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께
아침부터 전화 드리고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글을 쓰긴 썼는데 일본불교사 공부방의 취지에도 맞지 않을뿐만 아니라 내용도 허접하기
짝이 없는것 같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교수님께서 읽어 보시고 많이 수정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원고는 사진을 삽입한 것과 한글만으로 된 내용을 별도로 첨부 하였습니다.
고운날 되시고 행복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길상사 나들이
얼마 전 김호성 교수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일본불교사 공부방에 실을 원고를 써보라고 권하
시기에, 제가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어려울 것 같다 말씀드렸더니 그냥 부담 없이 해보라 하
시는데 저로서는 참으로 자신이 없었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네, 해 보겠
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는데 생각한 만큼 글이 쉽게 되지가 않았다.
오죽하면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겠는가?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공학도 인지라 글쓰기가 매우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며칠을 두고 고민을
하고서야 지난 11월 성북동 길상사에 다녀온 후 간략하게 메모하여 블로그에 담아둔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해 보고자 한다.
지난 11월 둘째 주말, 북한산 자락이 끝나는 성북동 기슭에 자리한 길상사에 가기위해 아내와
둘이서 집을 나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으나 우리 부부는 늦은 단풍놀이도 할 겸
하여 북악 스카이웨이를 이용하여 길상사를 향했다. 우리 부부는 길상사에 가게 되면 걷게 되
는 코스가 거의 정형화 되어 있다. 제일 먼저 관세음보살 참배 그리고 극락전, 범종각, 길상선원,
행지실, 능소화 오솔길, 길상헌 순이다.
주차장에서 일주문 까지는 약 4~50여m쯤 되며, 일주문은 다른 도량에 비하여 여성스런 섬세함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보인다. 도량에 들어가기 전 합장을 하고 공덕주 김영한(법명: 吉祥花)
보살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길상사와 김영한 보살에 대하여 생각하여 본다.
일 주 문
<길상사는 지금은 청정한 도량으로 변모 하였지만, 한 때 우리나라 제일의 요정 대원각이
있었던 곳이다. 60년대 말 삼청각, 청운각, 대원각 등이 최고급 요정이었으며, 그 중에 한
곳이 대원각으로 술과 음기(陰氣)를 팔던 자리가 부처님을 섬기는 절로 변한 것이다
불가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연꽃은 가장 더러운 진흙에서 피듯이 요정의 주인이었던
김영한(불명 吉祥花)보살이 죽기 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도량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김영한(1915~1999)은 기명(技名)이 진향(眞香)이고 필명은 자야(子夜)이다. 그녀는 시인 백
석을 지독히 사랑했던 기녀이며 백석 또한 그녀를 위해서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한다. 백석
이 북으로 떠난 후 38선 때문에 그와 생이별한 그녀는 백석을 잊기 위해 혼자서 대원각을
우리나라 제일의 요정으로 만든 대단한 분이다 >
길상사경내
경내에 들어서니 가을의 끝자락이 주는 스산함 보다는 마음이 포근하니 안정되고 맑아지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법정스님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극락전에 들기 전 관세음보살께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린 후 바라본 모습은 다른 도량의
관세음보살님과는 달리 새하얀 백의에 가녀린 몸매하며, 갸름한 얼굴선이 누가 보아도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인즉 천주교 신자이자 조각가인 최종태씨는 평소 조각의 완성을 관음상 이라고 여기
던 차에 길상사가가 개원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법정 스님을 만나 자청하여 관세음보살상을
조성하게 되었는데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오묘한 조화속에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한 모
습이 느껴져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관세음보살상
관세음보살님을 뒤로하고 좌측을 보면 전혀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
길상사의 본전 극락전이 보인다.
극 락 전
길상사의 참배객 가운데 절집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은 대개 " 길상사에는 왜 대웅전이
없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또는 "왜 본전이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극락전이냐?"
하고 궁금해 한다. 그 까닭은 1997년 길상사가 창건되기 전에 이곳은 본래 요정인 대원각
이었다가 그 뒤에는 고기집으로 탈바꿈 되었다. 그런 탓에 뭇 남성들의 노리개가 되었든
여인들의 한이 서리고, 수 많은 산목숨이 죽어나간 곳이다. 그래서 가여운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고 , 사람들 먹을거리로 사라져간 뭇 목숨있는 동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뜻에서
극락전을 主殿으로 세웠다고 한다.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 부처님 좌우의 협시보살로는 좌
보처 관세음보살, 우보처로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범 종 각
극락전 참배를 마치고 범종각 옆길 한적한 소로를 아내와 다정히 걷다보니 길상선원과 어른
스님들의 처소인 정향당이 나온다 혹여 발자욱 소리가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여 발걸음도 조심조심 걷다보니 길상사의 가장 위쪽에 있는 행지실(주지실) 앞이다.
행 지 실
법정스님은 도겐스님의 정법안장 중 행지 편을 특히 좋아 하셔서 길상사 주지실을 만들때
행지실 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주지를 하려면 바른 행을 지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른 행을 지니라고 하심은 꼭 주지에 국한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든 중생에게 내
리신 법문이자 지혜의 말씀이 아닐런지....
오 솔 길
행지실을 등지고 아래쪽을 조망하면 각 전각과 숲 그리고 오른쪽의 작은 계곡까지 어우러져
빼어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행지실을 뒤로하고 고즈넉한 소로와 계단을 내려오게 되는데
여름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능소화 오솔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능소화 오솔길
우측 개울 건너 비탈에 스님들의 처소인 육바라밀체가 있고 그 아래에는 어른 스님들의 처소인
길상헌, 길상헌 뒤편에 이 도량의 공덕주인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가 있다.
육바라밀체
짧은 시간 길상사 경내를 거닌후 능소화 오솔길을 바라보며, 지난 여름 오솔길 여기 저기에
떨어져 있는 능소화가 애처로워 어줍잖게 읍조려 본 것을 다시 한번 읍조리며 일주문을 향
한다.
백석을 향한 길상화 보살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한일런지
능소화 오솔길의
능소화 한 송이
뚝~하고 떨어집니다.....
애닮은 영혼일랑
훠~이 훠~이 서방정토로
극락왕생 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길상사나들이.hwp
첫댓글 거사님,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요. 이공계열이라고 글 못 쓰신다고 하셨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쓰시는 글이고요. 매우 감성적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쓰시면 됩니다. 자신감 가지셔도 좋습니다. 이 글은 "공부방" 제10호 '기행문' 속에 넣으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진은 그렇게 다 쓸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편집이 아직 주먹구구입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