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863〉
■ 음지의 꽃 (나희덕, 1966~)
우리는 썩어가는 참나무 떼,
벌목의 슬픔으로 서 있는 이 땅
패역의 골짜기에서
서로에게 기댄 채 겨울을 난다
함께 썩어갈수록
바람은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흔들고
이윽고 잠자던 홀씨들 일어나
우리 몸에 뚫렸던 상처마다 버섯이 피어난다
황홀한 음지의 꽃이여
우리는 서서히 썩어가지만
너는 소나기처럼 후드득 피어나
그 고통을 순간에 멈추게 하는구나
오, 버섯이여
산비탈에 구르는 낙엽으로도
골짜기를 떠도는 바람으로도
덮을 길 없는 우리의 몸을
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
- 1991년 시집 <뿌리에게> (창작과 비평사)
*산지가 약 70%인 우리나라 산림을 구성하는 주된 나무는 참나무라고 합니다. 참나무는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총칭하는 개념으로,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오리나무 등이 있습니다.
참나무는 단단하여 예로부터 건축재, 농기구 제작 등에 쓰였으며, 질 좋은 숯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표고버섯이나 상황버섯 등 참나무에서 자라는 버섯들 대부분은 우리 몸에도 유용한 것들입니다. 벽난로에 사용하는 장작은 참나무가 아니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더군요.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나무들 중 진짜 나무라는 ‘참’나무라고 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詩는 썩어가는 참나무들을 의인화시켜서,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피어난 강인한 생명력을 예찬한 작품입니다.
이 詩에서는 벌목을 당한 이후 생기를 잃고 썩어가는 참나무를 관찰하며, 악조건 가운데 버섯이 피어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합니다. 깊은 산속에 벌목되어 방치된 채 찬바람을 맞으며 생명을 잃은 참나무들은, 서로를 기대고 의지하며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어진 상처마다 피어나는 버섯, 즉 음지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절망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는 생명력과 그에 대한 희망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노래하며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