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세계문화유산 타지마할(Taj Mahal)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인도 아그라 시 남쪽에는 궁전 형식의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 있습니다. 잔잔한 야무나 강을 바라보고 있는 타지마할은 황제가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사랑의 상징이자 제국의 위대함을 세상에 드러낸 멋진 건축물입니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뭄타즈 마할 왕비가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만든 안식처이지요.
왕비를 몹시 사랑했던 샤 자한 왕은 22년이나 걸려 타지마할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왕비의 이름에서 유래된 뭄타즈 마할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바뀌어 타지마할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타지마할은 지상 최고의 완벽미를 갖춘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순백의 대리석과 수많은 보석들로 지어져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타지마할은 인류가 간직한 소중한 보물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건축물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은 보다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어요. 샤 자한과 함께 원정길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왕비인 뭄타즈 마할도 있었어요. 뭄타즈 마할은 ‘궁정의 선택받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샤 자한 황제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자한기르가 직접 내려 준 이름이라고 해요.
황제들은 전쟁터로 떠나거나 장거리 원정에 오르면서 훗날 왕위를 물려받을 왕자를 데려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왕비를 전쟁터까지 데려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요. 샤 자한이 왕비를 전쟁터까지 데려간 것은 뭄타즈 마할이 아내인 동시에 정치적인 조언자였기 때문이라고 해요. 하지만 데칸고원 지역에서 샤 자한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뭄타즈 마할 왕비는 근처의 야외 천막에서 14번째 아이를 낳은 뒤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몹시 사랑했던 왕비가 죽자 전쟁터에서 돌아온 샤 자한은 백성들에게 2년 동안 왕비를 추모하는 기간을 갖도록 했어요. 슬픔에 빠져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왕은 왕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묘를 만드는데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1년에 걸친 고민 끝에 샤 자한은 아그라 성에서 가까운 야무나 강변에 사랑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심했지요. 그렇게 시작된 타지마할 건설은 22년이 걸렸고, 마침내 그 어떤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22년간 만든 화려한 무덤
타지마할 공사에는 22년 동안 매일 2만여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해요. 공사가 길어지자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타지간지라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질 정도였지요. 여러분은 상상이 가나요? 묘지 하나를 짓는 데 일꾼들이 살 도시가 새롭게 생겨났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또한 타지마할 건설에는 이슬람 건축의 대가인 이스탄불 출신의 이스마일 에펜디,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베로네오와 페르시아 출신의 장인들 등 외국의 이름난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참여했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것은 장인과 노동자뿐만이 아니었어요. 라자스탄 지역의 마크라나 광산에서 캔 흰 대리석을 운반하기 위하여 1000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동원되었어요. 타지마할의 바닥을 다지고 부속 건물을 짓기 위해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가져온 사암과 벽돌은 흰 대리석보다 훨씬 많았다고 해요.
또 샤 자한 황제는 여러 상인들에게 값비싼 보석과 건축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공급하게 했어요. 자이푸르 상인들에게는 다이아몬드를, 바그다드 상인들에게는 홍옥수라는 보석을 가져오게 했어요. 또 아프가니스탄의 청금석, 중국의 수정, 티베트의 터키석, 예멘의 마노, 아라비아의 산호 등 왕비의 묘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때까지 건설된 어떤 건축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보석과 재료를 사들였답니다.
완벽한 대칭을 보여 주는 건축물
22년 동안의 공사 끝에 타지마할은 환상적인 모습을 드러냈어요. 건물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타지마할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을 이룬 건축물이었지요.
타지마할은 인공으로 만든 7m 높이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요.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은 한 면의 길이가 58m 정도이고, 중앙 돔이 세워진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65m에 달합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모퉁이에 세워진 미나레트의 높이도 50m나 됩니다.
중앙 돔을 중심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타지마할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건물을 보다 환상적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바깥쪽으로 조금 휘어지게 건축한 거예요. 당시에는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이렇게 건축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되었답니다.
타지마할을 둘러보다 보면 우아한 꽃과 코란(이슬람교 경전), 독특한 문양의 조각, 반복적인 문양으로 장식된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눈이 부시도록 하얀 대리석 위에 새겨진 꽃과 코란, 조각, 문양은 아름다우면서도 하나같이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건물 안에는 가지각색의 돌로 아름답게 꾸며진 묘가 있어요. 건물이 완성될 당시에는 뭄타즈 마할의 묘만 있었지만 현재는 샤 자한 황제와 뭄타즈 마할이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물론 화려하고 우아한 꽃으로 장식된 관은 모형이고, 실제 시신은 타지마할의 지하에 있어요. 황제와 왕비가 잠들어 있는 묘지 주변은 나지막한 칸막이가 둘려 있어 묘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답니다.
기하학적인 공간들
타지마할 동쪽과 서쪽에는 타지마할을 향해 같은 모양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어요. 동쪽 건물은 나라에 중요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머무는 영빈관으로 사용하였으며, 서쪽 건물은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로 활용했지요. 하지만 두 건물을 지은 진짜 목적은 타지마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타지마할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붉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영빈관과 모스크도 매력적인 건축물이에요. 두 건물의 정면과 중앙 부분의 대리석에 새겨진 아름다운 꽃과, 벽과 천장을 장식한 조각들은 섬세함과 세련미를 자랑하고 있어요.
정사각형 모양의 타지마할 정원은 기하학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 거대한 정사각형 정원은 수로와 길을 따라 크게 넷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공간들은 다시 4등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커다란 정사각형 안에 16개의 정사각형 정원이 자리한 모습입니다. 전체로 보건 작게 쪼개 보건 정사각형의 형태를 드러나게 만든 것은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기하학적인 생각에서 나온 거랍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려면 2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해요. 먼저 동쪽, 서쪽, 남쪽의 출입문을 통과한 뒤 안쪽의 커다란 문을 통과해야 정원에 이르게 됩니다. 안쪽에 위치한 출입문은 타지마할 동쪽과 서쪽에 세워진 영빈관, 모스크와 비슷한 건축물이에요. 다만 영빈관과 모스크는 건물 위쪽이 돔 모양이지만, 이 출입문은 인도의 이슬람 건축에서만 볼 수 있는 차토리(돔 모양의 작은 탑)로 장식되어 있어요. 차토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우산을 의미하는데 모양은 둥근 원에 가깝고 크기는 돔보다 작습니다.
제국주의에 의해 훼손된 타지마할
타지마할 건설에 열정을 쏟아 부었던 샤 자한 황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신하들에게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고 해요. 하지만 말년에는 신하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 성에 갇혀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샤 자한 황제가 죽자 아우랑제브 왕은 아버지의 시신을 타지마할 지하 묘소에 안장했고, 황제는 왕비와 함께 타지마할에 잠들게 되었습니다.
타지마할은 처음 완성되었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호화로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화려함 때문에 끊임없이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타지마할에 장식된 값비싼 보석들은 도굴꾼과 침략자들에 의하여 사라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로 영국을 들 수 있어요.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거대한 돔을 장식하고 있던 황금을 모두 떼어내고 그 자리를 구리로 덮었으며, 은으로 된 출입문을 녹여 가져가고 대신 청동 문을 달았어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타지마할은 옛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보석이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박물관과 개인 저택, 문화 공간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타지마할의 위기
타지마할은 요즘 들어 위기를 맞고 있어요. 그것은 다름 아닌 공해 때문입니다. 자동차들이 내뿜는 엄청난 매연과 200여 곳의 주물 공장에서 뿜어내는 공해와 이산화탄소는 지구촌 가족들에게 감동을 전해 줄 타지마할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 건설할 당시 심어놓은 나무들이 크게 자라나 약간이나마 매연으로부터 건물을 지켜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① 인도의 장례 문화
인도는 오랜 역사와 여러 종교와 풍습으로 인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장례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타지마할처럼 화려한 무덤부터 시신을 새들에게 먹이로 주는 조장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시신을 불에 태우는 화장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화장을 하며, 화장하여 나온 유골을 강이나 산에 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를 믿는 일부 불교 신자들은 시신을 독수리의 먹이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힌두교의 장례 문화도 불교와 비슷합니다. 다만 힌두교를 믿는 인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보관하지 않고 3~4시간 뒤 바로 화장을 합니다. 화장으로 나온 유골은 힌두교와 관련된 성스러운 장소에 뿌리고 있습니다. 물론 간디 같은 유명 인사들은 따로 묘지를 만들어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도 합니다.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교도들은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을 하고 있습니다. 매장할 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을 향하도록 하며, 우리나라처럼 봉분을 세우지 않고 관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인도에 사는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들은 아직도 매장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적은 숫자지만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도 조장을 하고 있습니다.

② 아그라 성
무굴 제국은 1526년 세워진 인도 최초의 이슬람 정권입니다.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무굴 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는 수도를 아그라로 옮기면서 군사 시설을 겸비한 왕궁을 지었습니다. 붉은 사암을 이용해 완성한 거대한 건축물의 이름은 아그라 성이었습니다. 아그라 성은 흰 대리석으로 된 건축물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고 있어 ‘붉은 성’이라고도 불립니다.
아그라 성은 전형적인 군사 시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웅장한 2중 벽으로 이루어진 성벽은 한눈에도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의 원형 망루와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난간과 구멍은 전투를 위한 성곽과 똑같습니다.
성곽 내부에 자리한 페르시아풍과 힌두풍이 어우러진 여러 궁전 건물과 모스크는 붉은 사암으로 지은 건축물도 있지만 대부분 타지마할처럼 흰 대리석으로 지어 놓았습니다. 자한기르 궁과 카슈마할 궁, 샤 자한이 감금되었던 무삼만 부르지, 나기나 모스크와 모티 모스크 등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과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는 멋진 건축물입니다.

미나레트 앞의 작은 원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타지마할은 날씨와 바라보는 위치,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변화무쌍한 타지마할을 감상하는 데 적합한 장소는 미나레트 앞입니다. 이곳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작은 원이 있는데, 이 앞에서 바라보는 것이 최고입니다. 다만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 다른 위치에서 보아야 합니다. 오전에는 영빈관을 볼 수 있는 정문 오른쪽 미나레트 앞에서, 오후에는 모스크가 보이는 왼쪽 미나레트 앞에서 보는 것이 좋답니다.
미나레트 입구의 자그마한 원 앞에 서면 타지마할의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하는 거대한 돔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정문과 영빈관, 서쪽 모스크, 기하학적인 모습의 정원, 야무나 강까지도 보인답니다. 한자리에서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타지마할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끼면서 주요 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 있지요.
또한 타지마할과 영빈관, 서쪽 모스크에 장식된 아름답고 우아한 꽃문양과 모자이크, 코란이 새겨진 작품을 감상하기에도 그만입니다. 그리고 보다 자세하게 타지마할의 장식들을 보거나 묘지를 볼 수 있는 묘지 입구까지 금세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