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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논에는 공룡이 알을 낳는다. 볏짚을 둥글게 말아 하얀 비닐로 꽁꽁 동여맨 것인데 이름은 곤포사일리지다. 곤포사일리지를 만들기 위해 두 대의 트랙터가 짝을 이루어 한 대는 짚을 모으고 한 대는 뒤따르며 둥글게 비닐을 씌우는 걸 바라보면 참 신기하다. 우리 농촌이 언제 이렇게 발전했나 싶기도 하고 겨우내 볏짚을 먹고 살이 오를 한우도 생각난다.
마냥 신기하고 뿌듯하지만은 않다. 곤포사일리지는 점점 피폐해져가는 농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제 잎을 떨어뜨려 그 잎을 영양분 삼아 다음에 새로운 잎을 틔우고 열매 맺는다. 풀꽃도 바람에 씨를 보낼지언정 그 자리에서 스러졌다가 더 강한 생명력으로 태어난다. 자신의 일부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다시 양분으로 쓰는 것이 자연의 소박한 이치다.
요즘 벼는 죽은 자기의 몸마저 내주어야 한다. 죽은 제 몸을 퇴비로 써야 병충해에 강해지고 알곡도 실하게 맺는데 자꾸 빼앗기기만 한다. 한국의 논은 매년 지력(땅심)이 감퇴해서 농부들은 화학 비료를 뿌린다. 우리의 벼는,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쌀은 물과 흙과 햇살과 바람과 농부의 땀과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지어진다.
농부들도 볏짚만큼 좋은 퇴비가 없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농촌의 현실에서 당장에 돈이 되는 곤포사일리지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제 살을 깎아 먹는 거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함부로 유기농을 논하지 마시라.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
1990년 라면의 평균 가격은 200원이었다가 2015년에 943원으로 올랐고 평균 1.000원이었던 자장면 값은 4.500원이 되었다. 같은 기간 쌀값은 95.156원에서 158.138원으로 오르는데 그쳤다. 25년의 세월을 감안하면 거의 제자리 수준이다. 현 정권은 출범 당시 쌀값 인상을 공약했지만, 오히려 작년보다 8천 원이 떨어졌고 매년 떨어지는 추세다. 현 정부에 쌀값 인상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과 의지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농민 백남기 씨는 지난 14일, 동료 농민들과 함께 쌀값 인상과 농촌 안정 대책을 요구하러 집회현장을 찾았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 당하고 쓰러져 아직도 생사를 헤매고 있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다는 농민들에게 정부는 차가운 물대포를 쏘아댔다. 정부의 공약을 믿고 버티듯 농사를 지은 결과는 싸늘한 배신으로 돌아왔다. 농사 따위는 내 알바 아니라는 사회의 냉대가 물대포 속에 들어 있었다.
정부는 세계 시장에 하나를 팔려면 하나를 사주는 게 마땅하다고, 그것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라며 시장을 개방했다. 공산품을 자꾸 만들어야 일자리도 생기고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논리였다. 거짓말이었다. 물건은 많이 팔렸는데 잘 사는 이는 따로 있었고 일자리는 기계가 대신했다. 그 사이 우리 밥상은 값싼 외국 농수산물에 처참하게 점령당했다. PC방엔 실업자나 다름없는 취준생이 넘쳐나고 대학은 낭만을 잃었다.
윗물이 다 차면 자연히 아랫물이 찬다는 낙수효과는 윗물들의 탐욕스러운 술수임이 드러났다. 정부가 말한 윗물은 절대 차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넋 놓고 윗물을 기다리지는 않겠다. 말단의 경찰공무원이어서 매달 내려오는 물은 많지 않지만, 내 아래에 있는 다른 이의 그릇에다 내가 가진 물을 조금씩 나누어주려 한다. 내 몫이 좀 줄어도 괜찮다. 지금보다 불편하게 살아도 참을 수 있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나를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가을 논에는 하얀 공룡 알이 눈물처럼 점점이 찍혀 있다. 가을 들판에 널린 공룡 알은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벼들의 집단 사체이고 한해 동안 겹겹이 쌓인 농부들의 설움이다. 알곡에 이어 제 몸뚱이까지 내어주는 벼와 허리띠를 졸라매기만 하는 우리 농부들은 야위어서 닮은 꼴이다. 농민 백남기 씨의 회복을 빈다. 꼭 일어나시라. 일어나서 다시 농사지으시라. 그대가 죽으면 우리 농촌도 함께 죽는다.
첫댓글 아~~~~~~~~
애절함이 묻어납니다~ㅠ ㅠ
저도 그분의 완쾌를 빕니다.
눈물이 납니다
그져 벌떡 일어나시옵기를 기원드립니다 ?
백남기씨 꼭 일어나서 다시 농민투쟁을 해야지요.쾌유를 빕니다.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거 아닌가요.
눈물이 납니다 ㅜㅜ꼭 일어나세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