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가장 잔혹한 영화 <스위니 토드>는 인간의 탐욕과 파멸, 어둠에 관한 이야기다. 팀 버튼은 순환하는 비극의 고리를 따라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에 대한 거부할 수 없이 유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이하 <스위니 토드>)는 팀 버튼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어두운 축에 속한다. 팀 버튼의 전작을 눈여겨보았고 또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이 말에 대체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두운 팀 버튼 영화는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용으로 개봉됐다. 팀 버튼은 주류 감독이라고 하기에는 보기 드물게 크리스마스에 악몽을 선사해왔다. <스위니 토드>는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 영화처럼 보이지만 달콤한 노래에 취하다보면 날카로운 면도날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팀 버튼과 6번째로 작업을 함께 한 배우 조니 뎁은 19세기 런던의 이발사 벤저민 바커를 연기한다. 그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두운 인물이다. 런던으로 돌아온 이발사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꾸민다. 15년 전 벤저민은 아내 루시(로라 미셸 켈리), 어린 딸 조안나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루시의 미모를 탐낸 판사 터핀(앨런 릭맨)의 계략으로 벤저민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 아내 루시는 판사의 유혹에 시달리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러빗 부인(헬레나 본햄 카터)은 그녀가 자살했다고 귀띔을 해준다. 딸 조안나는 터핀 판사에게 입양돼 수양딸로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은 벤저민 바커가 감옥에서 보낸 15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감옥에서 탈출한 벤저민은 런던으로 돌아와 러빗 부인으로부터 소식을 접한 뒤 자신의 이름을 스위니 토드로 바꾼다. 그리고 파이 가게를 운영하는 러빗 부인의 도움을 얻어 건물 2층에 새로운 이발소를 차리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발사가 간절히 기다리는 손님은 물론 터핀 판사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목이 면도날에 잘려나간다.
<스위니 토드>의 원형은 19세기경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실제 살인사건을 모델 삼아 쓰여진 소설에서 비롯됐다. 토머스 패켓 프레스트가 1846년 11월 잡지에 실은 소설 <진주 목걸이 로맨스>는 다음 해 연극으로 각색돼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달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뮤지컬을 통해 새롭게 창조된 <스위니 토드>는 암울한 춤과 노래를 통해 잭 더 리퍼(역시 조니 뎁이 출연한 영화 <프롬 헬>의 소재가 된 인물이다) 같은 연쇄살인마의 전형이 되었다. 스위니 토드의 사연에는 원형적인 요소들이 많다. 탐욕스러운 판사 터핀과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이발사 벤저민 바커의 갈등은 전형적인 계급의 갈등이다. 권력을 쥔 자의 탐욕스러움과 힘없는 민중의 복수심을 대비시킴으로써 <스위니 토드>는 고전적인 이야기의 틀 위에 살인마의 이야기를 덧입힌다.
이발사의 면도칼은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허풍을 떠는 사기꾼 이발사의 목을 따는 것으로 시작해 점점 더 무차별적인 양상을 띤다. 살인 행위가 반복될수록 복수의 목적은 사라진 채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만 손님들로 불어나는 결과를 맞이한다. 애초에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는 맛없는 파이와 파리만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발사의 살인을 돕게 되면서 두 사람은 끔찍한 계획을 꾸민다. 그녀는 희생자들의 인육을 파이에 넣기로 결정한다. 중국의 <수호지>에 등장하는 인육만두처럼 사람의 고기를 쓰는 카니발적인 요소에는 축제의 분위기와 더불어 사람들을 서로서로 공모자로 만들고 연대하는 힘이 있다. 카니발의 어원을 추적하면 고기를 치우거나 없앤다는 의미의 라틴어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 혹은 카르넬레바리움(carnelevarium)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에는 축제의 의미로 쓰인다. <스위니 토드>가 그려내는 카니발리즘이 꽤나 원형적이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람들의 공모와 피의 축제는 점점 더 강도를 더한다. 탐욕스러운 판사처럼, 살인의 광기를 채우려는 이발사처럼, 사랑에 굶주린 러빗 부인처럼 사람들은 식욕을 위해 인육파이로 배를 채우고 그들 중 누군가는 이발사에 의해 고깃덩어리가 된다. <스위니 토드>는 선과 악이 무차별적으로 뒤섞이는 혼돈의 무대로 관객들을 이끌어낸다. 그 중심에는 아내와 딸의 사랑을 빼앗긴 것에 분노하는 사내 벤저민 바커가 있고, 터핀 판사의 그칠 줄 모르는 탐욕은 수양딸로 받아들인 조안나(제인 와이즈너)와 결혼할 계획으로 나아간다. 이발사의 적극적인 조력자인 러빗 또한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그녀는 이발사와의 행복을 꿈꾸면서 살인극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사랑의 욕망에 사로잡힌 포로는 또 있다. 바커와 함께 배를 타고 런던에 들어온 선원 앤소니(제이미 캠벨 보웬)는 길을 가다 우연히 창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조안나를 보게 된다. 그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그녀를 구해내기로 결심한다.
<스위니 토드>는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바커), 사랑의 탐욕에 인간을 파멸시키고(터핀), 사랑에 눈이 멀어 공범이 되고(러빗), 사랑에 빠져 모험을 하는(앤소니) 세상의 이야기다. 서로 엇갈린 사랑의 욕망은 이발사와 앤소니를 공모자로 만드는가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엇갈리는 운명의 순간들은 <햄릿>의 유명한 대사인 시간의 마디는 어긋나 있다(Time is out of joint)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사가 인간의 의도와 계획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간편하겠지만, 시간은 항상 어긋나 있기 마련이다. <스위니 토드>에서 어긋난 시간의 마디는 순조롭게 진행돼가는 사건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들고, 비극에 비극을 더한다.
어긋난 시간의 마디가 이뤄내는 비극의 코러스는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다. 스위니 토드가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터핀 판사를 해치우는 순간 정체 모를 한 여인이 끼어든다. 벤저민 바커는 그녀의 목을 붙들고 면도칼을 그어버린다. 상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잠시 뒤 그녀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벤저민 바커는 괴로움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그것은 복수의 칼날이 스스로를 향하는 순간이다. 복수의 정념과 광기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의 운명은 스스로를 죽음에 빠트린다. 인육을 굽던 러빗 부인은 자신의 아궁이에 처박혀 죽음을 맞이하고, 탐욕스러운 판사는 유혹의 면도칼 아래 목이 잘리고, 불우한 삶을 살던 아내는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발사는 아들뻘 되는 소년에게 목이 잘린다. 딸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편은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며, 판사는 감옥에 보낸 이발사를 알아보지 못한다. 선혈이 낭자한 무대 위에서 인간들은 서로를 깨닫지 못한 채 무차별적인 죽음 속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요소와 운명의 순환은 러빗 부인의 저택을 통해서도 흥미롭게 구성된다. 이발소가 있는 2층에서부터, 파이를 구워내는 지하 그리고 파이를 파는 1층은 사건을 따라, 죽음을 따라 서로 연결되면서 비극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낸다. 영화에는 과감한 카메라의 움직임이 눈을 끄는데, 가령 이발소에서 저녁 무렵의 창밖을 바라보던 벤저민 바커의 시선이 런던 시가지와 이어지면서 판사의 저택으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끈적한 운명의 고리들을 시각화하고 있다.
팀 버튼 특유의 시각적인 효과를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 덕분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뮤지컬에서 춤과 노래는 인물 간의 대화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지만, <스위니 토드>는 시각적인 강렬함을 지닌 무대가 춤의 화려함을 대신하고 있다. 러빗 부인과 이발사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홀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 많다. 음악은 대화와 전개이기보다는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연장시키는 거대한 분위기인 셈이다. 두 사람의 노래조차도 엇갈린 욕망을 토로하는 독백에 가깝다.
그리하여 이발사의 노랫소리는 런던의 뒷골목을 흘러 다니며 사람들을 죽음의 이발소로 유혹한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 인간의 파멸, 인간의 어둠에 관한 원초적인 유혹이다. 불쾌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운명을 돌아보게 만드는 팀 버튼 특유의 유혹이다.
이상용(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