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교향곡 1번' 을 들으며
1
무대 뒤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 그 신비로
운 서주(序奏) 에 창밖 가로수 잎맥들, 팽팽하네
쌀 튀밥 같은 이팝나무, 보릿고개 시절 눈으로만 삼
키던 미미(美味),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날들, 저만
치 매달려 있네
트럼펫 팡파르, 차창에 내려앉는 꽃잎들, 27번 국
도의 오르막은 한껏 축제 중이라네
못물이 넘실대는 논바닥이 부드럽고 스케르초와 부
드러운 왈츠 덕에 차창 풍경이 경쾌하네 오케스트라
와 팀파니가 하행 모티프를 강하게 주고받으니, 저
모퉁이를 돌면 곧장 풍성한 여름과 만나겠네
2
현악기 하모닉스로 풍경이 술렁이네 흔들리며 밀려가
는 농부들, 바이올린, 첼로, 더불베이스, 농기 대신 악
기를 들쳐 멘 듯하구나 큰북을 이고 가는 양 저 노인네,
차를 세우고 손을 빌려주고 싶지만 저세상 사람 같네
막 겨울이 야산 끝자락에 회색의 입술 자국을 남겠네
뻐꾸기 노래하니 '울지 말고 노래를 불러라, 노래
를 부르는 동안, 기쁨이 올 것이니' * 축제의 노래 고
조되지만 애달프게 붉어져만 간 나의 계절, 차창 밖
나무둥치가 돼버린 난, 지난날 뿌리혹들을 아파하네
3
주암호반도로를 달린다네 수면이 파르르 깨져 있네
나무들이 호수 위로 찢겨 내리누나 '보리수' 의 선율을
지닌 트리오, 팀파니의 리듬을 타고 저현(低鉉)이 어둡
구나 차창 밖은 봄이건만, 차창 안은 겨울이라네 룸미
러에 성에가 끼고 마디마디 겨울이 쌓이네 창문을 내
려 보지만 날개 잘린 겨울은 쉬 빠져나가질 않는구나
논바닥, 깊게 파인 손금처럼 물속 검은 고랑이 출
렁이네. 여기저기 모가 꽃히면 저 고갯마루도 말랑해
지리라 거칠고 활기찬 스케르초와 유연하고 사랑스러
운 트리오가 대비를 이루니, A장조의 렌틀러에 오보
에가 대선율에 얽히누나
4
D단조, 팀파니의 희미한 연타에 등장하는 더블베
이스 선율, 뒤이어 등장하는 '카바레 풍'의 밴드 선
율, 두 계절 간의 벽이라네
호수 끝자락쯤, 떠나지 않은, 아니 떠날 수 없던 철
새 한 뭉텅이, 플라밍고 자세를 취하누나 '그대 함께
언약한 내 사랑의 고향, 나 잊질 못하네, 그 아름다운]
Annie Laurie를 위하서라면 나, 기꺼이 목숨을 바치리
라 ' ** 바이올린 소리에 첼로 소리가 묻혀버리고 4도
하행 음정이 저만치 들려오네
영화 스크린 속의 봄, 관람객으로서 맞는 봄......
꽃향기, 피냄새, 밥냄새, 아, 냄새도 맡지 못할 내 아
버지의 겨울 속 내 어머니의 봄
풀어지는 바이올린에 ' 그녀의 밤색 눈동자 ' 가 애처
롭네 멀리 송광사 팻말이 보이고 조계산 끝자락이 막
눈에 들어오네
5
2분의2박자,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인 포르티시모
총주에 깜짝 놀라네 기어를 움켜쥐어보지만 연주자들
의 손가락, 입술, 어깨, 지휘자의 길게 늘어진 머리카
락이 온몸을 간질이고 문지르네
산이 통째로 차 안으로 밀려오네 계곡물이 스미고
칡덩굴이 핸드을 감아쥐네 차를 길섶 모퉁이에 세울
수밖에 없네
차창 밖 편백나무도, 배롱나무도, 여전히 옷고름을
물고 있는 송광사도 다들 예쁘기만 한데, 천하의 이
태백의 시에 곡을 붙였던 그가 괴로워하네 ' 대지가
노래한다 '고 말한 그가 대지 위에서 눈물을 보이네.
안과 밖, 불이문(不二門) 이건만 지금 후광 가득 문설
주 아래 내 나이 또래인 그가......
* 멕시코 민요 「 내 예쁜 사랑Cielito lindo」의 한 소절.
**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 로리Annie Laurie」dml 의 한 소절
[슬프다 할 뻔했다], 문학과지성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