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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신(경신) 8월30일. 계해(계해) 점을 치다. 화수미제(火水未濟)의 상구효(上九爻)가 나오다. 성실한 마음으로 술을 마신다. 화를 입을 일이 없다. 그 머리를 적시 면, 성실한 마음이 있어도 시(是)를 잃는다. 상전(象傳)에서 말하기를,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신다는 것은, 절도(節 度)를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점이다. 오늘 술 마실 일을 어찌 알았지? 너무 많이만 안 마시 면 다 좋다는 이야기 아닌가. 물론 나도 그럴 것이다. 천하의 대마(大魔), 거흉(巨兇)들을 모아둔 앞에서 취하는 추태를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오늘 같은 날 술을 안 마시면 언제 마신단 말이냐. 60년간 지나온 도산검림(刀山劍林)을 바야흐로 벗어나려 하는 이때에.... 9월 1일. 갑자(甲子) 늦게 일어나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무공을 익힌 이후 이렇 게 심한 숙취를 겪은 일은 일찌기 없었다. 확실히 어제의 점이 맞은 것 이다. 머리맡의 산매탕(酸梅蕩)을 들이키자 조갈(燥渴)은 덜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아프다. 다시 침상에 눕다. 어지러우면서도 기분은 좋은 명정상 태(酩酊狀態)를 즐기다. 나른한 햇살 속에 부유하는 먼지들조차도 나른하고 한가하다. 어디 선가 풀벌레소리도 들리는 듯한 기분이다. 팔베게를 하고 모로 누우니 창밖의 풍경이 보인다. 푸른 이끼 무성한 기와지붕들 틈으로 푸른 하늘 이 비친다. 생각해 보면 60년이었다. 신발도 신지 않고 고향을 떠나온 지 60년, 그야말로 맨주먹 붉은 피로 지금의 이 기업을 이루어내지 않았던가. 저 기와지붕에 쌓인 고풍창연(古風蒼然)한 전통은 그 60년 노력의 소산인 것이다. 팔이 저려 바꿔 베다. 웃음이 절로 나오다. 어제의 금분세수(金盆洗手) 의식은 정말 훌륭했다. 나만큼 많은 살인 과 약탈을 한 사람 중에 나처럼 오래 살고, 당당하게 금분세수까지 해 가면 은퇴한 사람이 있던가. 모르긴 몰라도 없을 것이다. 그 음모와 귀 계(鬼計)가 판치는 마도무림(魔道武林)을 꿋꿋이 잘도 헤쳐온 것이다. 그 수많은 마두들, 거흉들이 나를 부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절로 유쾌해진다. 장하다, 동방척(東方剔)! 대단하다, 동방척! 너는 이제 유유히 산야에 은거해서 네가 평생 쌓아올린 그 위업들이 어떻게 번창해 나가는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뒷일은 네 최대의 걸작인 제자에게 맡기고 구름과 학을 벗삼아 신선의 도나 닦으면 되는 것이다. 평생 그토록 염 원해왔던, 은퇴 이후(隱退以後)가 바로 오늘부터 아닌가. 문 밖에서 시녀가 출발 시각을 묻는다. 오늘은 숙취 때문에 안 되고 내일 출발한다고 대답하다. 한가하고, 한가하고, 또 한가한 생활이 시작된다. 서두를 이유가 무 언가. 9월 3일. 병인(丙寅) 머리가 아프다. 머리만이 아니고, 잔뜩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쑤셔 온다. 아무래도 어제 천산노조(天山老祖)와 마신 술이 과했던 모양이다. 30년간 싸워온 원한을 잊자고 권한 술이니 이 정도 숙취야 감수해야 할 일이긴 하다. 산매탕을 들 기운도 없다. 하지만 마셔야지. 음..... 역시 숙취엔 산매탕이다. 입 안의 텁텁한 기운은 가셨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움직이기 곤란할 듯하다. 시간은 많다. 내일에나 출발해야겠다. 나른하다 9월 10일. 계유(癸酉) 머리가 깨질 것같다. 두들겨 맞은 후가 아니라 지금도 두들겨 맞고 있는 것처럼 몸이 쑤신다. 빌러먹을 현천상인(玄天上人)놈, 독사주(毒蛇酒) 따위나 마시고 있었 으니 사문(師門)에서 쫓겨나서 여자 장사나 하고 있지. 그 나이에.... 차(茶)를 마시고....., 음.... , 왜 오늘은 산매탕이 아니고 그냥 차 지? 시녀들을 혼내줘야겠다. 하지만 일단 한 잠 더 자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요즘 들어 갑자기 몸이 약해진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 도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9월 12일. 을해(乙亥) 오늘 아침엔 머리맡에 차 대신 냉수가 있었다. 그걸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짐을 챙겨 나왔다. 십여 일간 나를 기다린 종자와 시녀들 이 따라나섰다. 앞으로도,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시중을 들어줄 하인, 하녀들인 셈이다. 누가 먼저 죽을 지는 모르지만..., 이대로라면 나는 5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제자와 수하들, 아니 옛 수하들이 줄줄이 달려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단지 손만 한 번 흔들어 주었을 뿐이다. 사내는 떠날 때의 뒷 모습이 멋있어야 하는 법이다. 길에 나서서야 내가 세웠고, 오랫동안 살아왔던 궁(宮)을 돌아보았 다. 궁을 떠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사실은 궁에서보다는 밖에서 돌아다닌 날이 더 많았으면서도 오늘은 이상하게 미련이 남았다. 그때 는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떠났던 것인지만 오늘은 돌아도지 않으리라 고 떠나는 것이기게 그런 것일까? 하루 종일 길을 왔지만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은거지를 궁에서 멀 리 떨어진 곳에 잡자고 한 것은 내가 먼저였는지, 제자가 먼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객잔(客棧)에서 잠을 청했다. 예전에는 이런 곳에 들르면 아는 무림 명숙(武林名宿)을 찾아 흑도 쪽이면 시비를 걸고, 백도 쪽이면 그냥 몰 래 죽여버리곤 했지만 이젠 금분세수까지 한 몸이니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의욕도 없어서 그냥 잠을 청했다. 잠이 안 온다. 피곤하다. 10월 1일. 갑오(甲午) 여기 산서성 귀퉁이 은현장(隱賢莊)에 도착한 지도 사흘이 지났다. 주위에는 인가가 많지 않지만 관도를 따라 얼마간 가면 큰 시진이 있고, 산에 둘러싸여 있지만 굽이를 돌아가면 논밭을 볼 수 있는 곳이 다. 탈속(脫俗)을 즐기면서 생활에 불편이 없는 곳이니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곳인 셈이다. 첫날 마차를 타고 지나온 논길에서 백로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푸른 하늘과 푸른 들판, 그 속에 정지한 듯 천천히 날아가는 한 마리 백로. 시간이 멈춘 듯하고 바람조차 눈에 보일 듯했던 한 순간이었다. 여태까지의 모든 짜증과 불안함이 단숨에 날아갔다. 그리고 은퇴하 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평온함과 여유를 느낀 적이 언제 있었던가. 장원은 아담하고, 흙 냄새 풍기는 곳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개들 이 반겼다. 하인에게 물어보니 뒷뜰에는 오리와 닭도 키운다고 했다. 나를 기다리는 개, 내가 키우는 닭과 오리.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졌 다. 가족 비슷한 것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고향을 떠난 이후 아마도 이게 처음인 듯하다. 10월 2일. 을미(乙未) 오늘은 화단에 화초들을 심었다. 손에 닿는 흙의 감촉이 너무 좋아 서 필설로 형용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니 흙 냄 새가 가득 풍겼다. 그렇다. 이게 인생인 것이다. 옷자락에 피 묻은 칼을 닦고 그 피비린내를 맡던 시절이 후회스럽다. 그때는 단지 살아 있을 뿐 인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10월 5일. 무술(戊戌)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은퇴 전, 그러니까 금분세 수 전에는 반드시 미명(微明)에 일어나 운기를 했었는데..... 생각난 김에 운기를 할까 하다가 관둬버렸다. 운기는 해서 무엇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무공을 익힌다고 그 고생을 했던 것이 어리석었던 것 같다. 오늘은 화단에도 나가지 않고 침상에 누워 게으름을 피워볼 참이다. 10월 7일 경자(更子) 나른하다. 그리고 심심하다. 붓을 들 힘도 없는 것 같다. 아니 귀찮 아서 못 들겠다. 잠이나 더 자야지. 10월 10일 계묘(癸卯) 화단의 화초들이 다 말라 죽었다. 하인을 꾸짖으려 하다가 포기했다. 내가 직접 할 테니 건드리지 말라고 명한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새로 심으려다가 포기했다. 귀찮다. 10월 15일 무신(戊申) 오랜만에 마당에 나간다. 개들이 반기며 달려들었다. 귀여워서 쓰다 듬어 주었더니 계속 달려든다. 걷어차서 쫓아버렸다. 으르렁거린다. 문득, 내가 개를 무척 싫어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대문을 나서니 멀리 관도 가에 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 정자(亭子) 가 하나 있는 것이 보였다. 가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이상하 게 마음이 편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당에서 개똥을 밟았다. 불쾌하다. 10월 21일 갑인(甲寅) 하루종일 정자에 나가 앉아 있었다. 10월 22일 을묘(乙卯) 오늘도 종일 정자에 나가 앉아 있다가 돌아오다 10월 23일 병진(丙辰) 오늘도 마찬가지. 10월 24일 정사(丁巳) 개들이 오리를 물어 죽였다. 나는 개들을 때려죽였다. 오랜만에 손 에 피를 묻히니 힘이 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여태 나른하고 힘 이 없었던 것은 피를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깨달 았다. 강호에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가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예전부터 그 부분에 대해 의심을 해왔다. 이른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즉 '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 다' 라는 말에 의거해서 모든 것이 극한에 이르면 그 역으로 돌아온다. 사공, 마공을 익혀도 극에 달하면 결국 정도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말이 다. 만류귀종(萬流歸宗), 모든 것이 결국엔 한 근본으로 돌아온다는 말 도 있다. 나는 이제 그것을 믿지 않느다. 나는 피를 보고, 싸움을 해야 비로소 살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다. 원래 사움을 좋아했고, 마공을 익힌 후에는 더욱 즐기게 되었다. 그런 데 갑자기 성인군자가 된 것처럼 살려니 심신의 조화가 깨어진 것이다. 피를 보기 싫고, 싸움을 하기 싫었던 것은 단순히 변덕, 잠시 마음이 약해진 때문이었을 뿐이었다. 또 극한에 이르면 달라진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많은 주장이다. 그렇게 따지면 정파의 기공을 극한으로 익히면 이번에는 그놈들이 마 성(魔性)을 띠어야 하지 않을까? 정상이 어디에 있고, 정통은 또 누가 만든 것인가. 애초에 내공 따위 를 끌어올려 범인과 다른 힘을 발휘한다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마공을 익히면 위험한 일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념(情念)에 빠 져 주화입마(走火入魔)함으로써 반병신이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경 우를 나도 숱하게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마공을 익히기 위한 대 가다. 마공은 정념을 폭주시키고, 그것에 이끌려 내공을 도약시키는 방법 을 사용하기 때문에 당현히 감수해야 할 위험이다. 그러므로 마공은 정 파의 기공보다도 오히려 더 재질을 따지는 것이다. 성격이 차갑고 냉정 한 자는 음한(陰寒) 계통의 마공을 익혀야 하고, 마공을 익힘에 따라 더욱 차갑고 냉정해 진다. 성격이 불같이 급한 자는 열양지기(熱陽之氣) 를 사용하는 마공을 익혀야 하고, 익히면 익힐수록 그 성질은 더욱 급 하고 포악해진다. 그러면서 진보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마공을 익힌 이상, 더욱 더 정념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 다다를 경지가 지옥의 야차 같은 것이라면 그 것도 좋다. 나는 시골에 쳐박혀서 살다가 심심해서 죽느니 차라리 야차 (夜叉)처럼 살다가 천벌을 받아 죽겠다. 당장 짐을 싸야겠다. 그런데 절정 마공을 익히고 은거했다는 전대의 거마, 거흉들은 어떻 게 된 걸까? 그들은 반동(反動)해서 신선으로 변해 천수를 누린 것일 까? 그럴 리 없다. 나는 이제 알겠다. 그들은 죽기 두려워 굴 속에 숨었거나, 이미 죽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굴 속에서 죽느니 길바닥에서 죽기를 원한다. 이 제 그렇게 될 것이다. 10월 25일 무오(戊午) 오늘도 정자에 나가 앉아 있다가 들어왔다. 나는 바보다. 어리석었다. 조용히 물러나겠다는 걸 굳이 금분세수니 뭐니 거창하게 의식을 차 리고, 평소 교분도 없던 마두, 거흉들을 초대한 제자의 성의 뒤에 이런 음모가 숨어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금분세수, 그게 문제다. 의식을 거행한 지 이제 두 달도 안 되었다. 이것으로 강호의 모든 은원을 정리하고 손을 씻는 바아니 차후로 나를 편히 쉬게 내버려 두라고 그때 또박또박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두 달 만에, 이 년도 아니고 단 두 달 만에 번복하고 돌아가면 그게 무슨 창피더란 말인가. 나는 못한다. 차라리 심심해 죽는 한이 있어도 내 발로 다시 강호에 나갈 수 없다. 죽고 싶다. 10월 28일 신유(辛酉) 방법이 있다. 내가 먼저 나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먼저 나를 필요로 하면 되는 것이다. 금분세수까지 한 몸, 어찌 강호에 나가 그 분탕질 속에 뒹굴 리야..... 어쩌고 하면서 사양하다가, 노사가 없으면 저희 마도 무림은 끝입니다 어쩌고 하며 눈물 콧물 뿌리면 그때, 하는 수 없는 양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모양도 나고 명분도 설 것이다. 그런데.... 누가 날 불러주지? 은퇴를 말리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던 제자놈은 절대 아닐 것 이다. 내가 없어서 마도 제일을 노리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마두 놈들도 아닐 테고.... 미치겠다. 10월 30 계해(癸亥) 나는 지금 도화령으로 간다. 거기 있는 녹림도 애들이 절실히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정자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다. 비록 놈은 지나가다 내게 잡힌 듯한 표정을 하지만, 내심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니면 또 어떠랴. 놈들이 어디 가서 나만한 조력자를 만날 것이냐. 기쁘다. 문득 옛날 고향을 떠난 이유가 기억난다. 농사 짓기 싫어서, 시골에 서 살기 싫어서였다. * * * 무림십대고수 중 삼군(三君)의 하나로 오행궁(五行宮)의 오행마군(五 行魔君)이 꼽힌 것은 세력의 덕이라기보다는 발군의 마도영웅인 오행마 군 동방척, 그 자신의 힘이라는 평이 있다. 그 동방척이 오행마군이라 는 이름과 오행궁주의 자리를 제자에게 넘겨주고 금분세수의 식을 거 행한 지 딱 두 달, 60일 만에 다시 강호로 나왔다. 행선지는 도화령이 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ㅈㄷㄱ~~~~~``````
잘밨어요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잼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