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눈부시지만 3
2013.10. 금계
10울 16일 수요일, 그저께는 평화광장, 어저께는 뒷개, 오늘은 버스를 타고 무안을 가기로 한다. 목포는 시내좌석버스가 참 편리하다. 1700원만 내면 목포 부근의 고을들을 아무데나 실컷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지난봄에도 한 바퀴 돌았는데 이번 가을에도 한 바퀴 돌아야겠다.
좌석버스가 무안읍으로 들어섰다. 초당대학교 앞에 멈춘다. 그러고 보니 번번이 지나치기만 했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참에 구경해보자. 일반 대학과는 좀 다르겠거니 짐작했는데, 초당대학교 구경한 다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사립대학으로 10개 학과가 있단다. 사회복지학과, 환경공학과, 조리과학과, 컴퓨터정보공학과, 경영학과, 행정학과, 사회체육학과, 간호학과, 안경광학과, 뷰티코디네이션학과.
초당대학교 통학버스. 무늬와 색깔이 화려하고 버스 전체의 느낌이 산뜻하다. 옛날 광주 거리에는 유일하게 코가 불룩한 전남대학교 통학버스가 털털거리며 돌아다녔는데 전후좌우 온통 노란색을 도배해서 ‘황금마차’라고 불렀다. 그 시절에는 황금마차도 훌륭했는데 이 버스는 디자인이 장족의 발전을 했다.
초당대학교 도로에도 가을 빛살은 눈부셨다. 예전에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목격하면 눈이 부셨는데 늙으니까 햇살 눈부신 곳마다 눈물이 난다.
골목길에서 만난 태양초가 반갑고 다정하다. 고추는 얼른 잘 마르지도 않는다.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아니다. 요새는 국산 고춧가루 먹기도 힘들고 제대로 말린 태양초 먹기는 더 어렵다.
멀리 보이는 무안고등학교에도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요즘 농어촌 학생의 급감으로 거점 고등학교로 통합을 추진한다던가 어쩐다던가. 아무튼 전라남도 학교들 폭삭 망했다. 농어촌 인구가 해마다 감소하니 초등학교고 중고등학교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무안 불무공원. 예전에는 볼품없는 저수지였는데 공원으로 멋지게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봄에는 팔각정 앞 벚나무에 벚꽃이 환하게 피었더니 이번에는 발갛게 단풍이 들었다.
때마침 무슨 행사가 벌어졌는지 공원 한쪽에서는 쿵덩덕 쿵덕쿵덕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였다. 잔치가 별것인가. 햇살 눈부신 곳은 어디나 잔치마당이었다. 나는 공원 가장자리 포장마차에서 어묵 두 꼬챙이를 사먹었다. 따끈하고 간간한 국물에 속이 시원했다. 무안읍을 벗어난 들녘. 벼 베어낸 그루터기가 가지런히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논밭 일을 마친 트랙터 두 대가 가을볕을 따끈히 쬐며 한가로이 쉬고 있다.
農者天下之大本-예전에는 농사꾼이 천하의 근본이라 했거늘 지금은 공업으로, 그것도 굴뚝 없는 공장으로, 또는 개인휴대전화 제조판매업이 천하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세로 변하고 말았다.
광복 후 7,80프로를 차지하던 농업의 비중이 이제는 1,20프로로 떨어지고 전남도청 앞에서는 성난 농민들이 볏값 인상하라고 야적시위를 벌이겠다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언제부터 방치했는지 찢어진 새마을 깃발이 바람에 너덜거린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그 노래 부르던 때가 호시절이었던가. 이제 깃발은 삭아서 너덜거리고 농촌에서는 아이 울음소리가 그친 지 이미 오래다.
무안중학교 부근 마을 담벼락 벽화
농민들은 다 찌들어 가는데 이중섭의 소를 닮은 벽화 속 소는 여전히 원기왕성하다.
토인비는 인류가 대가족이 한데 모여 농사짓고 한 지붕 밑에서 함께 밥 먹을 때까지만 행복했다고 탄식했다.
가을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고 맑다. 예쁘게 단장한 학교 건물이 오후의 강렬한 가을 햇살에 금방이라도 공중부상을 할 듯 환히 빛난다. 농어촌 학교는 학생이 없어서 폐교된 곳이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읍내에 있는 무안초등학교는 아직 버틸 힘이 남아 있나 보다. 어쩌다가 불임시술 하면 예비군훈련 면제해주던 나라가 아기 낳으면 보조금 주는 나라로 바뀌었을까.
무안초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다. 나는 지금도 화학섬유에 틀림없는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하고 흙먼지 펄펄 일고 때로는 질컥거리기도 하는 흙바닥 운동장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분간이 잘 안 간다.
지난봄에 찍은 무안 향교. 무안읍이 목포시에 비하여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점이 향교다.
그러니까 개항 백 년에 불과한 목포보다는 무안이 훨씬 역사가 길다는 징표다.
그러나 조선조를 휘어잡았던 유학은 쇠퇴하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당금에 이르러서는 인의예지가 자취를 감추고 인적 끊긴 향교에서는 집 지키는 개만 컹컹 요란하게 짖었다.
나는 무안국제공항 덕분에 인천까지 가는 고생을 덜고 북경이랑 장가계랑 편하게 잘 다녀왔다. 무안국제공항이 생긴 것은 골백번 잘한 일이다.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무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고객이 적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포스터가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무안읍 번화가. 가로등이 이채롭다.
목포와 무안의 통합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는데 그 때마다 번번이 무안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단다.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통합 여부가 심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반대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뭔지 잘 모른다.
한때 열린 교육이라 해서 교실 칸막이를 튼 적도 있었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행정구역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민들도 마음을 열고 행적구역도 합칠 수 있으면 합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목포 무안 통합뿐이겠는가. 우리는 남북통일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목포 무안 통합 여부는 별로 관심도 없다. 오직 나 살아 생전에 통일이 되는 것을 보면 원이 없겠다.
무안읍에서 좀 번듯하고 괜찮은 건물이다 싶으면 모두 성당이나 교회 아니면 공공기관이다.
그래도 아직 성당이나 교회는 잘 돌아가는 모양이다.
나는 무안이 앞으로도 나날이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이웃의 기쁨이 바로 나의 기쁨일 테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