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그런 클래스에서 ‘클래식’이라는 말이 나와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클래식은 어떠한 분야에서 최상위의 가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클래식이란 말은 “가치가 불변하고 영구적이며,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품위가 있으며, 절제되고 모범적인”이라는 뜻을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음악이나 문학이나 저술에서의 그런 것들을 일러 클래식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즉 클래식이라는 말에는 각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의 것이며, 최상의 걸작이며, 영구불변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59)
그것은 클래식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1700년에서 1950년 사이의 250년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지요. 즉 1950년 이후의 음악은 일반적인 콘서트의 레퍼토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그 이후의 음악들만 연주하는 음악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연구나 학술활동 혹은 특정 예술가를 위한 기념이거나 특정 청중을 대상으로 한 활동인 경우가 더 많고 관객 일반을 위한 공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64-65)
처음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성행했지만, 고전음악은 1800년을 전후하여, 음악 소비의 새로운 중심계층이 되었던 시민계층의 성원을 받게 되고, 점점 모든 계층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징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 <환희의 송가>라고 할 것입니다. 교향곡 역사상 최초로 가사를 붙일 수밖에 없었을 만큼 베토벤과 실러가 전하려는 뜻은 위대했습니다. 그 가사를 유념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그러니 차별 없이 모든 인류가 손잡고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이르지 못한 고매한 이상입니다.
(68-67)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차용한 영화음악이나 TV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아무리 클래식이 나와도 그것을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축하 행사장이나 결혼식 피로연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에 저만치 뒤에서 존재감 없이 울려 나오는 <사랑의 인사>는 더 이상 클래식이 아닌 것입니다. 쇼 프로에서 테너가 핏대를 세우며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고음을 성공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클래식의 정신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 성악가에게 일말의 박수를 보낸다면, 그것은 공중제비 넘기에 성공한 곡예사에게 보내는 박수와 같은 등급의 의미입니다. 베토벤은 청중들로부터 그러한 박수를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가 연주 대신 작곡에 더 집중하려고 했던 뜻이 여기 있습니다.
(128-129)
음악은 다릅니다. 윤동주나 채만식은 활자를 통하여 나와 바로 연결되고, 비록 복사본으로 감상하여도 피카소나 이중섭의 그림은 나와 바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장르의 특징은 여기서 두드러지게 다릅니다. 즉 창작자와 감상자인 나 사이에는 재현이라는 과정, 즉 연주자가 있는 것입니다. 한 단계가 더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