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경 앞에서 절망한다
뭐라 이를 수가 없다
마치 말을 익히기 전의 아기처럼
첫 모음과 자음을 궁리 중이다
궁리 중이기만 하다
가르치는 아이 하나는 왜 지각을 했느냐는 힐책에
주말 사이 온 도시가 신록으로 물들어버려서
길을 잃고 말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왜 그리 쉽게 야단을 쳤을까
맹랑한 봄의 새 독도법을 윽박질렀을까
따분한 건 나의 노래였나 보다
함부로 부른 노래 속에 잃어버린 풍경들이었나 보다
해마다 봄이면 몸져눕는 어머니처럼,
반백년 전의 산통을 되새김
되새김질하며 돋아나는 저 신록 속에 저릿한
무엇인가 있구나 차라리 아기처럼
뭐라 말은 못해도 두 눈이 빛나는
아기처럼만 있었어도 좋았을 것을
잃어버린 절경이여
돌아가자 시무룩해진 봄에게로
뭐라 할 수 없는 신록의 말들에게로
[ 붉은 빛은 여전합니까 ], 창비, 2020.
첫댓글 신록은 지금의 시기에 딱 맞는 단어입니다.
오늘도 도시의 저 신록에서 길을 잃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