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文 熙 鳳
이제 칠십 중반도 넘어서는 나이에 이르렀다. 옛날 같으면 극 노인 소리를 들어야 할 나이다.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 동네 사람들이 몇날 며칠을 함께 하며 이순을 축하해 준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어디 가서 명함도 내놓지 못한다. 인생의 시작은 육십부터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선 것이다.
내 찬란한 인생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어느 방향으로 향하도록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그 방향키를 조종하는 것은 순전히 내게 달려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욕심 같지만 3~40년을 내다보며 앞으로의 삶에 대한 내 의지가 반영되도록 세심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기다.
삶과 일에 대한 열정의 유무는 외모나 성격,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은 함께 공존하는 것들이다. 어느 것을 받아들이고, 어느 것을 배척해야 할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누우 떼의 이동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건기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먹이를 찾아, 생명수를 찾아 수천 마리의 누우들이 몇 달을 두고 이동한다. 이동 중간에 해가 기울면 휴식하고, 날이 밝으면 또 이동한다. 정처 없이, 기약 없이 걷고 또 걷는다.
이동 중 고난은 이미 예견된 것들이다. 강을 건너면서 악어들의 습격을 받는다. 어미 누우는 악어에게 뒷발이 물려도 쉽게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물속을 빠져 나와 ‘휴우’ 한숨을 쉰다. 그러고도 절벽을 뛰어내려야 한다. 꽤 높은 절벽도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 누우는 악어의 습격에 기진맥진 생을 포기하고 물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어미 누우들은 물론이고 내 눈에도 물기가 고인다. 절벽을 뛰어내리다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대열에서 낙오되는 누우들도 있다.
이동 중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들은 악어만이 아니다. 사자도 있고, 호랑이도 있다. 신천지에로의 끝없는 이동은 그들을 지치게 하지만 이런 방해꾼들이 있기에 항상 긴장하고 경계의 시선을 늦출 수가 없다. 그래도 이동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아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누구든 일생에 한두 번은 건너기 힘든 도랑을 만나고 절벽을 만나게 된다. 힘든 고통과 시련, 난관에 봉착한다. 그러나 절대 물러서거나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도랑을 건너야 한다. 절벽을 오르고 뛰어 내려야 한다. 건너고 올라서기만 하면 거기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영광을 얻는다.
내 인생에도 몇 번의 건기가 있었다. 마음대로 목적지를 향해 노를 저을 수 없었다. 여러 방해물들이 나의 전진을 가로막았다. 학창 시절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건강 악화가 있었다. 두뇌 쪽의 이상은 나를 멍청하게 만들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머리에 입은 상처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마늘 밭 일을 하기 싫어하는 형 앞에서 놀다가 형이 내리꽂는 쇠스랑에 머리를 찍힌 일이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상처였었다는 데 살아남은 것만도 천행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을 쉬었다. 장래를 준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청소년기를 그렇게 보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으랴. 이만한 사람으로 생활해 왔다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삼각지 로타리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인 때도 있었다. 왼쪽으로 들었다가 중간에 오른쪽으로의 방향 전환을 위해 많은 정열을 쏟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1차까지는 통과했으나 2차에서는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젊음이 다 가기 전에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옭죄었다. 그럴수록 내 숙원인 방향 전환은 나를 외면했다.
결국 오전육기 하지 못하고 육전 육패로 끝을 맺었다. 그 후엔 군자의 삼락 중 세 번째인 육영사업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걸어온 길에 대하여 후회는 없다. 아니, 내가 선택한 길이 최선이었다는 걸 인지하고부터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이가 들어도 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꿈, 꿈을 잃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청춘이라 하지 않는가.
간단하고 소박해도 좋다. 사랑이 넘치고 감사로 가득한 내 인생을 엮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심하는 인간에게는 죽음을 안겨준다 했다. 보석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인생도 그렇다. 인생의 참의미를 아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한다. 내 육신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보석이다.
시냇물이 소리를 내는 것은 물속에 돌멩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도 닥쳐온 건기를 슬기롭게 이겨냈기에 지금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에게도 ‘내적인 힘’이 있다. 하늘이 주신 천부의 무궁한 잠재력이 있다. 지금까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그 힘을 발휘해 보자.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단 하루도 도전이 아닌 날이 없다. 곳곳에 장애물이 있고, 벽이 가로놓여 있다. 미로 찾기 게임이다. 그럴수록 그걸 이겨내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세상에 가장 끔찍한 것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찬란한 인생을 엮어내기 위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자평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꿈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제 살았던 방식은 오늘의 삶을 결정하지만 내일의 삶은 오늘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좌우한다. 과거에 집착했던 지난날의 괴로운 기억들은 모두 떨쳐버리고 내일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오늘의 삶을 다시 돌아볼 것이다.
다짐은 새로운 시작이다. 처음 자리를 돌아보며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나이는 먹었지만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가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자기 암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 말하지 아니하던가.
청명한 하늘,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무엇이든 꿰뚫을 것 같은 강렬한 태양과 교우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재조명할 것이다.
어떤 싸움이든 승부를 짓는 건 패기와 투지다. 소망은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비밀이다.
자기 자신이 캐낸 인생만이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인생의 건기를 지혜롭게 이겨낸 경험을 살려 남은 인생도 찬란하게 엮어 내리라 다짐해 본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 아름다운 음향으로 달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