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오후 1시. 충주 탄금대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로 잘 알려져 있는 감자꽃 노래비 아래로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해마다 열리는 ‘권태응과 함께 하는 어린이 시인학교’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충북은 물론이고 서울 경기 강원 등 전국에서 왔다. 어린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2박 3일 간의 시인학교 캠프에 참여하게 된다. 어린이 시인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는 이안 시인은 “권태응 시인의 생가터와 나고 자란 마을을 둘러보고 산소를 찾아 인사드린 후, 살미면의 팔봉자연학습원에서 3일 간의 자연체험을 시로 써 볼 것”이라며 전체 일정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2014 권태응 어린이 시인학교의 2박3일 간 기록을 9~10월경 어린이시집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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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주 살미면의 팔봉자연학습원에서 ‘어린이 시인학교’가 열렸다. | 1997년 권태응문학제로 시작한 이 행사는 동시로 사랑받고 있는 시인을 기념하면서 점차 ‘어린이 시인학교’로 자리 잡았다. ‘권태응과 함께 하는 어린이 시인학교’는 충주작가회의가 주관한다. 올해는 충주작가회의 이외에도 동시를 쓰는 여러 지역의 시인들이 어린이 시인들을 만나기 위해 교사로 참여하여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됐다.
철없는 아이도 모두 시인
경기도 남양주에서 형제를 데리고 온 아빠 차용복 씨는 “아이돌 노래를 듣고 스마트 폰을 끼고 사는 아이들에게 잠시 쉬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생각에서 매년 참여하고 있다”며 “첫째가 4학년 때 처음 참가해 보고 하도 좋다 하니까 동생도 가고 싶다고 해서 이번엔 둘이 왔다”고 말했다. 6학년이 된 승빈이가 3년째 계속 참여한다는 것도 다른 캠프와 비교할 때 흔한 일은 아니다. 살펴보니 고학년 어린이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시를 쓰는 캠프에 온 10대들이 서로를 만나는 것도 특별한 체험인 셈이다.
이안 시인은 “고학년들은 글이 설명형이고 산문화돼있다. 저학년 아이들의 직관과 느낌이 더 살아있다”며 아이들의 오감을 되살리는 자연체험이 시인학교의 주된 일정이라고 전했다. 2일차 체험의 주제는 마을 냇가와 논둑을 무대로 ‘찰방찰방 다니고, 와글와글 놀고, 똘방똘방 시쓰자’이다. 어린이 시인학교에 처음 참여한 김개미 시인은 “동시를 쓰는 작가로서 아이들과 밀착해서 오랜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배움의 기회다.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다 선생님이다”라며 작가의 입장에서 어린이시인학교의 장점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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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안 시인과 자연체험을 위해 마을 어귀로 나선 아이들 모습. | 시인학교에 참여한 아이들은 권태응 시인의 동시를 여러 편 감상하고 농촌마을의 자연에서 놀다가 그 느낌을 그대로 담아 시를 쓴다. 시를 쓰지 못하는 아이는 한명도 없다. 자신들의 말이 곧 시이기 때문이다. ‘어둠 체험이 끝나고 돌아가는데 / 선생님이 깜짝 놀래켜 주셨다. / 그래서 울까 말까 / 고민하다가 친구가 있어 울지 않았다’. 작년 시인학교에서 충주 국원초 3학년 이자연 어린이가 쓴 시다. 순간에 집중한 느낌이 살아있다. 시인학교에서는 느낌을 잘 살리도록 글을 다듬어 보는 연습도 한다. 어린이들이 쓴 시는 하반기에 시집으로 묶여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번 어린이시인학교는 안전지수가 매우 높다. 이화여대 직업환경의학과 강순환 연구교수가 응급의료품 기부와 자원봉사로 참여하면서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꼼꼼하게 점검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먼저 현관에 구급약품상자를 펼쳐놓아 오가며 안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열이 나는 아이가 발생하자 “약은 먹였지만 잠시 쉬게 하고 죽을 좀 만들어 줘야겠다. 먼 길을 나선 아이들은 긴장감 때문에도 열이 난다”고 설명했다. 죽을 먹는 아이 옆에서 말을 걸며 함께 식사를 하는 강 교수의 모습에서 마음부터 어루만지는 진정한 응급대원의 향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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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프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 권태응문학관 건립, 어린이문학의 메카로
권태응 시인은 충주에서 나고 자란 동요시인이자 독립운동가다. 일제시대 일본에서 독서회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다. 이때 병을 얻어 고향에 돌아와 요양하며 동시를 썼다. 탄금대의 감자꽃 노래비는 1968년 제 18회 어린이날 윤석중·윤극영·이원수·박영종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시작가 5인에 선정된 것을 기념해 세워졌다. 어린이문학계에서는 권태응 시인의 자리가 뚜렷하지만 지역에서 권태응 시인을 기억하고 기념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기념행사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감자꽃>과 <땅감나무> 등 간결하면서도 순수한 어린이의 시선이 담긴 동시들이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권태응 시인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한 축에는 묵묵히 뜻을 기리며 그의 시를 알려온 충주작가회의 시인들의 노력이 있다.
충북작가회의는 권태응 시인의 시와 동시의 세계를 알리고 지역작가를 기념하기 위한 권태응 문학관 건립을 제안한 바 있다. 어린이 시인학교를 이어가고 상설 동시교실을 운영하여 문학층의 저변을 넓히면서, 자료실·전시실·세미나실 등 기념관 기능에 충실한 문학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태응시인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과 함께 어린이문학의 메카로 발전해 나갈 토대를 마련하자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지역 작가와 예술인을 발굴하여 주요 지역문화컨텐츠로 유치하는 요즘 충북도와 충주시 등 자치체의 무관심이 의아한 상황이다. 어린이 문화육성의 시각에서도 어린이시와 노래 및 공연으로 확장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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