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스테드먼 존스의 <우주의 거장들>을 읽고 있다
2장: 1940년대: 신자유주의적 비판의 등장편
루드비히 폰 미제스에 이어 <노예의 길>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자유주의 사상적 뿌리의 하이에크. 그가 칼 포퍼와 달리 사회주의 역시 경제적 측면에선 전체주의의 일환으로 보며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인간은 누구나 타락할 수 있다
이 이론이야말로 플라톤의 <철인정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상이란 생각인데,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처럼 결과를 분배하는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정부 지배계층이 누구에게 얼마를 분배하느냐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문제는 그들 자신도 권력에 취하면 얼마든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에 국가가 분배를 주도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즉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지배계층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표면적으론 결과적 평등을 외치지만 결국 그들 생각은 대중은 우매하니 국가가 (즉 우리가) 알아서 계획하고, 이끌어주고 나눠줄테니 국가 계획에 따르라는 행동을 취한다. 사회주의가 시간이 흐르면 결국 지배층이 필연적으로 타락하며 전체주의화하는 이유말이다. 이에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지배계층도 결국 타락할 수 있기에 국가가 모든걸 계획하고 주도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게 설혹 플라톤이 선호한 철인 지배계층이라 할지라도
둘째. 피지배계층도 타락한다
더불어 하이에크는 국가가 모든걸 계획하고 결과적 평등원칙에 따라 분배까지 주도하면 이는 결국 한 사회의 피지배계층마저 결과적 평등에만 매달려 도덕적 타락을 하게되고, 이는 한 사회가 기울어가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거 증명하는 수많은 국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남미 국가들. 남미에서 좌파 포퓰리즘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우파 정권이 들어서도 포퓰리즘을 끊어내지 못하고 계속 정치적 혼돈과 그에따른 경제적 침체가 반복되고 있다
셋째. 경제적 자유없는 정치적 자유는 의미없다
사실 난 이 부분이 하이에크를 통해 새삼 사회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부분인데, 하이에크에 의하면 사회주의자들은 표면적으론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외치며 정치적으로 굉장히 이상적인 사회구현을 주도하는것 같지만, 정작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며 실질적으론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가 된다는 주장이다. 쉬운 예로 부동산 규제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이에크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처럼 자유방임국가를 주장한건 아니라는 사실. 분명 정부는 필요하고 국가의 역할은 있어야 하지만 하이에크에 의하면 국가는 심판만 봐야지 감독이나 더 나아가 구단주 역할까지 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사회주의는 결국 메시가 후보선수와 같은 연봉을 받아야 선한 사회라는 이념이기에). 케인스는 국가가 감독해야 한다 정도이고, 사회주의는 국가가 구단주 역할까지 해야 한다. 뭐 이렇게 이해하면 좀더 쉽게 이해되는 듯 하다 (전체주의는 승부를 정해줄 것이고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산물인 축구단 해체니까 열외로 하자).
한가지 흥미로운건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자들이 국민 선동에 상당히 능하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선동에 상대가 안된다고 판단했다고. 해서 탄생한 것이 몽팰르랭회라고 한다.
첫댓글 '경제적 자유없는 정치적 자유는 의미없다'는 말이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단적으로 부동산 규제를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사회주의 지배층도 결국은 타락한다'는 말도 지난 정부를 통해 깨닫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일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일자리와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던 교황이 말이 생각나며
인간은 누구나 타락할 수 있다는 하이에크의 주장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데
나의 욕망, 욕심도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함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매순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할 수 있다! 는 것이 큰 통찰인 것 같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개별 존재라는 인식으로 자신의 의지를 소리 높이 외칠 수 있지만, 인간의 욕망과 타락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확실히 국가는 심판을 보는 존재여야 한다.
피지배계층도 타락한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싶다. 좌파정권하에서 이루어진 포률리즘을 우파정권이 쉽게 거두어 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새로운 정권이 바뀌어도 피지배계층은 이전 정권하에서 누렸던 혜택에 +알파를 원하지 -알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의 혜택을 거두어 간다면 국가의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 내가 누렸던 것들이 적어지기 때문에 정권에 반감을 사기 쉽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