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 북일 교섭 30년의 평행선을 돌아보다
실패, 좌절, 파국, 절망의 바닥에서 평화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지식인의 성찰과 모색
북한과 일본 두 나라가 '영원한 적대' 관계로 나아가는 원인과 배경을 방대한 자료와 당사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낱낱이 밝혀내어 기록했다
북일 교섭의 시작은 1990년 11월 3일~4일에 예비회담이 이뤄졌다. 제1차 회담은 1991년 1월 30일 평양에서 시작됐다. 제2차 회담은 3월 11일부터 13일까지 도쿄에서 열렸다. 북일 회담은 식민지 지배의 반성이라는 근본 문제를 둘러싼 대립에 더해 미국이 요구하는 핵 문제와 일본 자신이 제기한 '이은혜' 문제로 인해 시작부터 장애물에 부딪히게 됐다.
이 후 총 8차례의 북일 교섭이 있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미국은 일본이 핵 개발을 향해 가는 북한과 국교 수립을 위해 교섭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일찍부터 분명히 했다.
북한이 2016년 1월 6일 제4차 핵실험을 했다. 2월 7일엔 인공위성 로켓 '광명성 4호'를 발사했다. 일본 정부는 2월 10일 부분 해제했던 독자 제재를 전면 부활하고, 재일 조선인 미사일 기술자들의 재입국 금지와 북한에 기항했던 제3국 선박의 입항 금지 등의 신규 제재를 결정했다. 이렇게 해 북일 관계는 완전히 단절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북미 대립은 격화되는 외길로만 나아가게 됐다 북한은 핵실험을 거듭 하고, 미사일 시험발사의 속도가 순식간에 더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