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의 세상
- 이석구
알렉산드로스여
당신이 천하를 얻었다 한들
자족의 디오게네스 삶만큼 행복했겠소
비릿한 피 냄새 풍기며
제 것도 아닌 것을 마구 빼앗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던 당신의 세상은
끝이 닿지 않는 부처님 손바닥이었던 것을
무력으로
정복은 왜 하는 것인지
돕는 공존의 세상을 꿈꾸며
사람마다
하나의 세상을 가슴에 가꾸거늘
어찌 그 세상이
피 냄새 가득한 전쟁터겠소
이미
한 줄기 빛으로도 충분한
그런 자족을 품은 순수한 마음
가진 것에 족하고
나눌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평화
소박한 그
디오게네스의 세상 아니겠소
―시집『흐뭇한 삶』 (천년의 시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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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주 오랜만에 옛 동료 선배를 만나 쌓인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교단에 머물 때부터 주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남보다 훨씬 앞장서시더니
퇴임하고 나서도 자기 일보다 이웃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쪼개 쓰며 살더군요
사람마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기적인 삶보다는 이타적인 삶이 더 보람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는 분주함을 피하라고 강권했습니다
알다시피 알렉산더는 몽고의 징크스칸, 프랑스의 나플레옹과 더불어 인류역사상 전쟁의 3대 영웅(?) 이지요
전쟁의 영웅 한 사람의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지구의 큰 땅을 차지했던 술레이만이라는 터키의 왕도 있었다지요
어쨌든 그 알랙산더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그리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치러 가던 중
일부러 시간을 내어 소문난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갔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동시대 사람인 디오게네스는
당시 추앙받던 많은 이들에게 거침없는 비판으로 주목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시는 정쟁의 영웅 알랙산더와 디오게네스의 대화 속에 나오는 교훈을 그리고 있는데
알랙산터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무리 크고 원대하다고 해도
디오게네스에게는 당장 필요한 것은 알랙산더가 몸으로 막은 따스한 햇볕이었습니다
어떤 욕망보다도 더 큰 소망- 건강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깨달음이 절실해지는 요즘이잖아요
여기저기서 부고장이 날아오고 몇 년 전만 해도 멀쩡하던 무릎이 쑤셔오고 자고 나면 이유 없이 옴몸이 결립니다
맛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같이 마신 뒤에 햇살 한 줄기 남아 있을 때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노후를 분주하게 반드는 대의명분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디오게네스의 세상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