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초복
장마철 이라고는 한꺼번에 비가 죽~죽~ 내리고 말든지 아님 그만 내리든지 그야말로 오락가락하는 장마통에 마음 못잡는 날씨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더 어수선해지는 요즘이다.
어느덧 초복이라 . 올해부턴 절대로 초복 중복 말복 같은 절기의 의미를 찾지말자고 작정을 하고 그냥 무심히 지나 갈려고 했는데 초복날 아침, 이곳 저곳에서 새벽부터 웬 문자들이 그렇게 오는지 특히 울영감 카톡방이 난리가 났어. "카톡~카톡" 하는 소리가 시끄러바서 못살 지경이라. 다 늙은 영감들이 젊어서 몰랐던 초복을 새삼 알게 된건지 아님, 초복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된건지, 새벽부터 수박에 삼계탕에 화면마다 각가지 버전으로 경쟁하듯 보내들 오니 늙어서 할일 없는 노친네들 새벽바람부터 큰 할 일 생긴듯 이때다~ 하고는 연신 "카톡,카톡"들이네 올핸 정말 초복이고 중복이고 모른척 그냥 지나갈려고 했는데..... 왜 자꾸 마음약한 나를 일깨우려 하는지, 마음이 괜히 불편해지며 뭔가를 해야할것 같아 불안해지기까지....
늙었지만 나도 아직은 주부임이 분명하고 또 이제껏 해오던 가락은 있는지라. 그냥 지내기도 섭섭코 하여 그래, 이번만 초복을 찾자 싶어서 제일 쉽고 만만한 삼계탕을 끓일까 하다가 본인도 못먹는 삼계탕을 왜 끓였냐며 자기혼자는 절대 안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잔소리가 끝이 없을것 같아 실갱이 하는것도 지겹고 둘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정하자 ~~고심하다가 문득, 며칠전 TV에서 봤던 오징어 물회국수가 떠오르데.
마침 레시피 적어놓은 것도 있으니 그래, 이번 초복맞이 점심은 오징어 물회국수로 당첨. 그때부터 부지런히 시장을 봐서 준비를 했지. 오징어도 국수도 다 내가 좋아는 거라 더 신이 났을까나?ㅎㅎ
" 귀찮고 덥고 힘들텐데 그냥 물회국수 한그릇씩 사먹는게 낫지않을까? " 영감의 근심어린 조언을 단번에 거부하고 "아녀,아녀, 나, 하나도 안귀찮아여. 내가 아주 잘~할수있어 기다려." 큰소리를 땅~ 치고 적어놓은 레시피데로 의기 양양 시작을 했지. 싱싱한 물오징어 데쳐서 썰어놓고 고추장,식초, 설탕, 물회의 숨은 비법 갈배음료 한캔 , 그리고 액젓과 마늘 넣어 국물을 만들고 소면 꼬들꼬들하게 삶아건져 돌돌말아 품위있는 (?) 그릇에 담고 그 위에 각종 채소를 색깔 맞춰 고명까지 얹고 식혀둔 국물 붓고 새알같은 얼음 동동 ~~ 비쥬얼이 끝내주며 아주아주 그럴듯 했다네. 식탁위에 차려놓으니 이건 음식이 아니고 작품이로세.
자신감이 넘치게 큰소리로 영감을 불렀지. " 물회국수 드시옵소서" " 아이구~ 빨리도 했네, 역시 자네 솜씨는 알아줘야 되 "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고 희색이 만면해서 먹기도 전에 눈으로 만족하고 흡족한 표정 역력하니 일단 여기까진 대성공이여. 칭찬으로 마누라 기분좋고 화기애애 분위기도 좋아 맛까지 좋을거라 한껏 기대하며 먹기를 시작했지.
"맛이 어떠셩 ?" "응 맛있어 맛있어, 누가 했는데.... " 정말 맛있다는듯 한~젓갈 고봉으로 뜨서 면치기를 한다. 나도 따라 한 젓깔 먹었는데.. 순간 식초의 강한 기운과 매운 고추장의 텁텁함이 입안 가득이다. 아이쿠야!! 양념맛이 너무 강했네. 이런 지경인데도 암말않고 먹는 영감을 보며 이상하네 ~~~ 평소에 입맛이 까다롭고 예민하기 그지없는 사람인데, 아무소리 않고 이걸 먹는다고?? 나도 참고 먹을려다가 아무래도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
" 봐요! 국물맛이 너무 강한거 같지않아요? " 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색을 하며 " 그렇치? 당신 입에도...." 내 반응을 기다렸다는듯 최대한 내 눈치를 살피며 입가에는 " 살았다"는 안도감의 웃음이 번진다. 먹기가 고역이었나벼 내가 먹어봐도 식초와 고추장 양을 너무 많이 잡은듯 레시피데로 했는데 그게 2인분 양은 아니었나비라. ㅋㅋ
남편은 첫술에 딱 이 맛이 아니라는걸 느꼈는데 마누라가 땀 벌벌 흘리며 일껏 애를 쓰며 만들어 그럴듯하게 모양까지 내왔는데 맛이 이상하다고 하면 속상할 꺼 같아서 참는데까지 참아볼려고 했디야 ㅋㅋ 무슨 극기훈련하냐 참을때까지 참아보게 ㅎㅎ 물회국수 소생술로 다시 생수를 붓고 희석을 시켜서 끝까지 먹긴 했는데 영~ 생각했던 맛이 아니야 한강같은 물에서 국수가락, 오징어 야채들만 아까와서 건져먹고 겨우 끝냈는데 암만 생각해도 속이 상하고 기분도 편칠 않네.
거기다가 울영감 하는말이 나를 더 어이하게 만들었는데 " 맛이 이상하단 말을 처음 부터 왜 안했냐"고 물었더니 울영감 왈 "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 좋을테니까 당신 기분 좋게 해주는 약 먹는다고 생각하고 참고 먹을려고 했다" 고,,,, " 아이구 ~열부 났네, 열부 났어 " 내가 맛이 이상하다고 해서 그때 "살았다 " 싶었디야
이렇게 초복날 생전처음 만들어본 물회국수는 여지없이 실패로 돌아갔고 저녁내내 물만 들이키는 후유증을 남기며 교훈을 하나를 남겼으니 새로운 음식은 앞으로는 안하는걸로~ 늙어 새로운 시도는 나 힘들고 남 괴롭히고 경제적인 손실도 초래한다는것 ㅎㅎㅎ 물회는 이제 내생전엔 없는 음식인 걸로 하기로 했어^^ 지금껏 살면서 음식으로는 좀체 실수를 않았던지라 과도한 자신감과 의욕이 빚은 자만심의 결과이려니....ㅋㅋㅋ
이제 웬만한건 사먹는거로 결론을 지으며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음식은 요리사(?)에게~~~ 우리집 초복은 이러했으니 그대들의 초복은 어떠 했는공 ?
여름이 너무 싫은 친구가.. |
첫댓글 네가 음식 실수를 하다니 믿기지가 않네
더운데 불 앞에서 수고한 거 생각하면 맛없단 말 하기 쉽지 않지
반 이상 남이 한 음식으로 떼우는데도 별말 없는 남편 보면 이젠 밥상에 앉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거 아닐까 ㅋㅋ
물회오징어 국수 입맛 당기는데 한번 더 시도해서 보란듯 성공해 봐얄것 같은디~
국수양을 생각않고 레시피데로ㅠㅠ
이제 물회 덧증없어
그날 그 맛이 너무 강해서 ,,,
이제 물회는 먹고싶으면 사먹는거로 ㅎㅎ
요즘은 먹는 횟수도 하루 두번
그중 한번은 사먹는게 더 많어
주위에 사먹는거 흉 봤더니
내가 해보니 편하더라 ㅎㅎ
다 겪어봐야 알아여
술안주로서 물회는 섭렵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물회국수는 "세상에 그런 국수"도 있는가 싶어서
딴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내려가는데,
여러 곳에서 표출되는 "열부"기질은 거기서도....
우리집에는 뭔가 새로운 레시피에 의거한 음식도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아예 품평 자체를 못하도록 시작 단계에서 맛을 뵈고 시작하니까,
작품이 나와서 시식을 하면서 "맵다/짜다" 이런건 내가 맛을 잘못본 "탓".
향수기는 그냥 아무렇("렀"이 맞나?)지도 않은 척하는 솜씨가 대단하지만,
그집 "열부" 못지않게 "열(熱?)녀"임은 수십년 넘게 상대해온 나쯤되면 눈에 훤히 보이지.....
아무리 실패작이라고 해도
약간만 손보면 별미일것 같은데 먹다남은 물회국수는 어찌 처리했을지 몹씨 궁금하네
향수기 친구라는 체면 때문에 그거 가지러 선릉에 간다카기도 좀 그렇고.......
물회에 국수넣으면 물회국수라 ㅋㅋ
술 잘 못마시는 영감이
겨우 배운 술 한잔 할때 술 종류에 따라
내가 맞춤안주를 만들어서 대령하지
절반은 내가 먹지만 ,,,,
바같에서 술 마시고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고 나이가 드니
어쩌다 집에서만 한두잔,^^
아들도 닮이서 아예 술 한잔도 못해여
친정식구들이 모이기만 하면 나만 빼고
술 잘마시니까 본거는 있어서
안주는 잘 알아여 ㅎㅎ
아마도 내가 술을 마실수있는
체질이었다면 제대로 즐겼을텐데,,
난 술 마시는거 별로 거부감 없거든
물회 안주해서 너 랑도 마셨을수도
있었을텐데 ^^
물회는 남은거고 뭐고
덧증 없어서 건더기만 건져먹고 흔적도 없이 처리 했지
다신 안 만들라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