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自由), 내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원망과는 상관없는 어떤 외적 노력으로 통제되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내가 자유롭다는 것은 나의 충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입법한 혹은 나의 의지와 원망에 의해서 용납된 통제 원리를 스스로 준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통제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 형태라는 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결국, 이것도 독립한 국가 형태일 때 가능해진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식민지일 때, 그 한 국가는 독립을 얻기까지는 자유 국가라 할 수 없다. 한때 타국의 통치 아래에 있다가 스스로 통치하게 된 국가가 되었다 해도 그 자주 통치는 타국의 지배보다 훨씬 더 억압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국가는 여전히 자주독립의 국가이며 또한 자유 국가이다”라고 했던 철학자 조엘 파인버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라 없는 자유의 무의미함을 역설적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같은 8.15이지만 우리는 해방일(解放 日)이고, 일본은 패전일(敗戰 日)이다. 어쩌면 우리는 해마다 맞는 광복절의 참뜻을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B라는 결과로 A라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문화의 섭리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우리는 일제의 탄압에 분노하면서도 "왜 그런 결과를 자초했을까?"에 대한 자성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시대와 환경이 변했다 해도 유감스럽게도 본질과 현상은 여전히 진행형인 듯하여 안타깝다.
어쨌든 피지배에 따른 필요 이상의 패배주의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전거복철(前車覆轍) 교훈대로 반성할 것은 해야 한다.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두 가지 개념은 진리와 자유이다. 광복절은 일제 탄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주권이 회복된 날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은 기념하면서 나라가 세워진 건국 일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국부(國父)에 대한 정체성도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나라에서 정통성을 찾는다는 것도 난센스다.
1948년 8월 15일은 ‘국회 소집 및 정부 수립 포고’ 규정에 의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만천하에 천명한 날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공산당과 싸워 나라를 지켜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도 지켜냈다.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오늘은 77번째 맞는 광복절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건국 74주년이 되는 건국일이다. 이 날을 건국일(建國日)로 제정하고 광복절과 함께 국론통합 축제의 날로 승화시켜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