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피는 꽃⎟반딧불이
김경구
밤마다 비무장지대에서는
반딧불이가 힘을 모읍니다.
많은 친구들이
지뢰를 밟을까 봐.
조심해, 조심해
노란 불빛을 밝혀 줍니다.
몸이 아픈 날도
꾹 참고
점
힘을 냅니다.
멀리서 보면
밤에 피는
작은 꽃송이입니다.
-『우리는 비무장지대에 살아』 (2024 뜨인돌어린이)
조약돌 철학자
김지원
조약돌이 모래톱에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왜 여기 있는 걸까?
깊이 빠져드는 생각을 파도가 깨웁니다
도르르 굴러서 제자리
그때 파도가 또 흔듭니다
도르르 굴러서 다시 제자리
나는 누구일까?
-《동시 먹는 달팽이》 (2024 여름호)
의자에 앉아 보고 싶은 노란 의자
김현서
시우가 노란 의자에 앉아서
진료 받을 차례를 기다릴 때
목발을 잠시 쉬게 하고 생각에 잠길 때
기다리다 설핏 잠이 들 때
노란 의자는 시우의 마음이 궁금해져요
노란 의자는 한 번도 의자에 앉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노란 의자는 한 번도 목발을 짚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동시빵가게》 (2024 38호)
감꼭지
박소명
감나무에
찾아 온
초록 초록
초록 모자들
모자마다
꽃담아 와서는
왜
뚝 뚝
떨어뜨리나 했더니
댕글댕글 댕글
어린 감을 내보이는
쑥국에서 새소리가 난다
박예분
시골에서 캐 온 보드라운 쑥 한 소쿠리
엄마가 들깨 갈아 넣고 뭉근하게 끓였다
할머니가 해사한 얼굴로 맛보며
“야야, 쑥국에서 새소리가 난다.”
할아버지도 기다렸다는 듯 맛보며
“허허, 참말로 새소리가 나네.”
두 분이 싱글방글 장단을 맞추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봄을 삼킨다
할머니 할아버지 가슴 깊은 곳에 사는
쑥국새 한 마리 소리 없이 날아와
쑥꾹쑥꾹 쑥쑤꾹 쑥꾹 쑥꾹 노래한다
쑥국에서 새 소리가 난다.
-《동시마중》 (2024 7·8월)
만둣집 산신령
유은경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산신령이 물었다.
이 왕만두가 네 만두냐,
김치만두가 네 만두냐?
나는 살래살래 손 흔들며
둘 다 제 만두 아닙니다.
뭘 먹을지 고민 중이에요.
산신령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천천히 주문하거라.
-『제3회 우리나라 좋은동시』 (2024 열림원어린이)
그 작은 의자
이봉직
바람의 언덕에
의자 하나 놓았다
그 작은
곳에
그 많은 바람 엉덩이
그 큰 바람 엉덩이
앉아
쉬고 있다
-《열린아동문학》 (2024 봄)
옷걸이
이상교
세탁소에서 딸려 온
가느다란 철사 옷걸이
무거운 옷을 벗고
흔들흔들 매달려 있다.
꼬마 문어가 되어
헤엄쳐 달아날까
날개 활짝 편 새가 되어
훌쩍 날아오를까
장롱문 손잡이에 잡혀
꿈꾸는 중이다.
-《동시마중》 (2024 5·6월)
나무의 입
이시향
한자리에 서서
여행 한 번
못 해 본 나무.
잎은 많은데
입이 없어
노래도 한 번
못 부르던 나무.
여름에 입이 생기자
맴~매앰
노래하며
친구들 부른다.
-《아동문예》 (2024 여름호)
삐딱한 못
조기호
탁, 탁, 탁…
엄마의 손끝에서
자꾸만 튕겨져 나가던
못이
꽝!
아빠가 눈을 부릅뜨고 힘껏 내리치자
금방 납작해졌지요
하지만 봐요,
삐딱하게
고개를 휙 비틀고
누워버렸잖아요
혼낸다고
다 말 잘 듣는 것 아니잖아요
-『누구에게 말하지?』 (2023 초록달팽이)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이묘신
첫댓글 이상교 선생님 <옷걸이>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 되셨네요~축하드립니다~^^
꿈꾸는 옷걸이~^^축하드려요!
'조약돌 철학자' 가 가장 나은 동시로 읽히네요, 내게는. ><
첫댓글 이상교 선생님 <옷걸이>
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 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꿈꾸는 옷걸이~^^
축하드려요!
'조약돌 철학자' 가 가장 나은 동시로 읽히네요, 내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