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메마른 책에 팔꿈치 올리고, 꿈꾸었 지,
월로 뱅스 선생님과 수업과 창문 너머,
초록으로 변해가는 숲을,
그 비밀들과 늘어감을,
그 숨겨진 둥지들과 종류를
온종일 보며순간순간 그 의미 헤아릴 수 있기를.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 건 책을 통한 배움이 아니라,
깊은 잠에서 꽃잎처럼 흩어지며 수런대는
해묵은 진흙탕 피.
그렇게 봄이 교실을 둘러싸면, 우리는 실내에 갇혀 있는 게
고역이었지.―
수업 시간 내내 수건거리고, 틈 날 때마다
잭나이프로
우리의 고동치는 머리글자 책상에 새기고,
윌로 뱅스 선생님에게, 안경 너머 두 눈은 돌 같고,
다리는 두껍고, 가슴은
연필과 산수를 사랑하는 그 여자에게,
무자비하게, 이치에 어긋나게
그렇게 붙들려 있는 것에 점점 더 화가 났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지―눈부시게 아름다운 날들
스러져갓지,
우리가 포로들처럼 교실에 앉아 분필 가루 마시는 사이
세상 가장자리에서 나뭇잎은 무성해지고 새들은 울었지―
그래서 우리의 증오는 커져갓고,
반란을, 심지어 살해 음모까지 꾸밀 지경이 되었지.
오, 우린 나가고 싶은 갈망에 그 여자를 쇠사슬에 묶었지,
우린 그 여자를 목매달아 죽였지!
그러던 어느 날, 윌로 뱅스 선생님, 우린 당신을 보았어,
우리가 세 시에 풀려나 신나게 달려가다
버려진 그네들 옆을 지나는데, 당신이
솜털 덮인 꽃 같은 모습으로
낡은 벽돌담에 기대 있는 게 보였지,
미술 선생님 품에 안겨서.
[ 기러기 ] , 마음산책, 2021. (민승남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