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설
인간은 죽지 못해 살지 못한다. 죽음이란 생물학적인 수명의 종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그와 존속하던 정신적인 모든 것들도 함께 종언을 고한다.
죽으면 그가 가진 증오와 분노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물론 증오심이 가문을 통해 대대로 전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있던 증오심은 죽음과 함께 완전히 사라진다. 분노도 똑같다.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분노도 죽음과 동시에 소멸한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은 증오와 분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증오와 분노를 끌어안고 이승을 떠나지만
저승의 문턱에 닿기도 전에 그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죽음과 증오의 동행은 저승 세계에선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설혹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더라도 증오와 분노를 죽는 날까지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명예와 자존심도 마찬가지다. 명예와 자존심이 구겨지면 누구나 괴로울 수밖에 없다.
명예와 자존심은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삶의 수단적 가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것이 손상되었다고 해서 삶이라는 목적을 팽개쳐선 안 된다.
명예와 자존심도 없이 아무렇게나 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명예와 자존심을 중히 여긴다면 아마 인생에서 그만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치의 경계선은 수단적 가치 영역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이 목적 가치의 영역으로 침범하게 놔둬선 안 된다.
증오와 분노가 되었든, 명예와 자존심이 되었듯, 그리고 그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내 삶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도구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죽여야 한다. 증오도 죽이고, 분노도 죽이고, 명예도 죽이고, 자존심도 죽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도구적 가치를 죽이면 그 자리에서 새 삶이 단단히 뿌리를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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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첫댓글 억수로 어려운 고차원적 인생 철학입니다.
버림이 참 어려운데.
모두 버렸다는 스님도, 목사님도, 신부님도 욕심이 있더이다. ^^
버린다 하면서도 못버리는게
인간의 참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약간의 짙고 얕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그 모습들 속에 살며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