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의 대표 레스토랑이 된 전설의 ‘모모푸쿠’ 풀 스토리!
『뉴욕의 맛, 모모푸쿠』는 모모푸쿠 레스토랑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모모푸쿠의 독보적인 메뉴 레시피를 소개한 책이다. 8.4평의 라멘집으로 시작해 뉴욕의 대표 레스토랑이 된 ‘모모푸크 누들 바’, ‘모모푸쿠 쌈 바’, ‘모모푸쿠 코’의 준비과정 및 실패를 딛고 재정비하는 과정, 모모푸쿠만의 특별한 메뉴를 구성하게 된 계기, 데이비드 장만의 요리와 인생에 관한 철학 등의 이야기가 3부에 걸쳐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누들 바의 대표 메뉴인 라멘의 육수 내는 법, 면 만드는 법, 프라이드치킨, 치킨윙, 그리고 김치 등의 발효 음식과 절임류, 쌈 바의 대표 메뉴인 보쌈, 코의 대표 메뉴인 치차론, 광어, 벽돌치킨 등을 선보인다. 더불어 그가 직접 발품을 팔아 얻은 다양한 요리 정보를 알려주며, 뉴욕의 가장 핫한 식당에서 김치를 맛보고, 고춧가루와 젓갈, 고추장, 쌈장 등의 음식을 데이비드 장만의 버전으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 : 데이비드 장
저자 데이비드 장은 야심차면서도 거칠고 창조적인 면 요리, 쌈 요리로 ‘데이비드 장 코드code’, ‘데이비드 장 마니아mania’, ‘모모푸쿠 매드니스madness’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킨 모모푸쿠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 그는 대학 졸업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자신이 책상에 앉아 사무만 보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하던 일을 접고 뉴욕 명문 요리학교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The French Culinary Institute)에 들어간다. 그리고 스물여섯이 되던 2004년, 뉴욕의 8평 남짓한 곳에서 라멘집 모모푸쿠 누들 바를 시작한다. 이후 쌈 바, 코, 밀크 바, 마 뻬슈까지 차례로 성공시키며 뉴욕에서 가장 ‘핫’한 셰프로 부상한다. 최근에는 미국을 넘어 호주 시드니, 캐나다 토론토까지 매장을 넓히며 더욱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을 네 번 수상하였고,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포춘]지 ‘세계의 젊은 경영인 40인’ 등에 선정되며 영향력을 국제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 수상내역 ::
2007년 제임스 비어드 재단 신인 셰프상 수상(모모푸쿠 누들 바)
2007년 [GQ] 올해의 셰프 선정
2008년 제임스 비어드 재단 뉴욕 베스트 셰프상 수상(모모푸쿠 쌈 바)
2008년 [뉴욕 타임스] 최고의 레스토랑 선정(모모푸쿠 쌈 바)
2008년 [에스콰이어]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5인 선정
2009년 제임스 비어드 재단 뉴 레스토랑상 수상(모모푸쿠 코)
2009년 [미슐랭 가이드] 2스타 레스토랑 선정(모모푸쿠 코)
2009년 [롤링스톤]지 미국을 변화시키는 100인 선정
2010년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2012년 [포춘]지 세계의 젊은 경영인 40인 선정
2012년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2013년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4위 선정(모모푸쿠 쌈 바)
2013년 제임스 비어드 재단 미국 베스트 셰프상 수상(모모푸쿠 누들 바)
저자 : 피터 미한
저자 피터 미안은 [뉴욕 타임스], [사브어], [트래블+레저]에 기고하며 음식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이용재
저자 이용재는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공대 건축 및 건축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현지 건축회사에서 4년간 일했다. 지금까지 [에스콰이어], [GQ], [젠틀맨] 등에 기고하면서 건축과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상을 지나가다》, 번역서로는 《창밖 뉴욕》, 《완벽하지 않아》,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1, 2》가 있다.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누들 바
쌈 바
코
모모푸쿠 식재료 구입처
감사의 말
찾아보기
웨이팅 2시간 끝에 먹는 라멘, 모모푸쿠 누들 바
일주일 전부터 예약 완료된 보쌈, 모모푸쿠 쌈 바
하루 12명의 손님만을 위한 배짱 가득한 요리, 모모푸쿠 코
8.4평짜리 라멘집 개업 9년 만에
뉴욕 레스토랑계를 평정한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
라멘 한 그릇, 삼겹살 한 덩이, 김치 하나로
매순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모모푸쿠 제국의 비밀을 밝힌다!
출간 의의
영국의 고든 램지, 이탈리아의 마리오 비탈리, 일본의 노부 마쓰히사와 같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셰프 반열에 오르며 미국에서 가장 ‘핫’한 셰프로 자리매김한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장. 그의 첫 책 《뉴욕의 맛, 모모푸쿠》는 야심차면서도 거칠고 창의적인 요리로 뉴요커를 열광시킨 모모푸쿠 오너 셰프 데이비드 장의 성공 스토리와 메뉴 레시피를 담았다. 그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간의 피 튀기는 경쟁이 한창일 때 반대로 캐주얼 레스토랑을 런칭해 성공을 거두며, 뉴욕 레스토랑계의 게임 룰을 바꾼 혁신적인 셰프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그가 반짝 스타로 그친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력과 대중적인 인기를 쌓아왔다는 점은 2007년, 2008년, 2009년, 2013년 총 네 번,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을 받음으로서 확인되었다. 또한 2010년, 2012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2년 [포춘] 선정 ‘세계의 젊은 경영인 40인’에 이름을 올리며 스타 셰프를 넘어 문화 아이콘, 성공한 경영인으로도 꼽히며 영향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 책은 8.4평의 라멘집으로 시작해 뉴욕의 대표 레스토랑이 된 ‘모모푸쿠 누들 바’, ‘모모푸쿠 쌈 바’, ‘모모푸쿠 코’의 준비 과정 및 실패를 딛고 재정비하는 과정, 모모푸쿠만의 특별한 메뉴를 구성하게 된 계기, 데이비드 장만의 요리와 인생에 관한 철학 등이 3부에 걸쳐 생생하게 소개된다. 어떻게 셰프로서 정규 코스도 제대로 밟지 않은 그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성공을 일궈냈는지, 어떻게 라멘 한 그릇으로 뉴욕을 사로잡았는지를 세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뒤이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의 음식 특성이 고루 섞인 모모푸쿠의 시그니처 메뉴인 라멘, 포크 번, 보쌈, 프라이드치킨 등의 레시피도 최초로 공개된다. 웨이팅 2시간 끝에 먹는 라멘, 일주일 전부터 예약 완료된 보쌈, 하루 12명의 손님만을 위한 배짱 가득한 요리를 집에서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인 셈이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의 저자 박찬일 셰프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한국의 요리사 지망생이나 애호가들이 케이블 TV의 요리 프로그램보다 먼저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딱 50페이지만 넘기면 그 이유를 충분히 알게 된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출간되어 2010년 요리책 TOP25에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모모푸쿠’란 브랜드 네임은 일본어로 ‘행운의 복숭아’를 뜻하는 동시에 라멘을 발명한 안도 모모푸쿠에게 간접적으로 표하는 경의의 뜻도 담고 있다.
한국계 젊은 청년이 미국 레스토랑계의 판도를 뒤엎다!
뉴욕에서 가장 ‘힙’한 다섯 개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 데이비드 장
2006년 내 나이 스물여섯,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냈다
“누구한테 나를 증명해야 되는 걸까? 이렇게 요리하고 있는 척하느니 면이나 뽑을까?”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스타 셰프가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프라이드치킨 배틀’에 등장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한국식 닭튀김을 소개해주겠다’며 치킨을 튀겼고, 결국 심사위원에게 높은 점수를 받아 승자가 되었다. 이후 그의 식당은 프라이드치킨을 먹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예약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식’하면 김치와 불고기 외에 프라이드치킨이 추가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뉴요커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다. 이처럼 이미 가진 명성을 잠시 내려놓고 쇼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을 또다시 들썩이게 만든 위트와 자신감을 가진 셰프, 등장만으로도 이슈를 불러 모으는 그가 바로 모모푸쿠 레스토랑 그룹의 수장 데이비드 장이다.
데이비드 장은 대부분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처럼 부모에게서 골프선수나 법관, 금융가가 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중학생 때 버지니아 주 주니어 골프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자신이 타이거 우즈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대학에서는 신학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 런던, 일본 등에 살며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하지만 “평생 동안 일본 어린이들을 위해 영어 동사나 가르치진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곧 자신이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는 타입이 아니라고 깨닫는다. 그 뒤 뉴욕 FCI(The French Culinary Institute)에서 요리를 배운 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소바집, 가이세키(일본정식) 요리집 등에서 짧은 시간 수련한 뒤 뉴욕으로 돌아왔다. 뉴욕에서도 레스토랑에 들어가 주방 보조부터 단계를 밟아가는 와중에도 “실패한 계약직 선수 같다”라는 기분이 들었고, “왜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을 방어 요리에 곁들일 향신료 무게를 재고 있지? 누구한테 나를 증명해야 되는 걸까? 이렇게 요리하고 있는 척하느니 면이나 뽑을까?”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드디어 스물여섯 살이 된 2004년,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27개의 좌석을 놓고 일본식 라멘을 파는 모모푸쿠 누들 바를 열게 된다.
싫은 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장을 입거나 사내 정치를 하는 건 참기 힘들었다. 주방에서라면 두 가지 모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지역 부매니저 등으로 승진하고 싶어 안달하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차라리 요리를 배우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쪽이 보람차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골프와 축구에 능했는데, 반복 숙달해야 하고 노력에 걸맞은 열매를 얻는다는 면에서 주방일과 비슷하게도 보였다. 공부를 계속하거나 사무실 일을 참아낼 것 같지도 않으니 요리에 도전해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열심히 한다면 일본으로 다시 와서 장화를 신고 주문을 외치며 라멘집에서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_p.24 [누들 바]
요리업계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도, 굳이 정규 과정을 밟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망할 거라면 웃으면서 망하고 싶었다.”
유대인이 백만 명 이상 살고 있는 뉴욕에서 그들이 금기하는 삼겹살과 돼지고기 국물을 주 메뉴로 한다는 건 모험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파리를 날렸고, 반년이 지나자 그는 그냥 다 때려치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민 끝에 마지막 방법으로 ‘일본 라멘집’ 콘셉트로 인한 제약을 걷어치우고 “기왕 망할 바에는 원하는 요리나 실컷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요리를 등장시킨다. 정형화된 일본 라멘 대신 거칠고, 푸짐하고, 매콤한 한국 라면 스타일을 접목시켜 데이비드 장만의 라멘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누들 바’의 드라마와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2년 뒤 한국의 보쌈을 재해석한 ‘모모푸쿠 쌈 바’를 개업했고, 이 또한 콘셉트의 수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 그는 ‘계속 끌고 나갈 것인가, 그만 문을 닫을 것인가’를 매순간 고민하며 누들 바와 쌈 바를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만들었고, 이후 ‘모모푸쿠 코’, ‘모모푸쿠 밀크 바’, ‘모모푸쿠 마 뻬슈’를 성공적으로 런칭한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셰프가 되기 위한 정규 과정을 밟지도, 자신이 어떤 요리를 잘하는지도 잘 몰랐던 골프선수 출신의 한 청년이 요리계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도 셰프로서, 사업가로서 독보적인 성공을 거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요리를 ‘미국 요리’라고 하지만 대다수 매체에게 ‘창의적인 퓨전 요리’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일본, 중국, 한국 등에서 살며 여러 음식을 맛본 경험에 기반한다. 무엇보다 이런 성공에는 데이비드 장의 자유롭고 반항적인 이미지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령, 보통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따로 준비하는 뉴욕 레스토랑의 관례와 달리 “우리는 채식주의자 메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당당하게 걸고 쌈 바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성격과 일치하는 비즈니스 스타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멋지다고 생각하게 만든 남자를 찾는다면 대부분의 젓가락은 데이비드 장을 지목할 것이다([타임])”라는 평을 들으며 그는 지금까지의 소문난 레스토랑이나 유명한 셰프들이 상대적으로 고루하고 답답해 보이게 만든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또한 요리 개발부터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전부 주도하는 오너 셰프, 단순하면서도 현대 건축학적 특징이 반영된 매장을 연출하는 디자이너, [럭키 피치]라는 요리 잡지를 창간한 발행인 등 ‘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주도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셰프이자 독보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지금 뉴요커들은 모모푸쿠의 음식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힙’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한다. 셰프를 꿈꾸거나 콘셉추얼한 레스토랑을 열고 싶어 하는 이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데이비드 장 스토리는 새로운 출구를 제시해줄 것이다.
가게의 이름은 ‘모모푸쿠’라고 정해놓았다. 일본어로 ‘행운의 복숭아’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로고도 복숭아로 했다. 라멘을 발명한 안도 모모푸쿠에게 간접적으로 표하는 경의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수없이 많은 끼니를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 자체로 끝내주는 이름이기도 했다. 식당 이름으로는 최고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발음에 얽힌 것이었다. 바로 나의 많은 것들에게 날리는 ‘퍽유(fuck you)’였다. 일단 한국계 미국인인 내가 라멘집을 차린다는 사실부터 우스꽝스러웠다. 요리도 그럭저럭 하는 내가, 훨씬 실력이 뛰어나면서도 여전히 남의 밑에서 힘들게 일하며 배우는 친구들보다 먼저 가게를 차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모모푸쿠가 ‘마더퍼커(motherfucker)’처럼 들리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_p.34 [누들 바]
새해로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들 바 옆 보도에 앉아 퀴노와 함께 담배를 피우며 그냥 다 때려치워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누들 바 콘셉트를 지키겠다고 스스로를 옭아매, 낼 수 있는 음식에 제한을 두면서도 끊임없이 정통성에 대한 지적을 들어왔다. 그런 걸 지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교자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모두가 동양계 식당에서 만두 먹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바깥의 충고에 너무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문제였다.
어차피 더 잃을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그래서 이젠 좋아하는 음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장을 적극 활용하고 1년만 더 버텨보기로 했다. ‘싸고 양 많이’가 슬로건이 되었다. 어차피 망할 거라면 웃으면서 망하고 싶었다. _p.42 [누들 바]
뉴욕을 뒤흔든 폭발하는 맛!
1달러에 치킨 다섯 쪽을 팔던 가게가 미슐랭 2스타를 받기까지,
뉴욕의 8.4평, 27개의 자리로 이룬 기적, 모모푸쿠 스토리
2011년 호주와 캐나다까지 모모푸쿠 제국을 확장,
각 매장마다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을 거머쥐다!
맨해튼 1번가에서 음식을 실험하는 레스토랑 가운데 최고급에 속하는 모모푸쿠 코, 12개의 좌석이 전부인 이곳은 예약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모모푸쿠 코에 관한 미국 신문, 방송의 평가를 보면 예외 없이 예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글부터 시작된다. ‘꼭 가봐야 할 세계의 레스토랑 101’에 선정되기도 한 모모푸쿠 누들 바 역시 바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물론 보통 40~50명의 사람들을 기다린 뒤에야 식사할 수 있을 만큼 붐빈다. 이런 일화들이 일반적인 유명 식당의 떠들썩한 광고 같지만 모모푸쿠의 성공은 미국 레스토랑 업계의 혁명과도 같았다. “한국계지만, 나의 요리에는 국적이 없다”라고 데이비드 장이 말한 것처럼 전혀 새로운, 정체불명의 음식들을 내고, 그 맛 또한 훌륭하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요리 스타일 개척한다는 점은 그가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아티스트’ 부문으로 뽑힌 이유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장은 2004년 8월 싸구려 치킨윙을 팔던 외진 가게를 수리해 ‘모모푸쿠 누들 바’를 연다. 모모푸쿠 레스토랑 그룹의 바탕이 된 식당인 이곳은 애초의 ‘라멘집’ 콘셉트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였다. 챠슈 대신 삼겹살을 올린 라면, 삼겹살로 만든 포크 번을 내놓으며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이것으로 2007년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인 제임스 비어드 재단 신인 셰프상을 거머쥔다. 앞서 말했듯 모모푸쿠의 표류를 겪으면서 그가 깨닫게 된 건 ‘고객의 눈치나 콘셉트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이 진정 하고 싶은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때 개발한 메뉴인 포크 번은 모모푸쿠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다.
누들 바가 풍성한 육식의 풍미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주었다면 2006년 8월 두 번째 연 식당 ‘모모푸쿠 쌈 바’에서는 식감이 중요했다. 단맛, 신맛, 쓴맛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아삭함이 깃든 요리를 내놓기로 했다. 처음에는 부리토를 주 메뉴로 내놓았다가 한국식 보쌈에서 영감을 얻어 보쌈 요리를 판매했다. 뉴요커들은 채소에 쌈장을 넣어 싸 먹는 새로운 돼지고기 요리에 열광했고, 데이비드 장은 이를 통해 2008년 제임스 비어드 재단 최우수 베스트 셰프상을 받았다. 쌈 바는 [뉴욕 타임스] 최우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다. 이외에도 떡볶이, 송아지 머리 테린, 김치 등 한식 재료를 응용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2008년 3월에는 ‘모모푸쿠 코’라는 일본 가이세키 정식 요리를 미국식으로 재해석해 보여준 12석짜리 테이스팅 전문 레스토랑을 연다. 당일 오전 인터넷 예약만 받는 코는 매일 요리사가 정한 10~12개 요리의 코스 메뉴를 제공한다. 코의 식사가 자선 경매에 나와 2,87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미슐랭 가이드는 코에 별 2개를 선사했고, 이번에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의 뉴 레스토랑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11월 쌈 바 옆에는 디저트를 전문으로 하는 ‘베이커리 앤 밀크 바’를 열었다. 빵, 아이스크림, 시리얼 우유 등의 유제품과 쿠키, 케이크 등을 판다. 멋 부리지 않은 큼지막한 케이크와 쿠키에 모모푸쿠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책에서는 시리얼 우유, 모모푸쿠 쇼트케이크, 튀긴 사과 파이 등의 레시피를 소개했다. 2010년 4월에는 프랑스 음식과 베트남 음식을 섞은 퓨전 음식 식당 ‘마 뻬슈’를 개업했고 이후 호주 시드니와 캐나다 토론토까지 모모푸쿠 제국을 확장했다.
그러고 나니 ‘코(子)’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손님을 위해 등받이 없는 의자 몇 개를 놓고 주방은 협력 체계로 이뤄져 계속해서 메뉴를 바꿔 선보이는, 요리사 중심의 식당이었다. 그래서 일하는 요리사들에게 돈을 더 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요리사들은 대게 팁에 손을 대지 못한다. 사실 뉴욕에서는 음식까지 직접 손님에게 내지 않는 이상 팁을 받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보다 웨이터들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더 챙기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한 방편이었다). 바로 안티 레스토랑, 시작 단계에서 우리가 했던 생각이었다.
한편 이러한 계획은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모모푸쿠에게 쏠린 세간의 적대감 때문에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당시, 내가 사람들의 생각보다 매우 큰 상을 받았으니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나 역시도 과연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으니 그들을 이해 못하진 않았다. 그래서 이 식당으로 지긋지긋한 모든 의심을 잠재울 생각이었다. _p.142 [쌈 바]
최초로 소개하는 모모푸쿠의 독보적인 메뉴 레시피
“사람들이 이마를 치며 ‘빌어먹을, 진짜 단순하면서도 너무 맛있잖아!'
라고 말하는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뉴욕의 맛, 모모푸쿠》에서는 모모푸쿠 레스토랑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최초로 모모푸쿠의 독보적인 메뉴 레시피를 소개한다. 대부분 한국, 일본, 중국의 전통 음식들을 프렌치 테크닉을 이용해 미국 사람들이 먹기 좋게 변형한 ‘미국 음식’들이다. 누들 바의 대표 메뉴인 라멘의 육수 내는 법, 면 만드는 법, 프라이드치킨, 치킨윙, 그리고 김치 등의 발효 음식과 절임류, 쌈 바의 대표 메뉴인 보쌈, 코의 대표 메뉴인 치차론, 광어, 벽돌치킨 등이 있다. 여기에 그의 정통성 혹은 전문성을 폄하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할 그의 노력으로 얻은 요리 정보, 가령 굴을 까는 법, 미국 컨트리햄 이야기, 유명한 베이컨 제조업자 앨런 벤튼이 알려주는 햄 제조법, 고기 익은 정도를 확인하는 방법, 푸아그라 공장 견학기 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뉴욕의 가장 핫한 식당에서 김치를 맛볼 수 있다는 것, 고춧가루와 젓갈, 고추장, 쌈장 등의 음식을 데이비드 장만의 버전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 된다.
전 세계 셰프들이 경합을 벌이는 격전지, 뉴욕 맨해튼. 그곳에서 26살 젊은 셰프 데이비드 장은 유례없는 성공을 일궈냈으며, 인기가 거품일 거라는 우려를 깨끗이 씻어내고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단기간에 스타 셰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빛나는 ‘아이디어’로 항상 새로움을 찾은 미식가들의 갈증을 풀어줬기 때문일 것이다. 몇 해 전, 하버드대 공학도들을 대상으로 직접 개발한 돼지고기 요리법을 강연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창의성’에 사람들이 열광했기 때문일 테다. 또한 모모푸쿠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그는 먼저 식당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증명해보이기 위해 다음 식당을 구상하고 세상에 내놓았고, 그때마다 호평을 받고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인정받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주저앉아만 있지 않았고, 더욱 ‘자신만의’ 개성을 강화한 레스토랑을 만들어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늘어놓지도, 셰프로서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편견에 대한 변명도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연이어 낸 식당의 성공에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지 겸손하게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런저런 일을 해보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실패해본 사람으로서 들려줄 수 있는 삶의 이치가 아닐까.
나는 그날 밤, 신인 셰프상을 진짜로 받았다.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때쯤 스스로를 요리사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누들 바를 열었을 시절의 아마추어스러운 음식은 시간을 거듭하면서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것으로 진화했다. 다른 셰프처럼 충분히 일하고 배우기 전에 식당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걸 변명으로 삼지는 않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음식에 관한 지식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지는 않을 터이니 스스로 깨닫고 누구에게라도 배워야만 했다. 마음 깊은 곳에 나의 능력을 모두에게 증명하고 싶은 열망이 자리 잡았다. _p.142 [쌈 바]
하지만 지금 나는 완전 소진됐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느 시점에서 ‘나’의 모모푸쿠는 ‘모두’의 모모푸쿠가 되었다. 내 삶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며, 남은 삶 또한 모모푸쿠에 바칠 것이다. 책상에 앉아 일하거나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주방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가득 찬 세계의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 신경 쓰지 않고자 누들 바를 열었다(큰 기대에 나를 맞추는 건 빌어먹을 일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나는 정말 엄청나게 운 좋은 녀석이라는 것. _p.255 [코]
추천의 말
이 책에서 펼쳐지는 압력솥 같은 부엌의 풍경, 지옥도가 펼쳐지는 주말 저녁 뉴욕의 식당, 그리고 맛있는 요리를 하려고 약이라도 빨아댈 기세의 요리사들 묘사는 탁월하다. 조금만 신경 쓰면 집에서 써먹을 수 있는 레시피도 아주 훌륭하다. 한국의 요리사 지망생이나 애호가들이 케이블 TV의 요리 프로그램보다 먼저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딱 50페이지만 넘기면 그 이유를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 장은 프로가 된다는 건, 말하자면 돼지기름이 범벅된 냄새나는 고기를 주무르다가도 손님을 보면 씩 웃을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말한다. 팔아먹으려면 비열해지고 처절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일러주는 성공의 더티한 비결이다. _박찬일,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저자
모모푸쿠 쌈 바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외국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다. _알란 리치먼, [GQ] 레스토랑 평론가
데이비드 장의 음식을 말로 설명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저 직접 먹어보라는 말밖에. 음식만으로 깊이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_페란 아드리아, 세계 1위 레스토랑 ‘엘 불리’ 수석 셰프
그의 음식은 세간의 말처럼 훌륭하고 흥미진진하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재미나고, 야심차면서도 거칠게 창조적인 그는 요즘 모든 셰프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_앤서니 보뎅, 셰프
음식 전문가로서 항상 새롭고, 다르며, 맛있는 것을 찾게 된다. 모모푸쿠에서 데이비드 장의 포크 번을 맛본 날 너무도 즐거웠다. 그 후로 나는 그의 맛있는 창조작을 거의 먹어봤다. 마침내 요리책이 나와 집에서 열심히 흉내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_‘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방송인
요리를 멋지다고 생각하게 만든 남자를 찾는다면, 대부분의 젓가락은 데이비드 장을 지목할 것이다. _[타임]
이번 시즌에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요리책은 바로 《뉴욕의 맛, 모모푸쿠》다. 셀 수 없이 많은 뉴욕 레스토랑들이 다시나 고춧가루, 액젓 등을 부엌에 들일 거라 생각하니 흥분된다. 이 책은 뉴욕 외식 세계의 흥미진진함을 잘 담고 있다. _[뉴욕 타임스]
무엇보다 맛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우선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포크 번부터 브뤼셀 스프라우트와 김치처럼 ‘이게 말이 돼?’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조합까지, 먹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맛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구라도 어떻게 그런 맛을 만들어내는지 알고 싶지 않을까? 뉴욕 레스토랑의 세계를 단번에 평정한 음식의 레시피를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라도 그 주방에 뛰어들어 어떻게 그런 음식을 만들어내는지 배워보고 싶지 않을까? _p.13 [누들 바]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매일 밤 깨졌다. 정신 차릴 틈도 없었으며 요리 솜씨도 변변치 않았다. 크래프트 식구들의 추천으로 들어오긴 했어도 실패한 계약직 선수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해도 타율도 시원찮고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 말이다.
그래도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스트레스가 조금씩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나는 하지도 않을 방어 요리에 곁들일 양념을 위해 스물다섯 가지나 되는 향신료의 무게를 재고 있지? 어차피 나라면 방어는 날로 먹는 게 좋으니 요리하지도 않을 텐데. 누구한테 나를 증명해야 될까? 뭣 때문에 이러고 있지? 이렇게 요리하고 있는 척하느니 면이나 뽑을까? _p.32 [누들 바]
돌아보면 셰프 카멜리니 밑에서 1년을 채우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럽다. 훌륭한 식당에서 일할 기회를 잡으면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견디며 그들이 일을 가르친 게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이제 걸림돌은 되지 않겠다 싶은 시점에 적당히 배워서 훌쩍 떠난 나는 그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셰프는 상황을 잘 이해해서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리지도 않았고 뒤통수를 쳤다고 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렇게 떠난 것을 후회한다. _p.34 [누들 바]
사실 우리는 주방을 제대로 갖춰놓지도 않은 채 클럽에 가 있었다. 모든 건 케이마트에서 사들였고, 스탠드믹서는 퀴노의 여자 친구에게서 빌렸다. 별로 필요한 게 없을 거라고 서로 합리화하며(“누들 바에 그딴 게 다 필요하겠어?”) 우리는 더욱 끈적끈적한 한 시간을 보냈다. 금전 등록기는 어떻게 만지는지, 세금은 어떻게 내야 하는지, 월급은 어떻게 줘야 하고 일할 사람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우리에겐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식당을 개업하면서 우리처럼 그렇게 얼빠져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개업 전날 밤에. 그날 밤 우리에게 식당 개업은 뒷전이었다 _p.38 [누들 바]
형편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괜찮은 수준은 아니었다. 퀴노와 나는 여전히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모모푸쿠라는 이름의 압력솥(스물일곱 명의 손님에 두세 명의 요리사와 웨이터들이 55제곱미터 공간에, 밑준비하는 요리사 몇 명이 지하 주방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을 몇 달 돌리고 나니 우리는 비참한 형편이었다.
적어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는 그렇게 비참했다. 하지만 그때쯤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일요일에 쉬던 시절, 다 함께 저녁을 먹은 어느 날 밤이었다. 맥주와 버거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대강 만든 음식에 사람들이 즐겁게 어울렸고 평판마저 좋았다. 그리고 4백 달러나 찍힌 계산서가 딸려왔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앉아서, 여기보다는 요리를 잘 할 거라 씹어댈 뿐이었지만 그런 곳이 손님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평판도 좋고 돈도 번다. 그럼 우리의 문제는 대체 무엇인 걸까? _p.42 [누들 바]
모모푸쿠의 쌈은 한국의 보쌈과 캘리포니아의 부리토를 합친 것이다. 큰 밀가루 토르티야에 해선장을 바르고 밥을 깐 뒤 깍지콩, 돼지 목살, 볶은 양파, 김치, 표고버섯 간장 절임을 얹고 말아서 먹는 방식이었다. ‘쌈 바’로 이름 지어 부리토 쌈을 팔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치포틀레(Chipotle, 부리토 등의 멕시코 음식을 파는 프랜차이즈-옮긴이)’의 한국판 같은 것이었다. 패스트푸드로 인기를 누린다면 온 미국에 걸쳐 지점을 내서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키면 또 다른 목표를 좇으면 될 일이었다. _p.131 [쌈 바]
상 때문에라도 뭔가 다른, 기대를 분산시킬 만한 일을 벌려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부리토 바가 완벽한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받드는 사람들처럼 주류에 속하는 일류 요리사가 되기 위해 한 분야에 뼈를 묻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요리 세계는 패스트푸드, 라멘, 서브머린 샌드위치, 피자 등 나도 즐겨 먹고 모두가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간단하고 맛있는 음식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성공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쟁 방식에 말려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 방법대로 성공하고 싶었다. _p.135 [쌈 바]
그러던 어느 날 밤 [뉴욕 타임스]의
첫댓글 데이비드 장 , 피터 미한 지음 / 역자 이용재 옮김 / 역자평점 2.0 / 출판사 푸른숲 | 201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