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대명궁 유적 铁器时代 · 大明宫遗址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당나라 궁궐터인 도당나라 궁궐터는 산시성 시안시의 성 북쪽에 있는 용수원에 위치한 당나라 장안성의 금원지로서 태극궁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동내(東內)라고도 불립니다.이곳은 고종 이후 주요 조회가 있었던 곳입니다.
대명궁은 당 태종 정관 8년(634)에 태상황 이연의 청서를 대비하여 영안궁으로 지어졌습니다.정관 9년에 대명궁으로 개명했습니다.고종 이치현경 5년(660)에 무측천(武则天)이 조정에 참여하였고, 그 다음 해인 용삭 2년(662)에 사농경(司農卿)에게 명하여 대명궁(大明宮)을 짓고 봉래궁(蓬萊宮)으로 개명하고, 이듬해 이 궁으로 옮겨와 정치를 들었습니다.
함형 원년(670)에는 함원궁(咸元宮)으로 개칭하였고, 신용 원년(705)에는 대명궁(大明宮)으로 복명하였습니다.만년에 당 희종중화 3년(883)에 병화로 소실되어 왕휘를 대명궁으로 유수하여 궁실을 복원하였습니다.
소종 간녕 3년(896)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 폐허가 되었습니다. 1957년부터 1962년까지 중국과학원 고고학연구소는 대명궁 유적을 탐사하고 발굴했습니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는 대명궁의 형태, 배치 및 건축 기지의 구조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핵심 발굴을 수행했습니다.1961년 국무원은 국가 중점 문화재 보호 단위로 발표했습니다.
▲ 함원전복원도는 대명궁의 형태와 배치대명궁의 평면형태로 남쪽은 직사각형, 북쪽은 사다리꼴로 둘레 7.6km 남짓, 면적은 약 3.2km²입니다.궁성은 성문 부근과 모퉁이의 내외면에 벽돌을 쌓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져진 토담을 쌓았습니다.
동,서,북 3면에 궁벽과 평행한 협성이 있습니다. 궁성에는 모두 11개의 성문이 있습니다.남쪽에는 5개의 문이 있고, 정중앙의 단봉문을 정문으로 하고 있으며, 그 남쪽으로 단봉문 거리가 있고, 너비는 120보(약 176m)입니다.
단봉문에는 3개의 현관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1개의 현관입니다.북쪽에는 3개의 문이 있고, 가운데 현무문은 북쪽 협성의 중현문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동쪽에는 좌은대문(左銀臺門)이라고 하는 문이 하나 있고, 문 밖에는 좌삼군(左羽林軍, 左龍武軍, 左神策軍)이 주둔하고 있습니다.서쪽에는 2개의 문, 남쪽에는 우은대문, 북쪽에는 구선문, 문 밖에는 우삼군(우우림, 우용무, 우신책군)이 주둔해 있어 궁정을 경비하는 이른바 '6군'입니다.
북쪽 협성(夹城)의 중현문 안에는 금군을 통솔하는 이른바 '북아(北衙)'가 있습니다. 대명궁의 남쪽에는 동서향 궁장 3개가 평행하게 있고 북쪽에는 태액지가 있습니다.
궁내전정 등 건축유적은 40여곳이 조사되었는데 대부분이 궁성 북쪽에 있으며, 대명궁의 정아인 함원전 유적과 연회군신들의 인덕전, 그리고 도교와 관련된 삼청전 등이 발굴되었습니다.
▲ 대명궁 함원전 터인 함원전 터인 함원전은 단봉문 바로 북쪽 용수원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고, 평지보다 15m 이상 높아서 장안성을 내려다볼 수 있어 큰 축제와 조회가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현존하는 터는 동서 75.9m, 남북 41.3m의 길이를 자랑합니다.
전각의 너비는 11칸, 깊이는 4칸, 각 칸의 너비는 5.3m입니다. 동쪽과 서쪽의 벽과 북쪽의 뒷벽은 모두 판자토벽으로 되어 있고, 벽의 내벽과 외벽은 흰 재로 칠해져 있으며, 안쪽 바닥에는 주홍색 테두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전 바깥 둘레에는 폭 5m의 층계가 있습니다.받침돌은 다음 주에 산수벽돌을 쌓습니다.전각은 동남쪽에는 상란각이, 서남쪽에는 서봉각이 있는데 평지보다 15m 이상 높게 세워져 있습니다. 양각은 모두 그 북쪽에 낭도를 두어 함원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각은 남쪽으로 3개의 계단과 비탈길을 따라 난 벽돌계단길, 길이 78m로 당시에는 '용미도(龍尾道)'라고 불렸습니다.가운데 너비는 25.5m이고 양쪽 너비는 4.5m입니다.
전터에서는 표면이 검은색인 광택이 나는 토기와가 다수 출토되었고, 천장의 지붕용 기와로 사용되었으며, 녹유리 기와 조각도 소량 출토되었는데, 함원전의 처마끝은 유리절단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받침대 주변에서 잔돌과 이수의 석각 조각이 다수 출토되었고, 상란각 북랑도 서쪽에서 철갑편과 창끝 10개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전화 전쟁 중에 버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뚝 솟은 대전과 그 좌우의 높은 누각, 그리고 그 사이에 용미도(龍尾道)를 두어 그 형세가 매우 위엄있고 장관입니다.
▲ 함요문 인덕전 터인 인덕전은 대명궁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회와 외국사절 접견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남북으로 길이 130m, 동서폭 80여m의 대지에 전·중·후가 맞닿은 3전을 세우고, 중전의 좌우에 각각 1정씩을 지어 동정(東亭)·서정(西亭)이라 하고, 후전 좌우에 1층씩을 지어 좌(左)는 울의루(郁儀樓), 우(右)는 결린루(結邻樓)라 불렀습니다.
주변에 회랑을 둘러 건축 면적이 1만2300여㎡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 유적에서는 검은색 통기와와 슬레이트, 그리고 녹유리 기와가 소량 출토되었고, 받침돌 주변에서는 이수의 석각과 석망주 잔해들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계단에는 연꽃 네모난 벽돌을 깔고, 산수는 검은 네모난 벽돌로 쌓았는데, 이는 다른 유적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출토유물을 보면 지붕에는 검은 질기와 외에 유리 기와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2단의 받침돌에는 망주, 난간, 이수 등이 장식되어 있고, 이수는 붉은색, 푸른색, 녹색으로 그려져 있어 호화롭고 장엄함을 알 수 있습니다.
▲ 대명궁 삼청전 터인 삼청전 터인 삼청전은 대명궁 서북우청소문 안쪽에서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고층건물로, 받침대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으며, 현존 높이는 북쪽은 15m, 남쪽은 12.6m입니다.
받침대는 볼록한 자형이고 북쪽과 남쪽은 좁으며 남북의 길이는 78.6m, 동서 너비 북쪽은 53.1m, 남쪽은 47.6m, 면적은 4,000제곱미터 이상입니다.
고대 전계판 달구질.주위에 1.26m 두께의 벽돌벽을 쌓고 표면은 벽돌을 갈아서 꿰맨 깨끗한 벽돌을 쌓고 바닥은 매우 깔끔한 주춧돌을 두 겹으로 연마하였으며, 주춧돌과 벽돌벽은 모두 11°의 경사를 이루었습니다.
주회백회벽피가 다량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위에 전당이나 누각 등의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안석 난간과 배수 석조 및 기타 시설을 증명하는 석조 잔해가 받침대 주변에 있습니다.바닥 아래에 너비 1.5m의 정사각형 벽돌을 깔아 물을 뿌립니다.
상전의 계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남쪽 정중앙에 길이 15m, 폭 3.2m의 답보계단길이고, 다른 하나는 받침대 북쪽 끝의 양쪽에 길이 43.25m의 비탈진 휘장길로 동폭서쪽이 좁고 평면이 사다리꼴 모양입니다.
출토된 석작 잔해에서 볼 수 있듯이 휘장 위쪽 양쪽에 가장자리를 깔고 돌난간을 설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적에서는 녹유리기와와 함께 황·청·녹의 삼채기와가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청회색 토기와도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동부재 및 목조에 박힌 금동장식잔편 등이 남아 있고, 그 밖에 동불상 1점, 홍도부조불상 등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당대에는 도교를 숭상하고 노자를 모셨으며, 삼청전은 궁정에서 도교를 섬기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대명궁 동북쪽 한켠에는 대각관, 현원황제(당시 노자를 현원황제로 봉함) 등의 유적도 있습니다.
▲ 연영전 청사전, 선정전, 자금전 터는 동성 좌은대문 안 북쪽에서 23호 전터 1기가 발굴되었는데, 그 위치로는 경종 때 건립된 청사전 터로 추정됩니다.
이 전각은 직사각형으로 남북으로 길이 228m, 동서폭 33m에 12개의 주초석이 남아있습니다.유적에서는 '동균부좌령군위(同均府左領軍衛)'라는 글자가 적힌 구리어부(銅魚符)가 출토되었습니다.
함원전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는 선정전과 자금전 유적이 있는데, 함원전과 함께 궁성 전체의 중심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선정전은 황제가 조정에 임하여 정무를 보던 곳이고, 신천전은 내조의 정아로 여러 신하들이 신천전에 들어가서 조견하는 것을 입각이라고 합니다.
선정전 남쪽의 동쪽에는 문하성, 홍문관, 대조원 및 사관 등이 있고, 서쪽에는 중서성, 어사대 및 전중외마당, 전중내마당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자천전의 동쪽과 서쪽에는 궁궐터 10여 곳이 있는데 대부분 침전입니다.선천전에서 북쪽으로 200m, 즉 달룡수원의 북쪽 가장자리에 있는 태액지(太液池, 일명 봉래지)는 거의 타원형에 가까운 연못으로 동서 길이 500m, 남북 너비 320m입니다.
연못의 동쪽에는 높이 5미터가 넘는 언덕이 있는데, 즉 봉래산 유적지입니다. 연태액지 남쪽 해안에는 폭 5m가 넘는 다지기 건물지가 있고, 벽돌과 기와가 많이 쌓여 있는데, 이는 원화 12년(817) 5월에 헌종이 세운 '봉래지 주랑 사백칸'의 유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액지 북쪽에는 함량전, 자란전, 장각, 현무전 등의 유적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현무전의 북쪽은 현무문이고, 북쪽은 협성의 중현문이며, 문밖은 금원으로 들어갑니다.
대명궁 북부는 궁중 정원 지역으로 건물 배치가 비교적 소박하고 형태도 다양하며 특히 태액지의 수면은 정원에 산수 경치를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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