀빈으로 여기심을 믿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이들의 것이었고(루카 6,20), 그래서 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결정적 징표로 삼으셨습니다(루카 4,18-19). 그러므로 당신을 본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행한 사랑을 잣대로 해서 모든 사람이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엄숙히 선언하셨던 것입니다(마태 25,40). 그리하여 질병이나 마귀 들려 고통받는 이들을 보시면 마치 당신이 그런 고통을 받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애끓는 마음에서 도와주시려는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마주치셨을 때 비록 그들이 당시 율법적 관행으로는 죄인으로 낙인찍혀 있다 할지라도 그런 선입관에서 벗어나 아주 인격적으로 대하셨습니다. 이러한 인격적 태도는 ‘부러진 갈대와도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도 같이’(이사 42,3)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상처받아 소외된 그네들의 자존심과 선택권과 주체성을 존중하셨음이 모든 치유와 구마 기적 사례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치 기적의 능력을 보유하신 것처럼 자신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그 어느 경우에라도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보살펴주시도록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는 기적의 시혜자가 되셨던 그분의 믿음은 물론 수혜자의 믿음도 똑같이 필요로 했던 일이었습니다. 기적은 믿음의 결과이기에 이 두 믿음이 동시에 발휘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기적이 일어난 후에는 반드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도록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셨고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와 선행을 해야 한다고 요청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관심사는 당신의 나라가 세상에 세워지는 것이요, 그 나라를 위해 일할 당신의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수학의 공리와도 같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에도 길 잃은 양떼와도 같은 이들, 즉 가난하여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라고 명하셨으며, 그들이 앓고 있으면 고쳐주고, 그들이 마귀 들려 있으면 그 마귀를 쫓아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겸손하면서도 청빈하게 찾아갈 것을 주문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도처에 흩어져 사는 토박이 지지자들이 나머지는 다 알아서 챙겨줄 것이니 자기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챙기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실제로 예수님께서 생활하시고 활동하신 방식 그대로를 제자들에게 따르도록 요구하신 일종의 파견수칙이었습니다.
과연 파견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에 충실하였고, 그 결과로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습니다”(마르 6,13). 이렇게 하여 그들은 사도로 양성되었기에, 초대교회에서도 “많은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고”(사도 2,43) 이를 본 신자들도 믿음이 굳세어져서 빵을 떼어 나누는 일 즉 성체성사에 열심히 참여하였고, 그 기운으로 자기 재산을 자기의 소유로만 고집하지 않고 공동의 소유로 내어놓아서 가난한 이들이 궁핍함을 덜 수 있게 하는 공동생활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사도 2,42;4,32). 이렇듯 복음적으로 이룩한 변화가 박해를 일삼던 로마인들을 끝내 신앙에로 돌아서게 했음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치유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복지, 의료보건, 병원 운영과 환자 사목 등의 활동은 물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악을 몰아내려는 상담, 정의평화 등의 구마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이런 치유와 구마 활동이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치유 및 구마 활동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현실을 당연시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믿음을 발휘한다면 오늘날에도 치유와 구마의 기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보다 ‘더 큰 일’(요한 1,50; 5,20; 14,12)도 할 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