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들이 필요해 : ‘피프티 피플’을 읽고>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은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50명의 사람들의 삶을 각자의 시점으로 풀어내 하나의 소설로 엮은 장편소설이다 무려 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이 소설은 다양한 화두를 오가며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소설 속의 세계를 끊임없이 넓혀간다.
누군가의 이야기에서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어느 챕터에서는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흥미롭고 반가운 경험이다.
“ 살아 있는 게 간발의 차이였다. 그 ‘간발 차’ 감각이 윤나를 괴롭혔다.
자칫했으면 이 팔들이, 살아 있는 팔들이 썩고 있을 뻔했다.
죽음은 너무 가깝다. 언제나 가깝다. “
<피프티 피플> 103p
책 속의 가습기 살균제, 데이트 폭력 범죄 등 소설이 출간된 2016년 당시의 이슈를 환기하는 여러 사건이 등장한다. 이런 소재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의미하게 읽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윤나가 말했듯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도처에 죽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오늘 그곳을 피했으니 그거면 족하다는 식으로 이 ‘간발 차’의 감각을 잊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 도둑 같은 불운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데,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은 나는 운 나쁜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른다는 이유로 간편하게 외면하고 쉽게 평화를 되찾는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모여 있는 영화관에 불이 나고 모든 사람이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오는 사건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어느 동네의 화제 사건.
내가 이들을 모른다면 인터넷 뉴스로 몇 분간 읽고 이내 잊어버렸을 허다한 이야기다. 뉴스만 틀면 쏟아져 나오는 숱한 사고들은 어쨌든 나의 일이 아니므로 사건의 심각성과 관계없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소설 속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평범하고 특별한 51명의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삶의 조각을 잠시 들여다본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에게 닥친 불운을 그저 ‘남 일’로 치부하기 어려워진다.
‘남 일’이 아닌 이야기들, 나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퍼즐 조각들이 무뎌지고 있던 ‘ 간발 차’의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후반부를 읽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애틋해 화재현장에서 모두가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뒤로 물러서는 ‘ 이호’와 ‘계범’의 팔을 다급하기 붙잡고 싶었던 내 마음이 결국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결말을 쓴 작가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고 표정을 떠올리는 일은 숫자로만 전달되는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가르는 일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로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그 태도만으로도 어쩐지 나에게 위로가 된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피프티피플 p 330-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