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집에는 창이 많다
이동욱
전선 위의 거미는 강박을 탐구하는 자세와 닮았다
품에서 솟아난 다리가 잠시 습기 속으로 잠길 때 뾰족한 발끝에 눅눅한 공기가 하나씩 터지며 밀려난다 저기, 하고 들어 보이던 그녀의 손가락과 창문과 한여름 감기와 알약이 거미의 발에 꿰어져 있다 거미가 몸을 일으킬 때
소나기는 다시 돌아오고
바람이 분다 남아 있던 빗방울이 거미줄을 따라가면서 야위어지듯 목숨을 부추기며 바람이 분다 현수막처럼 펄럭이는 거미의 집 거미의 집엔 창문이 많고 창은 모두 비어 있어서
열어놓은 창으로 비가 들이쳤다
도대체 가늘고 긴 거미의 다리가 매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끔씩 조그만 털이 돋아나는 피부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어쩌면 내 편지가 가족을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선 위의 거미는 잠시 머뭇거린다
그녀의 손가락은 공중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바람이 몰아오는 비린내 속으로 내 머릿속으로 그녀는 조심스레 손가락을 담근다 담갔다가 다시 뺀다 다이빙 선수의 도약처럼 완벽한 직선이다 저 완고한 자세가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전부일지 모르지만
거미의 집에는 많은 창이 있지만
*한 권의 시집에서 좋은 시 한 편을 찾는 것은 어렵다. 시가 안 보일 때가 있고, 내 눈이 흐릴 때가 있다. 그렇다
#이동욱 #나를지나면슬픔의도시가있고 #거미의집에는창이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