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보는 시점에서도 지나치게 나무가 많을까,
이 시절은 새로운 떨림도 없이, 오 침통한 노을이여,
거리에 서 있는 침울한 존재여, 나무나 나나
혼자 종일 술을 마시던 카페도 사라졌다, 은행으로
바뀐 옥상이 있던 옛날 집과 돌아가는 간판과 착상
안 되는 불면의 거리, 옮겨지기 전까지 당분간 이곳
에서 나무나 나나
나무에 기억력이 있다면 이 나무 또한 앓으며 서
있다, 어느 날 아침 마주 보던 나무들이 뽑혔고 넓어
진 도로 위 자꾸 사람들이 죽는 자리, 제 검붉은 잎
사귀로 그림자로 뒤덮인,
이제 다른 나무에 기대어 나무가 보는 거리를 본
다, 내 주위에는 언제나 어떤 종류건 나무가 있었다,
다른 뜻은 없다, 우두커니 서서 태어났던 곳의 다른
용도를, 한편으로는 떨어지는 것들의 전형을 아무 궁
금증 없이 응시하는
길가의 나무가 섬세하고 창백한 뿌리를 침통해한
다면, 시선을 돌리고 난 후에 남아 있는, 복잡한 과
정을 거친 후에 뭔가가 되고 싶지 않은,
나무나 나나 나무였던 것의 이후에 관한 아는 바가
없고, 나는 하나를 결정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
던 시절을 넘어왔다, 미루였는지 양버들이었는지 몇
그루의 나무들 속에서 폭우 속에서 장엄이라는 단어
를 떠올린 적 있으니 이 부질없는 시여, 벌레들의 집
과 흘러내리는 수액의 성가신,
비스듬히 서서 품종과 자생지를 모르는 나무에 붙
은 종이 한 장, 잃어버린 개를 찾습니다, 나무만 이
자리에 두고 가는 게 미안하지만 잃어버리는 방식이
다른 우리가 사는 길이라면, 나무나 나나.
[명랑하라 팜 파탈],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