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스러움을 넘어(2) 2022.11.07
요즘에도 코로나 감염자 숫자가 속보로 날아오고, 물가 오름세는 계속되고, 대출 기준 금리는 큰 폭으로 올랐는데 앞으로도 더 오름 조짐을 보이고, 이태원 골목길에서 사람끼리 눌린 사고, 그리고 그 원인과 처리 과정을 둘러싼 저질스러운 주장들... 즐거움을 주는 게 거의 없습니다. 짜증 거리를 몇 개 찾았습니다.
양방향 통행을 막는 사람들
통로는 통하기 위해 있습니다. 통로를 막는다면 문제입니다. 이태원 사고는 사람끼리 통로를 막았기에 생겼습니다. 통로가 아주 넓으면 좋겠지만, 이는 정도 문제입니다. 언제든지 원활하게 통행할 수 있는 통행로를 만들 수 없습니다. 통로가 붐빌 때 사용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침 열차가 와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를 때, 오르는 사람들이 계단을 모두 차지합니다. 급히 차를 타야 하는 사람은 발을 구르고, 오르는 사람을 밀쳐보지만, 오히려 길을 막은 사람이 독기 든 눈으로 째려봅니다. 어쩌라고요! 아무리 사람이 밀려도 맨 오른쪽에 한 사람은 내려갈 수 있도록 비워 둡시다. 조금 느리지겠지만, 사고는 생기지 않습니다. 이태원 골목 너비가 3.2미터였다는데, 십만여 명이나 모인 곳에서 골목길 너비를 10배 32미터로 넓힌다고 하여 저런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요? 차를 몰 때, 길이 좁아지면 번갈아 가면서 들어갑니다. 걸어가는 사람은 더 잘 지킬 수 있을 테지요.
전동계단에서 걷게 하자
지하철 타려고 전동계단(에스컬레이터)을 탈 때 글이나 방송으로 ‘걷거나 뛰지 말라.’고 안내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는 사람들이 걷습니다. 나도 걷습니다. 바쁜 사람이 느리게 움직이는 기계에서 하염없이 서서 기다리라고 하는 게 이치에 맞습니까? 어떤 사람은 걷거나 뛰면 기계가 쉽게 망가진다. 또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기계는 기계에 걸리는 짐(하중)을 견딜 수 있게 설계하여 설치하면 됩니다. 계단에는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어서 걷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에 비해 크게 위험할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쁜 사람을 못 움직이게 붙들어 둠으로 생기는 불이익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걸어 오르내리는데 걷지 말라고 하니, 항상 죄지은 기분입니다. 시골 한적한 길에 교통 신호등 달아놓고, 차가 없는데도 교통신호를 지키는지 멀리 숨어서 지켜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동계단에서 걷기는 풀어줍시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전동계단 왼쪽을 막고 서 있는 사람이 참 얄밉습니다.
객차 안에서 배낭 멘 사람이 문자질까지
지하철 열차가 출발하려고 문이 닫히는데 서둘러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을 돌려 타는데 등에 배낭이 있습니다. 배낭이 사정없이 안쪽에 있는 사람의 가슴과 얼굴을 짓누릅니다. 숨이 막힙니다. 지하철 차 안에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진 자, 그 짐을 내려놓으라.’고 홍보 방송도 나오는데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람 윗몸 쪽은 빠듯하고 다리 쪽은 공간 여유가 있습니다. 배낭을 벗어 아래로 내려 들면 그만큼 공간을 효율 높게 씁니다. 자기가 멘 배낭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모를까요? 하긴 자기가 불편할 것은 별로 없으니 모르는가 봅니다.
배낭을 멘 채 전화기를 꺼내 입력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황당합니다. 그러려면 팔은 내밀고 자연스레 등은 뒤로 제쳐야 합니다. 뒤에 선 사람은 숨이 막힙니다. 그런데도 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참을성도 좋습니다. 차 안 풍경은 우리가 만듭시다. 배낭을 멘 채 서 있는 사람을 보면 배낭을 툭 치면서 내리라고 요구합시다. 그래도 배낭을 내리지 않으면 주변에 선 사람들이 째려봅시다. 같이 탄 사람이 저 사람 때문에 왜 불편해야 하냐고요. 차를 타면 주변에 있는 배낭족을 찾아내 짐을 벗으라고 합시다. 물론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대에서는 봐주고요.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정류장이 왜 따로 있나?
시내에서 버스를 타려다 보면 이상한 모습을 봅니다. 시내버스(+광역버스) 타는 곳과 마을버스 타는 곳이 떨어져 있고, 버스 도착정보판도 각각 있습니다. 1대가 서는 마을버스 타는 곳에는 지붕이 있는 구조물과 앉을 곳이 있는데, 여러 노선 시내버스 타는 곳에는 벤치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시내버스 타려고 할 때 비가 오면 도리 없이 비를 맞아야 합니다. 겨우 30여 미터 떨어져 있는데 제각각입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차를 놓치기 딱 좋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마을버스와 시내버스 행정주체가 달라서, 즉 구청과 서울시청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시민으로서 보면 이상합니다. 이용자는 시민이자 구민인데, 서울시청과 구청은 저런 것을 왜 협의하지 않을까요? 시청과 구청 담당자를 찾아 혼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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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미터 떨어져 제각각 설치한 버스 타는 곳
선진국은 어떤 뜻일까요? 각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체계는 정교하고 치밀합니다. 1988년 올림픽 경기를 유치했을 때,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집이나 담장을 칠하고, 길가에 있는 보신탕집 간판을 가리거나 문을 닫게 한, 참으로 유치한 행정을 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 행정을 더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정교하고 꼼꼼해져야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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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