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章 용유진, 다시 도화령에 가다(二)
1.
금대괴두의 말대로 임태풍은 표행이 야숙하는 곳에 있었다. 그것도 단신으로 찾아와서 이장도를 위시한 표행의 중요인물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용유진과 진 장자가 낙조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니 벌어 지고 있는 상황이 그랬다. 이장도가 손을 들어 그와 진 장자가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마침 잘 오셨소. 여기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같이 한잔 하지요. 이 쪽은 우리 일행인 용유진 표사, 옆에 계신 분은 사천의 진학, 진 장자 되시오. 그리고 이쪽은...."
말을 멈추고 그는 진 장자를 유심히 보며 물었다. 진 장자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아시는 것 같군요. 뵈신 적이 있으십니까?"
진 장자는 여전히 눈이 동그래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군. 난 전혀 본 적이 없는 분일세."
거짓말인 게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는 태도에 용유진은 실소를 흘렸 다. 진 장자는 임태풍을 본 적이 있었다. 같이 잔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백리제일루에서 그와 같이 있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혹시나 그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봐 감추어주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요령 없이 시치미를 떼서야 오히려 의혹을 사기 쉬웠다. 용유진은 가볍게 웃으며 진 장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뵈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그날 저와 백리제일루 에서 만났을 때."
진 장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서 가려줬는데 왜 그러는 거냐라는 빛으로 그를 보면서.
"아 그랬던가? 인사는 안 했지. 그래서 기억을 못하는 모양일세."
용유진은 태연히 임태풍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인사를 나누시지요. 백만 녹림도의 총표파자이신 임태풍 대협 이십니다. 철권(鐵拳),철각(鐵脚),철두(鐵頭),철담(鐵膽)을 갖추셨다 해서 사대철인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계신 분이지요."
"아...., 그렇군. 그런 분이군. 처음 뵙겠소. 나 사천 진 장자요."
인사를 나누면서 진 장자의 눈은 더욱 동그래졌다. 녹림도라면 도적 패거리 아닌가. 총표파자라면 두목이란 이야기다. 도적패 두목을 표사 가 알고 있고, 게다가 술까지 나구고 있었다면 이건 큰 문제가 아닌가. 그런 걸 그리 쉽게 시인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이렇게 눈으로 말하 는 것을 용유진은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술잔을 잡았다. 비단 진 장자 만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좌중의 모두가, 뿐만 아니라 각자 자기 일 을 하는 척하면서도 시종 이 자리를 훔쳐 보는 주변의 표사들까지도 그 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로서는 변명할 수도 없었고,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것이다. 한편 임태풍은 진 장자와 용유진의 인사를 고개 한 번 까닥하는 것 으로 받아넘기고, 들고 있던 술잔을 기울였다. 목젖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도록 시원하게 술을 비워버리고는 빈 술잔을 탁자에(이동 중에 사 용할 수 있도록 접을 수 있는 탁자였다. 물론 중원표국의 물건이었다.) 내려놓고는 말했다.
"술은 잘 마셨소. 이제 내가 온 용건을 이야기하지요."
그는 둘러앉은 사람들의 면면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왕소팔에게 시선 을 고정시켰다. 무언가 말할 듯, 단어를 고르는 듯하다가 그는 다시 시 선을 돌려 이장도를 향했다.
"이 국주가 이번 표행의 책임자겠지요?"
이장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표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제게 말씀하시면 되지요."
"이국주께서는 합리적인 분이시니 이야기가 잘 통할 걸로 믿소. 간 단히 말씀드려서 이번 표물은 제게 양보해 주시도록 물주를 설득해 달 라는 거요. 긴히 쓸 곳이 있어서 돈이 좀 필요한 차에 이 표물이 지 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설마 이 형제의 체면을 무시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이장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번 표물을 양보해 달라고 하셨소? 전부 말이오?"
임태풍은 못 알아볼까봐 두려워하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전부요. 수레 오십 대에 실린 황금 일백만 냥 전부."
이장도는 실실 웃었다.
"임 형의 배포가 크다는 말은 들었지만 욕심도 그만큼 크군요. 처음 알았소이다."
임태풍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크지 않소. 나는 정말 황금 일백만 냥으로도 부족하오만 가 지신게 그것밖에 안 돼 아쉬워하는 중이오."
이제 이장도는 표정을 굳혔다.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통상 표행을 통과시키는 사례는 많아도 표물의 삼 할, 이번 처럼 덩 치가 클 때는 일 할로 참아주는 것이 녹림의 법도 아니었소? 또한 털 어도 다 털지는 않는다는 것은 녹림의 법도 중에도 금기로 여겨 지켜 지는 것임을 임 형이 더 잘 아실 텐데, 어찌 이번에는 이렇게 도리를 무시하시오. 듣던 말과 매우 다르니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소. 실망이 오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들었는지 모르나 이번에 나는 정말 이 표물 전부가 필요하오.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는 것도 사실이오."
이장도는 손이 장검의 손잡이로 다가갔다. 이쯤 이야기가 진행되면 싸우지 않고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검을 잡지 않고 다 시 손을 거두었다.
"홀로 오신 손님이니 이번에는 도려보내드리겠소. 다음에는 수하들 을 데려오시오. 그때 한번 가르침을 받고 싶소."
임태풍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와 싸우겠다는 거요? 난 표물만 넘겨주면 만족이오. 싸울 필요가 없지."
이장도는 고개를 치켜들고 하하 웃은 뒤에 노기 띤 눈으로 임태풍을 향해 말했다.
"혼자라도 괜찮으니 지금 싸우자는 뜻으로 들리는군. 본인이 더 이 상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양해하시길 바라오."
그러면서 다시 검으로 손이 가는 것을 왕소팔이 막았다.
"한 번 참았으면 두 번도 참는 것이 좋겠지요. 이 대협, 대협만 괜찮 다면 내가 임 총표파자와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소만....."
이장도는 여전히 노기가 풀리지 않은 눈으로 임태풍을 노려보면서 왕소팔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임 형만 괜찮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임태풍도 고개르 끄덕였다.
"원래 물주와 직접 이야기하는 법은 없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하는 수 없지. 말씀해 보시오."
"전부 강탈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어기면서까지 이 표물을 가지실 이 유가 있을 법한데, 말씀해 주실 수 있소?"
임태풍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크게 세 가지만 말하겠소."
왕소팔은 감탄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세 가지씩이나."
"그렇소, 세 가지요. 첫째, 왕 장주께는 이 황금 일백만 냥을 제게 양보해도 일천만 냥 정도가 남아 있으니 그리 타격이 아닐 거요."
"내가 그렇게 돈이 많았나? 나 돈 많지 않아요. 임 총표파자가 아시 는게 있으면 좀 찾아주시오."
"천하에 산재한 지부들이 있지 않소. 그재산을 모두 모으면 그 정 도가 넘을 거요. 일천만 냥은 내가 박하게 매긴 값이라 할 수 있소."
왕소팔은 한숨을 쉬었다.
"창피한 이야기라 밝히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군. 사실은 이번에 모 종의 일로 파산했소. 알아보시면 금방 아실수 있겠지만 천하의 지부들 도 전부 남에게 넘어갔다오. 그래서 더 이상 사업에 의욕을 잃고, 그나 마 남은 몇 푼 안되는 재산을 긁어 모아 이렇게 시골로 은거하러 들어 가는 거요. 임 총표파자가 이마저 거두어가면 나는 저기 진 장자처럼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 거요. 해량해 주시오."
진 장자가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내가 어쨌다고?"
임태풍은 고개를 저으며 두 번째 손가락을 폈다.
"둘째 이유가 그래서 나오는 거요. 불의한 재물이기 때문에 전부 가 져가도 난 녹림의 법도를 어기는 것이 아니오."
"불의한 재물?"
왕소팔은 이번에야말로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내 재산이 어째서 불의하다는 거요. 그리고 이게 이번의 내 파산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요."
이번에는 임태풍이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그는 말했다.
"내 말이 너무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해도 당황하거나, 놀라거나, 아 니라는 듯한 연기는 하지 마시오. 사실이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 고 있는 것이니 말이오. 조정에서 왕 장주를 노리고 있다는 건 본인도 잘 알 거요. 왕 장주의 재산을 노린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지. 전 황제 의 황음한 작태와 사치로 인해 조정의 창고가 텅텅 비었으니 뭘로든 채우고 싶은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소. 하지만 아무리 황제라도 백성의 재산을 근거도 없이 그냥 강탈하면 무도하다고 욕을 먹겠지요? 그래서고민하는 차에 마침 왕 장주가 조정 대신 몇몇과 결탁해서 안 좋은 일을 한 것이 동창 조사에서 드러났다오. 구체적인 증거를 잡아서 이제 대신 몇몇과 묶어서 같이 터뜨리려는 찰나에 왕 장주가 갑자기 파산을 선언, 기업은 분산해서 가신들에게 빼돌리고 북경에 남은 재산 은 몽땅 현금화해서 시골로 도주 중이라는 것이 이번 표행의 정체지요. 사천에서는 어떻게 황제의 손을 피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이렇 게 대규모의 표행을 만들어 세간의 이목을 돌려놓고 뒤로 북경에서는 동창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하실거요?"
임태풍은 손을 들어 왕 장주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물론 아니라고 하시겠지. 하여간 그래서 세 번째 이유가 등장하는 거요. 어차피 이 표행은 실패하게 돼 있고, 표물은 누군가의 손에 넘어 갈거요. 그러느니 차라리 내게 넘기라는 거요."
이번엔 이장도가 화를 내며 물었다.
"표행이 실패한다는 거요? 그리고 누구에게 넘어간다는 거요? 듣 자하니 정말 황당한 말만 하는군."
임태풍은 그런 이장도가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이 표행을 노리는 무리가 적어도 다섯은 있소. 그 중 어느 무리도 만만치 않지. 물론 우리 녹림도가 그 중에도 단연 으뜸이지만 말이오. 참고로 말하면 동창 위사들도 복면 쓰고 도적으로 분장해서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소. 아, 아....서두르지 말고 마저 이야기를 들어 보시오. 오늘 난 설득을 하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그는 문득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듯하더니 이장도를 향해 말했 다.
"다섯 무리 중 첫 번째가 등장할 모양이군. 준비하셔야겠소."
이장도도 모종의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대표두들 을 향해 흔들어다. 대표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표사들을 지시해 방 어진을 치기 시작했다. 수레를 둥글게 세워 원진(圓陳)을 만들고, 황소 들은 멀찌감치에 몰아 따로 묶었다. 표사들은 전원 수레 뒤쪽에 몸을 감추고 병장기를 빼들었다. 이렇게 진을 치고는 상황에 따라 혹은 나서 고, 혹은 숨어서 적을 막는 것이다. 임태풍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나는 이만 가오."
왕소팔이 그를 향해 한 마디 더 물었다.
"마지막 질문이오만, 도대체 황금 일백만 냥이 어디에 필요한 거요. 그것도 부족하다는 일이 도대체 뭔지 말해줄 수 있소?"
임태풍은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말했다.
"지금 북경성 밖에 난민이 백만 명이 있소. 그 사람들에게 일인당 한 냥만 줘도 백만 냥이 필요하지.황금 한 냥이면 조금 적은 감은 있 지만 고향에 돌아가서 올 겨울을 날 양식, 그리고 내년 봄에 뿌릴 씨는 살 수 있을 거요. 그게 당신 표물이 필요한 이유요."
그는 돌아서다가 다시 용유진을 향해 물었다.
"자네에게 술 한잔 얻어마신 값으로 말하겠지만 이 표행에서 빠지는 게 좋을 걸세. 목숨 걸고 지켜줄 가치가 여긴 없어."
용유진은 그를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 표삽니다."
임태풍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사라 진 숲에서 이제 산을 무너뜨릴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말발굽 소리였다. |
첫댓글 즐독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ㅈㄷㄱ~~~~~```````
감사합니다
잘밨어요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어요.
즐감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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