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세상은 외로움의 세상입니다. 사람이 많아도 지식이 많아도 문명이 발전할수록 이 마음의 병은 인간을 어렵게 만듭니다. 현대에 힘든 것이 있다면 고독의 병이다. 그래서 고통스럽기도 한다. 함께 있지만 전혀 여전히 외로운 것 어떻게 해야 되나?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연구했어도 답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겸손하게 만들기도 하는 듯 합니다.
가족은 서로의 헌신, 그리고 따뜻함과 소속감을 주기도 하지만 가장 아픈 상처의 근원이기도 하지요. 하나님이 없는 가족 안에서 받았던 상처가 더 오래 가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개인적 성격과 성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안에 존재하는 관계와 소통 방식의 문제에서 야기된다. 사실상 사랑은 공감과 소통으로 많이 표현이 된다.
사랑한다면 그에 걸맞은 소통과 공감을 필요로 한다. 정작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들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의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감의 질이 떨어지면 여려가지의 어려움이 온다.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다른 사람과 공감 있는 대화를 나눌 때이다. 즉 나눔의 은혜이다.
눈과 눈이 마주치고, 얼굴과 얼굴이 서로를 향할 때 가장 큰 기쁨을 얻는다. 가족들이 소통의 부족과 대화의 결핍을 호소한다면 이것은 단지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소통은 공감의 능력을 증진시켜 주지요.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공감 받았을 때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공감을 하려면 자신의 정서를 관리하여 공감의 능력을 키워야 되지요. 자신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찰하는 통찰력과 입장을 바꿔 보며 이해를 해주는 영성이 필요합니다. 자기감정을 사용해 보려고 의도적이라도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되기 전에는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목장모임은 우리의 삶에 질을 높여 위로와 소망의 에너지를 받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은 자기감정을 담담하게 인정하는 말을 표현할 때 공감의 필요성이 지혜로 느껴집니다. 입장을 바꿔가는 이해의 과정을 통해서 시작이 됩니다.
잘해 봅시다, 용서하자, 화해하자 말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에게도 나처럼 외로웠구나”라고 공감해야 용서도 할수 있습니다. 공감에 대한 삶의 질로 애정과 위로로 행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축복합니다.
공감의 지혜로 사람을 살리는 하늘복으로 충만하세요.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