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실마을의 객에서 하루 밤을 보낸 후 날이 밝자마자 은장도 의 주인을 수소문 하였다. 좋이 고희를 넘긴 듯한 객주는 은장 도를 이리저리 유심히 살핀 후 “임채옥(林彩玉)이라. 이 마을 에는 임씨가 없는 데……금장의 칼집과 세련된 음각의 문형으 로 보아 상당한 명문대가의 규수가 지니는 은장도가 틀림이 없는 터……”
나는 속으로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하고 답답해 하는 데 갑 자기 노옹의 얼굴에 희색이 돌며 “가만있거라. 며칠 전 나주목 사 임학수의 외동딸이 이 마을 외숙인 정홍수 참봉 댁에 와 유하고 있다 하는 데 혹시 그 규수의 은장도가 아닌 지…”
나는 조반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정홍수 참봉댁으로 향하 였다. 칠복이 놈이 “도련님 얼굴이 이처럼 화색이 돌기는 삼 년 만에 처음 보는 구만요.” 한다. 길을 가는 도중 내 귓가에 는 “절새 미모에다가 詩作을 잘 하여 그 명성이 한양에까지 자자하여 명문대갓집 자제들이 다투어 규수의 詩를 수집한다 하니……헌데 남정네 알기를 우습게 여겨 스무 세 해가 지나 도 시집을 안 가 임목사 애간장을 녹인다 합디다 만 이 은장 도는 어인 일로……”라고 나를 뚜려지게 응시하던 객주노옹의 말만 계속 맴돌았다.
이 때의 일을 화선당(花仙堂)일기에는 이렇게 전한다.
내 아침이 되어도 지난 밤 일이 생각나 가슴을 진정하기가 어 려웠다.
삼월의 만월 아래 식영정 누각에 기대어 송강의 대월독주를 암송하던 공자의 모습은 정말 송강 선생이 살아온다 하여도 그처럼 낭랑하게 자시(自詩)를 읊조리지는 못하리라. 네 나도 모르게 결구를 받아 낭송했으나 사미인곡까지 부른 것은 너무 나아감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부끄럼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터 혹 내 흘린 은장도를 못 발견하였으면 어떠하나 하는 조바심에 마음 졸이고 있을 때 옥분이가 방으로 뛰다시피 하 여 들어와 아뢴다.
“아씨! 그 도령이 찾아 왔어요. 그리고 이걸 전해 주는 데….”
그것은 내가 흘린 은장도와 서신이었다.
주인 떠난 은장도는 님찿아 간 것이오,
한번준 마음또한 되 받을 수 없사온즉
님께서 지니시걸랑 나를 본듯 하소서..
나는 옥분이에게 은장도와 서신을 도령께 도로 전하라 하였다.
그때의 일을 니고유문에는 이렇게 전한다.
내 은장도와 서신을 전해주고 사랑방에서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는 데 옥분이가 도로 은장도와 서신을 가지고 왔다. 서신을 읽은 후 나는 옥분이에게 금일 해시(주1)에 삭영정에서 기다리 겠다고 아씨께 여쭈어라고 당부하고 참봉댁을 나서는 데 가슴 이 마구 뛰어 주체를 못할 지경이었다. 칠복이가 내 얼굴을 자 꾸 쳐다보며 “도련님 잘 될 것 같은가요. 그라면 옥분이도 같 이 나오겠죠?” 한다. 내 댓꾸없이 쳐다 보며 눈을 흘기니 녀석 이 쑥쓰러운지 고개를 돌린다.
참으로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나는 정자를 백 번도 넘게 돌았 으리라..
달이 기운 것을 보아 시간이 자시가 다 되어도 낭자는 나타나 지 않았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너무 서두른 것이 아닌가 하고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양가집 규수의 몸으로 어찌 야심한 밤에 남정네를 만나려고 마실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너무 무 뢰한 청을 한게야 하고 포기하고 내려갈려는 순간 자작나무 숲 속에서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
채옥 낭자와 옥분이였다.
나는 평생 그 모습을 잊지 못하리라.
휘영청 밝은 달 빛에 계단을 사뿐사쁜 즈려 밟고 올라오는 그 모습은 가희 양귀비가 살아온다 해도 그 아름다움에 견주리오. 월광에 백옥 같은 살결은 은빛으로 빛났고 발그스레 상기된 뺨은 흰 복숭아에 붉은 빛이 도는 듯하고 지그시 닫힌 입술은 그 누구도 함부로 넘 볼 수 없는 도도한 기품이 흘렀다.
낭자는 나를 보고 가볍게 예를 갖추어 절한 후
“죄송하옵니다. 약속된 시간에 늦어서…..외숙과 외숙모가 취 침하시는 것을 보고 나오느라…..”
나는 너무도 황송하여
“아니옵니다. 소생이 낭자의 답문을 받는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앞뒤 안 가리고 무례한 청을 한 것에 대해 지금껏 후회하고 있던 중이 옵니다. 그런데 낭자께서 실로 이렇게 나오시니 제 가 너무 송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채옥 낭자 얼굴이 발그스레해지며
”저 또한 한 번 더 뵙고 싶은 마음을 어찌 감출 수 있겠습니 까? 다행히 은장도를 보고 저를 다시 찾아 주시니….. 한데 공 자께서는 은장도를 보고 제 이름을 아시나 저는 공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혹 뉘 댁의 자제분이신지 존함이라도 …..?”
갑작스런 나에 대한 질문에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저는 담양 석천마을의 강운기의 장손인 강숙진이라고 하옵니 다.”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 외숙께서 항상 담양에 큰 재상이 셋이나 났으니 한 분은 면앙 송순이요, 한 분은 송강 정철이요, 한 분은 일죽 강윤기 선생이니라 하고 입버릇처럼 자랑하시는 것을 일찍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오면 삼 년 전에 별세 하신 것으로 아온 데……삼가 조의 드리옵니다.”
“님께서 아버님에 대해 아신다니….아니 괜찮습니다. 아흐레 전 탈상하였습니다. 한데 낭자는 내 듣자 하니 방년 스물 셋이 라 어찌하여 혼기를 놓치셨는 지?”
“소저 사춘기 때부터 시짓기와 그림을 좋아하여 남정네엔 관 심이 없었고 제가 좋아하던 난설헌(주2)과 이옥봉님(주3)이 모 두 불행한 결혼생활을 겪은 것을 보고 차라리 결혼을 안 하는 것이 낳다 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허난설헌과 이옥봉을 좋아하시는 지요?”
“예. 아무래도 소저 여자인지라 여류시인을 좋아하게 되옵나 이다.”
“허면 황진이는 어떠하온지요.?”
“황진이의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은 높이 사나 파격적인 예술 성에 있어서는 난설헌에 못 미치며 저는 오히려 같은 기방출 신 여류시인으로는 잔잔한 가운데 깊이가 있는 이매창(주4)이 더욱 좋습니다. 하온데 공자께서는 누구를 좋아하시는 지?”
“저는 이달(주5)과 백광훈(주6)이를 좋아합니다.”
“이달은 저도 좋아합니다만 백광훈은 잘….한 번 들려 주실 수 없는지요?”
그대 보내고 백광훈(1537-1582)
어찌라 천리길 그대 보내고 天里奈君別
일어앉아 그려보는 한밤중 행색 起看中夜行
외로운 배는 가 이미 멀었고 孤舟去己遠
달지는 찬 강의 여울목 소리 月落寒江鳴
“입상진의(주7)(立象盡意)라 하였거늘 이 시는 그림만 보임에 도 불구 구구절절 이별의 슬픔이 가락되어 흘러 나오는 것 같 군요. 좋은 시군요,”
“예. 여운이 긴 시이지요. 낭자께서도 한 수 들려 주실 수 있 는 지요?”
이화우(주8)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채옥낭자는 낭송을 마치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다시 숙였다.
나는 얼이 빠진 듯 잠시 멍해 있다가 물었다.
“누구의 시조입니까?”
“이매창의 시조입니다.”
“나는 시조가 한시보다 이처럼 애잔한 지는 미처 몰랐오. 참 으로 좋구료. 한 수 더 들려 줄 수는 없으신지요?”
“소저 너무 야심하여 이만 돌아가야 할 듯 하옵니다. 내일 일 찍 나주 본가로 돌아가야 하온즉…..”
“아니 이리도 빨리 가신다 말이요? 그럴 수는 없소이다.”
나는 하마터면 낭자의 손을 잡을 뻔 하였다.
“혹 작시구연(作詩求戀)이란 말을 아시는지요?”
“작시구연이라함은 시를 지어 사랑을 구한다는 말인가요?”
“그러하옴니다. 시간이 나시면 나주에 한 번 내려 오시지요. 그럼 이만.” 말을 마친 낭자는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그 제껏 기다리고 있던 옥분이와 홀연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주1)해시(亥時): 밤9시부터 밤11시 사이
주2)허난설헌(1563-1589)
허균의 누이로 유명하며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천재적인 시제를 보여 중국에까지 시명을 크게 떨쳤다. 김성립 에게 시집가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28세로 요절함
주3)이옥봉(1550-1600경)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군수 이봉의 서녀로 아버지의 후임인 조원의 소실이 되었으나 불행한 가정 생활끝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짐. 여인의 섬세한 감정을 노래한 많은 한시를 남겼는 데 그녀의 시는 명시종(明詩宗)과 열조시집(列朝詩集)등에 실려 중국에 까지 명성을 떨쳤다.
주4)이매창(1573-1610)
부안의 명기로 한시 58수와 시조가 전한다. 천민출신이나 뛰 어난 시인이었던 유희경을 사모해 많은 연시를 남겼다.
주5)이달(1539-1612)
호는 손곡 서인 출신으로 조선초기 조선시가 성리학의 영향으 로 절제된 감정과 주지주의 경향을 보였던 송시풍으로부터 당 시풍으로 돌려 놓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정서 묘사에 뛰어 나 백광훈, 최경창과 함께 3당시인으로 칭한다. 허균과 난설헌 의 스승으로 유명한 데 허균은 이 위대한 스승이 서인이라는 이유로 출세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유명한 그의 홍길동전의 창작동기가 되었다고 함.
주6)백광훈(1537-1582)
낭만적 시들을 많이 지었은며 시에서 음색(音色)을 중요시 여 겼다.
벼슬에 뜻이 없어 평생 산수를 즐기고 시작에 전념하였다고 함.
옥봉집이 전한다.
주7)입상진의(立象盡意)
한시 작법의 원칙으로 1,2구는 정경을 묘사하고 3,4구는 의미 를 전하는 데 의미를 다할 뿐 결코 직접 말하지는 않는다. 정 경으로 의미까지 전달해야 함.
주8)이화우(李花雨)
배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것을 말함.
글을 올리며
나는 이번 강숙진뎐의 밀회편에서 조선시대의 남녀의 데이트 는 어떠하였을까? 라고 상상하였다. 결국 위와 같이 전개 되었 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같으면 남녀가 처음 만나 데이트 할 때 “가수는 누굴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왁스를 좋아하는 데요.”
“저도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를 좋아하는 데” 등으로 전개 되 겠지만 당시에 취미라곤 시짓고 그림 그리고 가야금 타는 정 도여서 주로 남녀가 만났을 때 시와 그림에 관해 이야기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가 더 로만틱하고 더 대화에 깊이가 있었 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400년 전에 조선시대의 데이트 장면을 나름대로 복원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것은 또한 이러한 장문의 글을 쓰 는 유일한 즐거움이기도 하였다. 잘 되었는 지는 모르겠으나..
본 문중 강숙진과 임채옥이 주고 받는 시조는 인물들이 가공 인지라 할 수 없이 내가 만들었다. 조금 더 잘 짓고 싶은 욕심 이 나나 워낙 작업이 힘들어서 그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첫댓글 가슴에 찐하게 와닿는글에 머물며 감동으로 끝까지 배독합니다...늘 고운 모습의 참여에 감사드립니다 건안 건필하소서
긴글이지만 감동깊게 읽고 갑니다. 늘 건안, 건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