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24/0826]33년만에 우리집을 온 친구야
아, ‘공부선수’인 네가 드디어 우리집을 찾았구나. 서울 대학시절 거의 유일한 단짝친구인 네가, 그것도 33년만에 말이다. 햇수를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94세인 아버지 연세 덕분이다. 1987년 아버지 회갑을 축하하러 서울서 내려온, 처마 밑에 서있던, 나보다 2년이 늦게 그해 갓 결혼한 너희 부부의 모습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77년 3월 새 학기,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보자마자 친구가 된 지 47년이 되었구나. 내가 다 감개무량感慨無量했다. 주소를 알려줬더니, 자갈마당으로 쑤욱 들어서는 너의 승용차. 서로 못본 지가 2년이 넘었을까. 반갑고 고맙고 기뻤구나.
여전한 너의 모습. 꼬장꼬장한 조선조 선비를 연상시키는 ‘딸깍발이’같은 내 친구. 세상에나, 애써 기른 수염이 제법 한 자가 되었구나. 마치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지식인의 본분을 다하고자 음독순국한 구한말 매천 황현黃玹 선생같이 보이더라. 점심으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던 너는, 통 크게도 삼계탕 다섯그릇에 닭죽 그리고 포도와 사과 한 상자에 모자라 강호동 머리만한 진안지역 산수박을 사들고 오다니….
얼마나 바빴으면 전주에서 불과 40분이면 오는 것을, 고향집을 리모델링한다고 지난해 서너 달 뺑이치는 데도 와보지 못하더니, 이제 나타났구나. 사는 것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고,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니, 할 말이 없었다. 대학교수 30년에 한의대 편입이라니, 본과 3학년, 마침내 졸업 1년을 앞두기까지 젊은 친구들과 유급걱정을 하며‘공부 씨름’을 하다니? 공부가 그렇게 좋은 거냐? 대체 네 지적知的 편력遍歷의 종점은 어디냐? 80년 대학 졸업 후 성대 행정대학원을 1년 다니더니 ‘이게 아닌개벼’ 곧바로 군軍에 입대, 제대 후 제2외국어(불어)를 1년여 피 터지게 공부, 소위 말하는 S대 언어대학원에 들어가 2년간 마치더니, 진로進路를 다시 정한 게 모교인 성균관대대학원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그렇게 너는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대학교에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것도 누구라도 하고 싶지 않은 중국中國 음운학音韻學이라니? 전공이 만주滿洲지역 사투리였다고 했던가? 너무 대단하여 감탄한 게 무릇 기하였던가? 뭐, 만주 사투리? 아, 그런 게 학문學問이구나. 그렇게 너는 교수가 되고, 방학만 되면 가정도 ‘팽개친’ 채 중국으로 날아가 오지奧地만 골라다니며 공부를 했다고? 세상에 어느 누가 너의 ‘공부벽工夫癖’을 막을 수 있으랴. 거금을 주고 사정사정해도 단박에 거절할 게 공부인 것을, 그것도 ‘6학년’ 중반에 객지타향 전주에서 혼자서 말이다. 오죽했으면 영양실조로 입원을 다 했을까?
교수가 되어서도 ‘윤선생영어’ 국제대학원에서 2년간 그야말로 죽을뚱살뚱 영어공부를 했다. 하도 기가 막혀 뭐하러 그렇게 죽기살기로 하냐고 묻자, 죽기 전에 꼭 할 일이 있다고 했었지. 불멸의 한의서 허준의 ‘동의보감’을 중역重譯 등을 거치지 않고 네 손으로 영역英譯하고 싶다고 말이다. 아, 그런 꿈이 있었구나, 나에게 늘 감탄 내지 감동을 주는, 공부박사 내 친구가 바로 너였다. 너의 근황을 나에게 물으면 단번에 대답하는 게 ‘미-쳤어! 공부에 미-친 넘’라고 말하지만, 그 말에는 은근히 내 친구라는 자부심과 자랑이 스며 있는 것, 너도 알지?
모처럼 6시간 동안 둘만이 있었던 어제의 얘기를 하자. 에어컨을 틀어놓은 거실에서 1시간여, 피곤한 몸을 뉘이고 곱게 낮잠을 자는 네 모습을 보는 것도 흐뭇했구나. 네가 사온 삼계탕으로 점심을 맛나게 먹고 ‘농촌어부農村漁夫’인 나의 “새우망 걷으러 가자”는 제안에 선뜻 응했지. 동네 뒷산을 15분여 오르면 깨끗한 저수지가 있다. 거기에 1급수에만 산다는 민물새우가 그야말로 버글버글하지. 내가 좀 잡는다고 씨 마를 걱정은 전혀 없다. 그래? 그런 곳이 있어? 따라나서는 네가 신통했다. 인적도 없는 깊은 산, 대가리를 벗길만큼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윤슬이 고운 저수지를 보자마자, 새우잡이 구경은 뒷전이고 옷을 홀라당 벗고 뛰어들어 얼마나 놀랐던지. 빌 듯이 만류했건만 “촌넘새끼가 별 것을 다 걱정한다”며 유연한 수영솜씨를 자랑했지.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네가 나오는 때까지 조마조마, 엄청 걱정했구나. 나는 수영의 ‘수’자도 모르므로. 네가 그렇게 수영을 잘하는지 처음 알았다.
그 다음에 하는 네 거동擧動에 또 놀랐다. 웃통을 드러내놓고 빤쓰바람으로 산길을 걸어 동네를 들어서다니? 누구라도 마주치면 어쩌려고 그러나, 만류가 필요없었다. 중국에서는 늘 그렇게 다녔다는 것 아니냐. 빤쓰가 아니고 반바지라는 듯 ‘트라이’ 상표가 부착된 그 부분만 손바닥으로 가리고, 버젓이 걷는 대학교수이자 한의대 학생인 너, 네가 들려준 에피소드에 기겁을 했다. 북경시내를 그렇게 활보하는데, 네가 가르친 여대 대학원 제자들과 맞닥뜨렸다고? 제자들이 우리 교수님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가는데, 귓속말로 “한국 가서는 소문내지 말라”고 했다던가. 참 대다난 내 친구. 문화의 차이는 이런 데서도 나타나는구나.
대학 비대면 온라인 동영상 강의 준비로 곧 올라가야 한다면서도 4시 40분 퇴근하시는 아버지께 큰절 한번 하고 가겠다는 네가 어찌 고맙지 않겠느냐? 아버지와는 세 번째 만남인데, 정작 두 번째 만남은 네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더구나. 93년이었을 거야. 중국을 여행 중이던 아버지가 북경호텔에 하루밤 묵는데, 새벽에 나의 부탁으로 아버지를 찾았던 게 말이다. 아버지는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네 이름 석 자 ‘유영기’만은 확실히 기억하는데, 중국술을 사갖고 찾아준 너는 정작 생각이 안난다고 하니, 천하에 공부선수도 세월 앞에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맛난 것 사드시라며 ‘신사임당’두 장을 기어이 쥐어주고 가는 네 뒤꼭지가 몹시도 예뼜다. 세상만사에 시니컬하고 심드렁하는 것같아도, 기본적으로 챙길 것은 챙길 줄 아는 ‘싸가지’있는 친구야, 고맙다. 이제 언제 또 볼거나? 한의대 졸업식 때에는 멋진 꽃다발을 가지고 갈까? 의지의 한국인, 공부선수, 공부박사 내 친구, 공부 자체가 좋아서 끝없이 한다는 내 친구, 정말로 한의원을 차릴까? 귀추가 자못 궁금하다.
이 많은 음식과 과일을 어찌할까? 오후 6시반, 동네 친구들을 졸지에 불러 네 덕분에 성대한 파티를 했다. 6명이 먹어도 다 못먹은 닭죽과 삼계탕. 덕분에 저녁을 포식하고, 비도 오지 않는데, 회관으로 몰려가 집중호우 이후 처음 오랜만에 ‘쩜백 고스톱’으로 즐거운 시간까지 보냈다. 친구야, 부디 하늘같은 성취成就 있으라! 언젠가 썼던 졸문을 참조하시라. http://cafe.daum.net/jrsix/h8dk/77
첫댓글 인생을 살아가는 각자의 멋이 있다던가?
글쓰기 좋아하는 친구랑 똑같아 보인다.
멋쟁이 친구들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