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간이 무엇인가? 물리적 개념과 시간적 개념이 있다.
반가운 사람은 오래 있어도 짧게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시간이 길다.
심리적 시간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1주일이 빨리 가신 분? 예배시간? ^^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시간개념이 있다. 신학적 시간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말한다. 혼자 음침한 골짜기에 있었던 시간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시간의 차이를 말한다.
시편 23편이 유명한 것은 인생의 안내자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예)북유럽 여행 때 러시아에서는 안내자가 있어서 편했다. 하지만 발칸 3국을 갈 때는 어려웠다.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피곤하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면 힘들고 두렵다. 그러나 제대로 된 안내자를 만나면 즐기면 되는 것이다.
무디가 어느 날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다섯 살짜리 아들이 서재로 들어왔다. 무디는 자 신의 글쓰는 일이 방해될까봐 아이에게 `왜 들어왔니, 무얼 원하니?`하고 물었다. 그때 아이가 `아무 것 도 원치 않아요. 그냥 아빠랑 함께 있고 싶어서 왔을 뿐이에요.`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아빠 서재에서 노는 것이다.
무디는 자기 서재에서 조용히 놀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나가라고 말할 수 가 없었다. 그때 무디 목사님은 가슴 속으로 조용한 감동이 일어남을 느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신다. 그 분이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내 인생 길을 고상하고 깊은 하나님의 의의 길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의의 길로 나를 이끄신다.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셔서 나를 훈련 하시고 연단하시고 정결케 하신다.
어떤 때는 원수 앞에 나를 세우신다. 그리고 내가 잔이 넘치게 하신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다. 6절 그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른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는 기도할 때에 `혹시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혹시, 만약에`가 아니라 `반드시, 결단코`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다르다. 인생을 다르게 살게 한다.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앤소니 드맬로`가 쓴 `개구리의 기도`라고 하는 글이 있다. 한 미국 사람이 일본에 골프 관광을 갔다. 그런데 경험 많은 골프 캐디들은 모두 그린으로 나가고 처음 배운 신임 캐디만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미국인은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 소녀를 내내 캐디로 썼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요? 그 소녀는 그가 골프공을 칠 때마다 결과하고는 상관없이 날아가는 공을 향해 발을 구르면서 감격에 찬 목소리로 `Dammed good shot!!`(`와! 드럽게 잘 치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소녀가 알고 있는 영어라고는 유일하게 이 한 문장뿐이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살리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분이시다. 자존감을 세우게 하신다. 두려운 하나님이 아니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그렇다. 인생의 문제들을 인도해주시려고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롬 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혹 내가 미약하고 실수해서 저지른 죄라도 그것들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 10:14-15 말씀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인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
시인도 이렇게 결단한다.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으시다. 그분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은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결단한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 것이며 하나님과 동행할 것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드릴 것임을 선포한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제사장의 축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성전을 맡았던 사람은 레위지파와 제사장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사람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라고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편 65:4 말씀에는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왕이다. 많은 축복을 경험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 가운데 가장 깊은 소원은 여호와의 집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제사장적인 삶이었다.
어느 정도인가? 악인의 궁궐에서 천 날을 사는 것보다 주의 장막에서 한 날을 사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을 정도이다.
제사장의 축복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입니까? 무엇이 진정한 축복입니까?
시편 23편의 노래가 내 인생의 간증이요, 고백이라고 시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다. 내가 가는 모든 길 과 내가 살아왔던 모든 여정들을 하나님은 주관하시고 인도하셨다. 이제는 내가 결단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너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여호와의 집에서 주님과 더불어 살기를 갈망합니다. 제사장처럼, 레위사람들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서 당신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라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런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교회에서 바쁘게 하는 것을 정말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교회에서 바빠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세상일에 바쁘지 마라. 교회에서 바빠라! 교회의 문지기가 되는 것이 낫다.
왜 그런가? 우리가 갈 고향이기 때문이다.
존 하워드 페인은 고향을 떠나서 파리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했다. 어느 날 저녁때에 창가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행복하게 귀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기의 하숙집이 매우 쓸쓸하고 적적하게 느껴졌다. 그는 고향 롱 아일랜드의 조그마한 마을이 떠올랐다. 거기서 지낸 어린 시절의 풍취와 추억이 그를 사로잡았다. 인정은 받지만 그의 가슴에는 고향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마음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 는 내 집뿐이리/ 오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내 벗 나의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우리의 고향은 어디인가? 하늘나라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곳이다.
이 세상은 잠깐 왔다 가는 곳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인생을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공원은 텅 비었다. 공원을 지키는 공원 지기가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신사 양반, 도대체 당신은 어디서 왔는데 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소?` 이 퉁명스러운 질문에 이 노년이 대답을 하였다. `바로 그것이 요,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겠소. 내가 지금 그것을 고민하고 있는 중 이요.`라고 대답을 하더란다. 그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이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 2. 그래서 내가 부족한 것이 없다. 3. 하나님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4.그렇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수 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5. 주께서 막대기와 지팡이로 보호해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