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
입춘은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24절기(節氣)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한다. 절기는 ‘시령(時令)’ 또는 ‘절후(節候)’라고도 하는데, 태양의 ‘황경(黃經)’에 따라 24등분하여 계절을 세분한 것이다. ‘황경’이란 태양이 춘분점(春分點; 춘분에 지나는 점)을 기점으로 하여 황도(黃道; 지구에서 보았을 때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한 바퀴 도는 길)에 따라 움직인 각도를 말한다. 황경이 0도일 때를 춘분(春分), 15도일 때를 청명(淸明) 등으로 구분한다. 이렇듯 15도 간격으로 24절기가 구분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 계절은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4개 절기로 시작된다. 24절기는 다시 ‘절(節)’과 ‘중(中)’으로 분류되어 입춘을 비롯한 홀수 번째들은 ‘절(節)’이 되고, 우수(雨水)를 비롯한 짝수 번째들은 ‘중(中)’이 된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의 24절기는 대략 15일을 간격으로 나타낸 달력이라 할 수 있다. 계절은 황경에 따라 변동하기 때문에 24절기의 날짜가 양력으로는 거의 같지만, 음력으로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가끔 ‘윤달’을 넣어서 계절과 맞게 조정하고 있다.
입춘에는 집의 양쪽 기둥이나 문설주에 ‘춘련(春聯)’ 또는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데, 새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이제 막 철이 든 아이의 글씨로 썼다. 일반적으로 '입춘대길(立春大吉) 만사형통(萬事亨通)' 등의 글귀를 대구(對句)로 써 붙인다. 조선 정조 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부모님의 은혜가 매우 중하다는『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진언을 인쇄해 나누어주었다. 그 이후 <부모은중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를 써 붙임으로서 재앙이 소멸되고 만복이 도래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절에서는 ‘삼재(三災)풀이’를 행하기도 한다. 삼재란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를 일컫는다. 간혹 ‘도병재(刀兵災)’, ‘질역재(疾疫災)’, ‘기근재(饑饉災)’를 말하기도 한다. 삼재가 든 첫해를 ‘들삼재’, 둘째 해를 ‘누울삼재’, 셋째 해를 ‘날삼재’라 한다. 뱀, 닭, 소띠생은 돼지, 쥐, 소해에 삼재가 든다. 원숭이, 쥐, 용띠생은 범, 토끼, 용해에 삼재가 든다. 돼지, 토끼, 양띠생은 뱀, 말, 양해에 삼재가 든다. 범, 말, 개띠생은 원숭이, 닭, 개해에 삼재가 든다.
매년 12월31일이 되면, 제야의 종과 함께 매스컴에서는 새로운 해가 밝았다고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곤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양력설을 기준으로 띠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띠는 으레 음력설에 바뀐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띠는 음력설이 아닌 입춘에 바뀌는데, 입춘은 음력이 아닌 양력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은 달을 중심으로 하는 음력이어서 명칭부터 ‘달력’이다. 그래서 이번 ‘달’이 몇 ‘월’이냐고 묻고, 각 달의 명칭도 1‘월’·2‘월’…처럼 모두가 달이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풍요를 기원하는 농사문화와 관련되었는데, 달은 보름 주기로 찼다 기울었다 하기 때문에 달력이 없어도 날짜를 요량하기에 편리했다. 그러나 달은 한 달을 요량하기는 좋지만, 춘하추동의 계절을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계절은 달보다는 태양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력 속에 태양과 관련된 양력의 24절기를 추가한다. 이를 태음태양력이라고 하는데, 그냥 음력이 아니라 태음태양력을 사용했던 것이다.
24절기는 양력이므로 양력을 사용하는 오늘날의 달력에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24절기의 첫 번째가 바로 입춘이며 날짜는 매년 2월 4일이다. 입춘은 봄이 확립되는 절기로 농경사회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때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봄이 바로 서니 크게 길하고, 양기가 굳건하니 경사스러움이 가득하다’는 입춘첩(立春帖)을 대문에 붙이며, 한 해의 풍요를 기원했다.
왜 띠는 입춘에 바뀌는 것일까? 과거에는 왕조에 따라서 한 해를 시작하는 설날이 달랐다. 주나라의 점서(占書)인『주역(周易)』이나 춘추전국 시대로 우리에게 익숙한 주(周)나라는 동지가 설날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전설적 왕조인 하(夏)나라는 입춘이 설이었다. 고대에는 새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기준이 존재했던 셈이다. 문헌이 다소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맹자는 동지설을 주장했고, 공자는 입춘설을 지지했다.
『주역』은 주나라의 책이므로 당연히 동지를 기준으로 하는 모양새다. 입춘에 띠가 바뀌는 것은 하나라와 공자의 관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동지도 24절기에 속하기 때문에 동지 역시 입춘과 같은 양력이다. 고대의 한 해 시작은 동지든 입춘이든 간에 모두 양력이었던 셈이다. 동지가 설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하며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입춘 풍속에는 ‘아홉차리’와 ‘오신채 먹기’가 있다. 아홉차리는 좋은 행동을 9번 반복한다는 것으로, 숫자 ‘9’는 양을 나타내는 숫자이므로 이는 양기를 북돋아 준다는 의미다. 또 오신채는 매운 음식이니 이 역시 양기를 끌어 올린다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건양다경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입춘 풍속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삼재풀이도 있다. 입춘이 새해의 시작이니, 이때 안 좋은 삼재를 막아서 해결해야 된다는 의미다. 삼재를 무속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삼재는 인도의 우주론과 관련된 풍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