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할머니는 1926년에 태어났다. 너무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특별히 즐거운 기억이나, 조중한 추억 같은 건 거의 없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는 절대적인 순종을 강요할 정도로 엄격해서 진은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다는걸 단 한번도 상상한 적이 없다. 엄마 아빠 앞에만 서면 너무 긴장돼 늘 심장이 쿵쾅댔고, 1초라도 빨리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니, 어린 소녀 진이 사춘기를 맞이해 가장 먼저 생긴 열망이 '독립'이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루 빨리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는것. 하지만 때는 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뒤숭숭하던 시절.
어린 소녀가 독립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결혼이었다.
결혼이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절박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그저 탈출을 위한 목적으로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자신이 꿈꿔왔던 인생의 동반자와는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남편은 매우 엄격하고 딱딱한 사람이었다. 감정 표현은 물론, 자신을 표현하는 일조차도 서툴렀으며, 유머 감각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드러내놓고 불평할 수 있는 크나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도박을 한다거나, 바람을 피운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그런데 그렇게 자로 잰 듯한 성실함이 오히려 진을 더욱 숨 막히게 했다.
그렇게 진은 직장과 집밖에 모르는 재미없는 남편과 40년을 함께 살았다. 단지 살았을 뿐 어떻게 숨 쉬었으며 또 어떻게 그 많은 날들을 보낼 수 있었는지 기억할 것 조차 전무한 황폐한 시간들이었다. 견딘 시간에 대한 보상이엇을까. 그동안 아들, 딸 하나를 낳았으며 어느덧 그들은 성장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열심히 살고 있다.
그 사이 진은 대학에서 일자리를 찾아 '카운슬러'로 일을 시작했다.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고, 수많은 동료들과 친구들을 사귀면서 집 바깥에서 나름대로 사는 재미를 만나기도 했다. 겉으로보기엔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고집불통에 꽉 막힌 사람이긴 했지만 남편은 건강했고, 성실했으며, 아이들은 어느새 시집, 장가를 가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손자 손녀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진은 자신이 내일 모레면 예순이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60이라는 숫자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았어요. 잘못하다가는 평생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겠구나. 평생을 남편 눈치나 보면서, 내 자신을 찾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절박해졌죠. 결국 생일 하루 전, 엄청남 결심을 했어요.
가방을 싸고, 집을 떠나기로 한 거죠."
어느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가방을 싼후, 진은 트렁크를 끌고 거실로 나왔다. 남편은 늘 그랬듯이 신문을 펼쳐들고, 나른한 일요일을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진은 남편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건넸다.
"나, 떠나요."
남편의 눈은 휘둘그레졌다. 하지만 너무 당황해서 그랬는지, 아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말리거나 붙잡지도 않았다. 진 역시 미안하다고 말하거나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곧바로 역으로 달려가 막 떠나려는 기차에 올라탔다.
목적지가 어디냐가 중요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 기차가 멈추는 종착역에서 내렸다. 그곳이 바로 지금까지 진 할머니가 23년 동안 살고 있는 노르위치였다.
"그럴 거면 진작 헤어지지, 왜 예순살까지 버텼어요? 나이에 비해서 너무 용감했던거 아니었나요?"
"맞아요. 너무 무모했죠. 너무 용감했고, 물론 수백 번 수천 번을 망설였어요. 집을 떠나면서도 몇 번이나 돌아보고, 수없이 멈춰서며 다시 돌아갈까도 했고, 역에서도 기차에 올라타기 전에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진을 용감하게 만들어 준 건 역설적으로 바로 그 '나이'였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길목처럼 느껴지는 나이 예순살. 그 나이가 진에게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막 넘기는 나이.
이번만큼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불가능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 노르위치에서 진의 새롭고 흥미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진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작은 아파트를 찾아 보금자리를 꾸렸다. 그리고 그곳에 '상담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어차피 무모하게 시작된 가출, 조금 더 대담해지면 어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보탰다. 그리고 그동안 대학에서 쌓은 상담 경력을 솔직하게 적어넣고,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를 써서 동네 사람들에게 직접 돌리며 홍보를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왔거든요.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바로 다음날, 두명의 이웃이 찾아왔어요. 그리고 소소한 고민을 상담하는 걸 시작으로 상담 치료를 예약하는 환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순식간에 제 상담 치료가 비싼 개인 병원의 상담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입소문이 났고 더이상 먹고 사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죠."
진의 '독립 상담소'가 작은 성공을 거두며, 자연스럽게 여유도 생겼다. 그러자 진은 40년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의 반대로 꿈도 꿀 수 없던 일을 하나둘 시도해보기로 결심했다. 그건 '여행'이었다.
일상을훌훌 털고혼자 떠났다가 돌아오는 진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홀로 미국을 횡단하기도했으며 유럽 여행은 셀 수도 없이 많이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죽이 맞아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여행을 하는 동안 진에게는 특별한 습관이 생겼다. 그건 바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노트를 꺼내들고 끼적이기 시작했다. 사실 어릴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녀였다.
"여행중에는, 신기할 정도로 글이 술술 써졌어요. 여행을 하다보면 의외로 시간 공백이 자주 생기거든요. 예를 들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린다거나, 기차가 예고 없이 연착되거나 하는 ...언제부터인가 레스토랑에서 밥을 시키고 기다리는 시간에 노트부터 펼치게 되더라구요."
그이후 진은 친구에게 시 쓰기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무려 23년 동안 단 하루도 글쓰기를 멈춰본 적이 없단다. 노트에도 쓰고, 컴퓨터에도 쓰고, 혼자 프린트를 해 제본도 하고, 그러면서 진은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졌다.
다른 사람들은 고민이 생기거나, 머릿속이 복잡해 정리가 안 될 때마다 진에게 자신의 골칫덩이들을 들고 찾아오지만 진은 그럴때마다 글을 썼다.
"언제부터인가 글쓰기는 제 삶에 있어 더 없이 좋은 치유이자, 안식이 되었어요."
그렇게 '자신만의 치유'로써 글쓰기를 해오던 진에게 작년 어느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썼던 시를 모아 시집을 내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진이 여든한 살이 되던 해, 다시는 그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이에 시인으로 데뷔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진은 4년전, 상담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일흔여덟 살이 되던 해였다.
사실 육십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언제 은퇴를 할 거냐고 노래를 불렀다. 그럴때마다 진은 '계단 올라갈 힘이 남아 있을때까진 할거야'라고 대답했다. 근데 일흔 여덟 살이 되는 해 어느날, 계단을 올라가는데 정말 숨이 가빠오고, 다리에 힘이 스르륵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일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은퇴를 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을 손에 잡은것, 친구들을 집에 불러 함께 시를 쓰고, 낭독하는 '시 낭독회'를 한 달에 한 번씩 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번 달에 행사를 끝내고 뒤돌아서면 금방 다음 달 낭독회를 준비해야 하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 빠졌다. 낭독회가 쌓이면서 1년에 3번 정도는 이웃들을 초대하는 '문학의 밤을 열게 되었으며 그러다보니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원래 넓었던 인간관계는 훨씬 더 확장되었고 이제 진은 그 친구들의 사적인 상담가가 되었다. 직업으로 운영하던 상담소는 문을 닫은 지 오래지만, 친구들은 늘 무슨 일만 생기면 진에게 연락해서 상의한다.
그렇게 살다보니 매일매일이 너무 바빠서 몇 년 동안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도 한번 못 가봤다. 그나마 작년에는 틈을 내서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춤 축제에 참가했었다. 이 축제는 프로페셔널들의 춤을 감상하는 축제가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춤을 배우고 함께 추며 즐기는 행사였다.
그 행사를 통해 진은 모든 사람은 춤을 출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갖고 표현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춤은 몸매가 좋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사람들만 추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인생을 춤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가슴 떨리도록 낭만적으로 느껴졌어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도 있고, 글로 쓸 수도 있지만, 몸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건'을 만나게 된 이후 늘 춤을 춰요.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10분씩 매일 기분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만의 의식을 치른 뒤에야 하루를 시작합니다."
홀로 여행하고, 시를 쓰고, 춤을 추는 할머니. 젊은 사람들과 농담 따먹기를 즐기고 파티를 여느라 바쁜 와중에도,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귀를 기울여주는,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선의 방식으로 위로와 위안을 주는 이 할머니.
독립을 하고 혼자 힘으로 세상에 선 예순 살부터 진은 진정으로 행복해졌고, 인생의 최고점에 올랐다.
"제가 이렇게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제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도 몰랐고요."
진 할머니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바라는 건 예순부터 그렇게 살아왔듯이 죽을 때까지 이렇게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는 거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쭉 살다가 죽는게 꿈이란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면서도 외롭재 않은....어쩐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노후가 아닐까.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한 나이에 용기를 내어 인생을 개척한 진 할머니는 '만인이 원하는 노후'의 백만불짜리 샘플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댓글 늦었다고 생각한 나이에 용기를 내어 인생을 개척한 진 할머니.
이 글을 읽으며 요즘의 저를 생각해봅니다.
용기와 시도.
그것 참 쉽지 않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하기 힘든 것이 저지르는 일이지요.
때로는 단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뒤를 재지 않고 저질러 버리면 또 길이 있음을 알면서도 소심해서 그러지 못합니다.
진 할머니는 예순을 코앞에 두고 벌인 일이니 아직 쉰도 되지 않은 저에게는 희망적입니다.
독립보다는 더 자유롭고 다복한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나아가 보렵니다.
박 선생님, 우리 기운 냅시다. ^^
희자샘은 이대로 쭈욱 가면 됩니다. 옆도 뒤도 돌아볼 필요가 없지요.
진 할머니보다 이십 년이 앞섰으니 천천히 여유롭게 앞으로 나아가세요.
정말로 만인이 원하는 노후 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동조쌤, 희자쌤.... 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마음 바뀌면 안 되는데, 꼬부랑 할머니를 그때도 기억할까.
혹 문서로 남길 의향은 없으시나요?
옥례샘은 진 할머니보다 몇 배 잘 살 것 같은 예감!
사무실을 내고, 청소를 하고 비품 정리를하고 오늘 땀을 콩죽같이 흘렸습니다.
물론 혼자 한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질러 보았습니다.
예순, 내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길 일 뿐이라고 ........
진 할머니처럼 늘 꿈의 기차를 타고 달립니다.
어머! 축하해요. 뭔 사무실일까 상상해봅니다.
가까운 곳이라면 가서 도와 드렸을 텐데요.
굳세고 밝은 모습 늘 간직하기를!
사랑해요. 그리고 대박나세요.
탈출이라 믿었던 결혼이 완벽한 남편이라는 둥지에서 지친 진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저려옴을 느꼈습니다.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전하는 진할머니의 정신에 저도 더욱 열심히 살아겠습니다. 잠시 진할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인형의 집을 읽으셨는지요?
여인들의 삶을 면면이 들여다보면 노라로 살아온 사람이 참 많을 겁니다.
진 할머니는 용기 있는 여인입니다.
수십 년이나 꾸려왔던 인생을 어떻게 박찼을까요?
저는 늘 탈출을 꿈꾸다 이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미애님!
감사합니다. 건필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