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만나고 헤어진다.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고 때로는 질긴 인연으로 만나 오랜 기간 만남을 이어간다. 남녀 간의 만남과 이별은 살아가면서 계속되는 관계다. 친구나 연인으로 만났다가 헤어지고 부부로 만나 긴 세월 같이 지낸다.
아버지가 구급차 도움으로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급히 병원으로 갔으나 여전히 코로나 문제로 보호자의 중환자실 출입이 되지 않아 출입문 입구에서 통화만 했다. 정신은 맑고 목소리는 작았다. 좋아질 것이니 힘을 내라고 말씀드렸다. 힘들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핸드폰으로 듣고 돌아섰다.
일주일이 지나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많이 나아져서 일반 병실로 옮겼고 차도를 봐가며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잘 이겨 내어 다행이지만 일어나 앉기가 힘들다 했다. 금요일 오후 휴가를 내고 진주로 갔다. 퇴원하면 집에서 사용하도록 의료용 전동 침대를 주문했다. 낡은 소파를 바꾸기로 하고 가구 판매장도 들렀다. 병원은 여전히 보호자 한 사람 외에는 가족의 병원 출입이 제한됐다.
오후 다섯 시 정도에 전화로 내일 아침에 병원으로 가겠다고 통화했다. 간단히 집 정리를 한 후 저녁을 챙겨 먹었다.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저녁 여덟 시 반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말없이 울먹이기만 했다. 왜 그러냐고 두세 번 물었을 때 너 아버지가 갔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담담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음이 편안했다. 주말에 뵐 때마다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폐 기능이 이십 퍼센트 정도 남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의사가 내게 물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심장 압박, 전기충격 치료를 거부한다고 보호자로서 서명했다. 대신 아프지 않게 치료해 달라고 했다.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는 예전의 말씀을 기억했다. 한 달여 전에는 자식들과 손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아흔 생신 케익 촛불을 끌 정도로 건강했다. 이별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형제들과 가까운 친지에게 부고를 알리고 병원으로 갔다. 일반 병실 침대에 가림막만 치고 잠자는 모습으로 그대로였다.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를 떼어 내고 아버지의 신체에 흰 천을 덮고 안치실로 침대를 밀고 갔다. 고향 마을에 평소에 알고 지냈던 장례지도사를 불러 수의는 최고급으로 하고 관 속을 꽃으로 가득 채워달라고 신청했다. 운구 차량은 별도의 리무진을 준비시키고 장례 절차를 맡겼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가족 모두 병원으로 가니 입관식 준비가 다 되어있었다. 깔끔한 수의를 입고 상주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도록 얼굴만 열려 있는 상태였다. 옆에서 있던 어머니가 잠시 멈추라고 하고 급히 둘째 손자를 데리고 가서 오래되어 누렇게 된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봉투에는 한자로 두 글자가 있고 봉투를 열어보니 한자로 네 줄이 적힌 한지 한 장이 있었다.
"너 아버지가 나한테 보내온 혼례 청한 서신이다. 품속에 잘 넣어라. 내 것도 있으니 다음에 나도 그렇게 해줘라.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후세에 다시 만난다더라."라며 당부했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봉투를 수의 품속에 넣었다. 귀한 서신이라 가보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후세에 만나야 한다는 바램을 떨칠 수 없었다.
경주 장흥 김주운, 다시 엎드려 절합니다. 때는 한창 겨울로 접어드는데 존체는 만복 하신지요. 저의 차남 선택이 나이가 장성하였으나 아직 배필이 없사오니 딸을 아내로 주심을 선인들이 정하신 예를 따라 납폐納幣의 의식을 행하옵니다. 예를 다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어르신께서 살펴 주십시오. 삼가 절하여 글을 올립니다.
-병신 동지 열사흘(1956. 11. 13) 한창 군 복무 중이던 스물네 살 총각 집에서 열여덟 살 처녀 집으로 보낸 혼인 요청서였다. 집안끼리 맺은 청혼서인 셈이다. 꼭 66년 전에 자녀 혼례를 위해 서신으로 예를 갖추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약혼을 한 것이다. 나중에 휴가를 나와서 집에 인사 왔을 때 인물이 참 좋더라고 했다. 육 개월 정도 뒤 다음번 휴가 나왔을 때 혼례식을 올렸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학식이 있거나 집안에 학자가 있어 한자로 서신을 보낼 정도의 집안이 아니었다. 서신은 어딘가에 의뢰해서 적었을 것이다. 할아버지 세대도 빈농에 세끼 먹고 살기 어려운 집이었다. 그래도 혼인 만큼은 집안 간의 맺음이므로 정중히 예를 갖추고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도록 맺어 주었다.
장남이 객지에서 고생한다고 결혼하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빠른 스물일곱 살에 결혼했다. 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집안 어른이 주례를 섰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지키고 집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바르게 살 것이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부부로로서 의를 다할 것을 주례 앞에서 맹세합니까?"
"네." 그렇게 부부가 되고 35년 동안 함께 살고 있다.
부모 형제간에도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는 일이 있다. 남남끼리 만나서 부부가 되는 것이라 한평생 잘 지내며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비바람이 불면 우산을 같이 쓰고, 건너야 할 물길을 만나면 손을 잡고 조심조심 같이 지나왔다. 간혹 부부간의 어려움이 있을 때는 주례사의 말씀을 기억했다.
서른다섯 살 된 첫째가 좋은 사람이 있어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결혼식장에 와주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집안 행사인데 절차와 혼수품은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집안 행사가 아니라 둘이 결혼하는 것이니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한다고 했다. 요즈음은 예물로 여자 측에서는 신랑에게 명품 시계 하나 선물하고, 남자 측에서는 신부에게 명품 가방 하나 선물하며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준비한다고 했다. 명품 선물 하나에 만족하는 결혼이 단순해서 좋으나 너무 가벼이 보였다.
남녀가 너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상이 됐다. 이혼한 것을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돌싱이라 하고 그들끼리 모여 웃으며 노는 TV 오락 프로그램도 있다. 좀 더 신중하게 만나고 조심스럽게 대했다면 쉽게 멀어지지 않고 길게 잘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는 날이 있었다. 때로는 격한 감정으로 말을 함부로 하기도 했다. 길었던 66년의 세월을 부부로 살고도 후세에 또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천지신명天地神明도 그 약속은 지키도록 도와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