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보는 고통 [박찬일]
*
혼자 날아다니다, 흙에서 흙에서 뒹굴다, 가는 나비여.
날개가 아니라 몸뚱어리라는 것을.
그가 날갤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것을.
내 진작 알았더라면
날개가 몸뚱어리에 붙은 어떤 단어라는 거.
내 진작 알았더라면
몸뚱어리가 가니까 날개가 따라 접히는 것을.
내 진작 알았더라면
혼자 다니다 흙에 뒹굴다 흙에 뒹굴다 가는 나비에,
나비 운명에,
내 가까이 가지 않았을 텐데.
*
하늘하늘 날아다니다가, 하늘―하늘을 궁금해 하다가,
평생 다 보낸 자
하늘 아래 것 다 놓친 자
물구덩이에 빠졌다,
물구덩이에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나비의 원수가 날개―
나비의 원수가 하늘
*
검은 제비나비가 무릎 아래에서 펄럭거리고 다니는 것은
벌레를 잡숫기 위해?
천만에! 땅에 대고 싶어서다
땅에 기대어
저 무한 낭떠러지 공간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팔 랑 팔 랑
팔 랑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가라앉는 나뭇잎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줄행랑치고 있는 것이
무릎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다
삼켜질 데가 없는 공간으로부터
삼켜질 곳을 찾아서.
*
하늘에 날개가 닿았다
꺼칠꺼칠한 곳이 있었고 말랑말랑한 곳이 있었다
말랑말랑한 곳에 걸쳐 앉았다
바깥에서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침을 발라, 구멍을 뚫고, 보니까
하늘 바깥에
하늘이 있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동안 헛고생한 거다
하늘에 가면 다 가는 줄 알았는데
도달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늘 바깥에 또 하늘이 있었다니
길 떠나지 말라고 한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걸까
하느님이 둘 이상이라는 것을
- 시와세계, 2024 봄호
첫댓글 나비는 자유롭다고?
나비는 돌아갈 집이 있을까?
집으로 가면 가족이 있을까?
날갯짓이 끝나는 날에 죽는 것일까?
우아하게 날아다니며 널려있는 꽃에 빨대를 꽂고 배부르게 사는 줄 알았는데
슬프게 보이기도 하고
다음 생에 태어나면 새가 되어 덜 슬플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