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칭다오 답사를 마치고/안성환/240603
울산향토사연구회에서 2박3일간 산둥성 칭다오를 다녀왔다. 이곳에 필자가 관심있는 곳은 2곳이다. 바로 독일총독관저와 칭다오 중산로거리이다. 특히 이곳 산둥성은 공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비록 유교의 출발은 중국이지만 그 전통을 이어가는 곳은 한국이다. 중국은 세계 4위의 땅덩어리(한국의 96배)와 인구 14억2천만 명(한국의 27배)을 가진 나라다. 국가 형성은 56개의 민족이 살고 있으며 23개의 성을 가지고 있다. 칭다오는 그렇게 큰도시는 아니다 중국 산둥성 동부, 산둥반도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면적은 11,067㎢이니 경상남도보다 조금 크다. 인구수는 838만명이니 서울인구보다 조금 작다.
첫날은 칭다오에 있는 맥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19세기 말 독일이 산둥반도를 조차한 이후 1903년 독일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공장 중 하나이다. 재미 있는 것은 설립부터 지금까지 생산하였던 맥주의 용기와 제조시설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당시의 기술을 실감하게 하였다. 이어 우리는 해천타워로 이동했다. 해천타워는 높이 369m에 81층이다, 이곳에 오르면 360도 뷰와 유리잔도가 있는데 산둥성에서 가장 높은 이 전망대에 올라 가보면 완전 독일풍의 느낌을 맛볼수 있다. 마치 독일을 착각할 정도이다. 한참 보고 있노라면 나라에 힘에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패배자의 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일정이 빠듯하여 발걸음을 제촉, 천주교당과 중산로거리로 갔다. 천주교당은 1932년부터 2년에 걸처 독일에 의해서 지어진 건축물이다. 문화 대혁명 당시 성당이 일부 파괴되고 내부의 많은 유물이 사라졌는데 1981년부터 예배가 가능해지면서 복구되었다고 한다. 칭다오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로, 언덕 위에 56미터의 높이로 2개의 첨탑이 높게 서 있기 때문에 어디서든 잘 보이며 그야말로 외관도 아름답다. 아래로 조금 내려오면 중산로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전 세계의 건축양식을 전시 해 놓은 듯이 나열되어있었다. 1백년이 넘는 거리와 유럽풍의 다양한 건축들... 사실 건물은 한시대의 사회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건물을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따른다. 대표적인 질문이 건축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건물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이 궁금할 것이다. 건축은 놀랄 정도로 한 시대의 사회의 가치관과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반영시키고 있다. 건물에서 이것들을 생생하게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건축은 그 나라의 역사이고 문화이고 예술이다. 문화와 역사를 알려면 먼저 건축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산둥성 칭다오의 중산로거리는 그것을 읽기에 충분했다.
이어 보고 싶은 독일총독관저이다. 이곳은 당시 29세 젊은황제인 빌헬럼2세에의해 세워 진 것이다. 빌헬럼황제는 선진국으로서 원주민들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신민의식과 식민지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1897년 칭다오에 선교를 대거 파견하게 된다. 이곳에서 활동을 벌이던 2명의 독일인 선교사가 중국인에 의해 피살 되고 만다. 이 사건은 보고 받은 젊은 빌헬럼2세황제는 48시간만에 칭다오를 점령, 식민지화 시키고 만다. 여기에 독일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총독관저를 건립했다고 한다. 외부와 내부 모두 화려하기 그지 없다. 신기 한 것은 건립당시의 집기들과 내부 시설이 120년이나 된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데 신기한다. 1957년 마오쩌뚱이 이곳에서 휴가를 즐길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건축 양식을 꼼꼼이 보고 있으면 기가막힐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내부 구조와 편안한 공간처리, 빛과 어둠의 대비를 잘 조화 시켜놯다. 그리고 방마다 명암을 대비하여 설계 하였다. 작은 문고리하나, 전기 스위치 하나까지 소흘함이 없었다. 건물 내외모두 고딕건축 양식이며 요소요소에 볼륨감각을 아주 잘 표현해 놨다. 중국의 상술과 독일인의 장인정신을 읽을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였다.
태양이 중천에 있을 무렵 우리는 5.4광장을 찾았다.
이곳은 일본의 산둥반도 지배에 대항하여 1919년 베이징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민주운동 ’5.4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광장이다. 상징물인 그대한 조형물은 높이 30m 철 70톤을 들어 조성하였는데 주제는 ’5월의 바람‘이다. 중국의 미래를 보는 기분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 느낀 점을 정리한다..
답사내내 중국이 두렵고 무서웠다. 15여 년 전 여행의 목적으로 필자가 몇 차례 다녀온 옛 중국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많이 성장해 있었다. 현재 중국을 이끌고 가는 사람은 중국 인구의 상위 6%의 사람들이다. 바로 이들 6%가 공산당원이다. 약 9천3백만 명. 공산당원이 한국과 북한의 합친 인구보다 많다. 공산당원이 되려면 최소 대학에서 전체 100위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100위안에 들어간다고 모두 공산당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몇 년에 걸쳐 민족관과 국가관 그리고 사회성 등 여러 가지 검정을 거쳐 이상 없으면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각 분야별 적정 인원을 뽑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정치, 경제, 농업, 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골고루 뽑는다고 한다, 한국의 상위 6% 엘리트들은? 특히 한국이 아이티 강국이란 말은 물 건너간 기분이었다. 현재 중국의 전기차 사용률은 14%이다. 한국은 5.5%에 불과하다. 중국의 틱톡(한국의 카톡)은 이용자 수가 8억 명이다. 미국의 페이스북 이용자 7억 명보다 많다. 참 놀라운 나라다. 인터넷 이용자는 14억2천만 명 중 11억 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빈집은 1억8천 가구인데 그래도 집은 열심히 짓고 있었다. 경제는 소비가 멈추는 순간 국가가 위기에 빠진다는 것을 잘 아는 것 같았다. 공산주의 탈을 쓴 완벽한 자본주의였다. 중국은 철저한 능력주의 나라였다. 그리고 중국의 부동산제도는 땅은 국가소유인데 계약 기간이 30~40년이고 주택은 70년이라고 한다. 물론 계속 연장이 가능하고 그사이 국가가 필요할 시에는 보상하고 회수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겁먹을 것은 없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보면 약 250여 년 간격으로 흩어졌다 붙었다 하는 민족이다. 우리는 조선 5백 년과 신라 1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한 때 마오쩌둥은 중국의 한자 번자체가 획수도 많고 너무 어려워 간자체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한글‘도 검토했다고 하니 우리도 대단한 민족이다. 아마 필자의 느낌에 소국의 문자를 커닝하려고 하니 자존심 상하기 때문에 포기했을 수도 있다.
바라는 마음...
우리도 통일되면 8천만 인구에 기술과 자원이 탄탄하니 세계 227개국 중 선도부장은 못 되더라고 선도 차장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쯤 통일 될랑고?
정리하면
현재의 모습을 보면 경계하면서도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2024년 6월 3일 성환이 60하고 6해에 쓴다.
첫댓글 부럽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칭따오 맥주 많이 드셨습니까? 드시다 남은거 있으면 좀 주이소 --
더 왕성한 활동을 기원합니다. 선배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