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오른손에는 연필을 쥐고 왼손은 가지런히 책 옆에 두고 있는 모습. 초등학교 시절 바른생활 교과서로 배웠던 수업 시간 올바른 자세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혹여 기억을 한다 해도 직접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완벽한 자세는 아니더라도 학생이라면 수업 시간에 필기할 수 있는 연필이나 펜은 들고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 손에는 연필보다 휴대전화, PSP, MP3가 더 오래 머물고 있다. 쉬는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수업 시간까지 자그마한 기계들이 학생들의 손을 점령하고 있다.
사실 학생과 선생님들 사이에 휴대전화, 휴대용 게임기를 둘러싼 싸움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사용하지 않더라도 소지하는 것만으로 압수를 하기도 하고 압수한 물건은 장기간 보관하는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해 보았지만 지금도 싸움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단속을 심하게 할수록 학생들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가고 있다.
책상에 구멍 뚫어 선생님들의 눈 피해
과거에는 사전이나 두꺼운 책을 쌓아놓고 그 뒤에서 몰래 문자를 보냈었던 것이 고작이었지만 날로 지능화되는 학생들의 기술은 선생님들도 놀라게 만든다. 다리를 꼬고 앉아 몰래 문자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다가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재빨리 다리 사이에 넣고 손가락을 만지는 척 하는 방법은 애교수준에 머무를 정도이다.
지금 가장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는 ‘책상의 구멍 뚫기’만 보더라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업 시간이 지루해 연필로 조금씩 파내던 그런 작은 구멍이 아니다. 휴대전화나 PSP 같은 게임기의 액정 크기를 자로 재서 정확히 그 크기대로 책상에 구멍을 낸다. 학생들은 이 구멍을 통해 책상 안으로 휴대 기기와 손을 넣어 수업 시간에도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수업 시간중 몰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방법©뉴스미션
물론 준비과정도 있다. 선생님에게 들킬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책상 안에 전자사전이나 노트 등 수업시간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쯤 넣어둔다. 두 손을 책상 안으로 넣고 게임을 하기 때문에 선생님께 걸리면 책상 안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는 척 하기 위한 방법이다. 구멍은 재빨리 교과서로 가리고 준비해두었던 물건을 꺼내면 자연스럽게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이 방법이 인터넷을 통해 유행처럼 퍼져 선생님들의 감시를 받게 되자 학생들은 한 단계 더 발전된 방법을 생각해냈다. 안정성을 인정받는 방법이라지만 ‘책상에 구멍 뚫기’는 평상시에도 구멍을 가리기 위해 신경을 써야하며 일단 구멍의 일부분이라도 들키면 숨길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책상 구멍 전용 뚜껑도 등장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책상 뚜껑 만들기’다. 2cm에 가까운 책상 두께를 뚫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에 뚜껑까지 신경을 쓰지 못 했던 학생들의 그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뚜껑이 있으면 구멍을 막아 평상시에는 자연스러운 흠집처럼 보이는 효과도 있고 선생님에게 발각됐을 경우 응급처치의 한 방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뚜껑 없이 책상에 구멍을 뚫었다가 걸릴 경우에는 꼼짝없이 배상을 해야 하는 등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깨달은 학생들은 미리 뚜껑을 준비해두었다가 적발되면 구멍은 톱밥이나 지우개 가루로 막고 그 위에 준비해두었던 뚜껑을 덮어 감쪽같이 구멍을 없애버려 선생님들의 눈을 속인다.
‘책상에 구멍 뚫는 방법’까지 공유
심지어 인터넷에는 ‘쉽게 책상에 구멍 뚫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제작 방법까지 올라와 있다. 적절한 도구, 재료, 각 단계별 사진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게시글에 달려있는 댓글들이다. 분명 잘못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반응은 ‘존경합니다’, ‘대단합니다’였다. 물론 당장 따라해 보겠다는 댓글들도 보였다.
갑자기 동생이 십자드라이버를 찾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인터넷을 보니 십자드라이버가 책상 구멍 뚫기에는 제일 좋다고 해서”라는 대답을 듣고 놀랐다는 강동진(21)씨의 말처럼 나쁜 행동임에도 따라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책상에 구멍 뚫기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있다.©뉴스미션
즐거움을 넘어 중독까지
또한 이렇게 수업 시간까지 휴대전화나 게임기를 사용한다면 중독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이 최근 B고등학교 1학년 재학생 3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휴대전화 소지자 276명 중 29%인 80명이 휴대전화가 손에 없으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의 사용시간이 길수록 중독에 빠진다는 것은 당연한데 수업 시간 중에도 휴대전화나 게임기를 사용하는 학생들은 중독이 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B고등학교의 경우 응답자의 35%가 휴대전화 장시간 사용으로 인한 손목 통증과 환청, 초조, 불안감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런 증상들은 이러한 기기들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집중력을 흩트려 학업 성취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온다.
음향효과 없이 게임을 하는 것이 재미가 없다며 심지어 가느다란 이어폰 구멍까지 뚫고 있는 학생들.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의 손은 늘 책상 속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