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니까.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이 주말에 집에 온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며칠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덧 2년이 넘어간다.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아서 고마울 뿐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한참 못 봤더니 보고 싶었는데 집에 온다고 하니 마구 행복지수가 높아집니다.
주말에 고추랑 오이랑 호박을 심으러 시골에 가기로 했는데 아들이 온다고 하니 남편 혼자서 가야 합니다. 아들이 5일 정도 휴가를 받아서 오는데 시골 다녀와서 봐도 되는 게 아니냐고 내 눈치를 봅니다. “아버지는 그래도 되는데, 엄마는 안 그래요.” 단호하게 내 생각을 말했습니다. 아들이 군에 있을 때도 아들이 휴가를 오거나 외박을 오면 어떤 일정도 잡지 않았습니다.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아들이 우선이었습니다. 군에 있을 때는 마음이 더 짠해서 아들이 부대로 복귀할 때까지 집에서 있었습니다. 아들이야 친구 만난다고 나가서 새벽에 들어와도 아니면 외박해도 엄마는 집을 지켰습니다. 아들은 그래도 되고,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지만, 말이 되는 규칙입니다.
서울살이가 왜 힘들지 않겠는가? 처음 해보는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말을 안 해도 다 압니다. 힘들면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라고 합니다. 모처럼 휴가받아서 오는데 엄마가 없으면 얼마나 허전할까? 나이가 들어도 친정집에 가면 엄마가 기다려주길 바라고 엄마가 혹여 급한 일로 잠시 외출하셨어도 집이 텅 빈 것 같아서 짐도 풀도 않고 언제 오냐고 오실 때까지 전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젖도 안 먹는데 엄마를 왜 그렇게 찾아’하시던 엄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된 나는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 아들이 오면 반갑게 현관문을 열고 따스하게 안아주며 반겨주는 엄마로 살고 싶습니다.
남편 혼자 시골로 갔습니다. 하양 시장에서 매운 고추 10포기, 안 매운 고추 4포기, 오이 3포기 큰 토마토 4포기를 사 왔습니다. 모종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텃밭에 심으려고 서너 포기에서 스무 포기 정도 모종을 사 갔습니다. 구경하는 것만도 흥미로웠습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혼자 킥킥 웃었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틀간 먹을 것을 준비해서 얼음 가방에 넣었습니다. 간식으로 시장에서 사 온 쑥떡과 과일과 세끼 정도의 밥을 바로 지어서 도시락에 넣었습니다. 시골에서 남편 혼자 일을 하면 밥 먹는 것을 거르기 일쑤입니다. 주말부부로 살면서 밥해 먹고 사는 것이 이골이 난 사람인데 시골집에 내려가면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먹기가 귀찮다고 일만 하다 오곤 했습니다. 일할 때는 먹으면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한 끼 잘 먹고 오면 다행이라고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어쩔 아들? ‘아들이 오시는데 엄마가 어쩔 거냐고’ 요샛말로 ‘어쩔 아들’입니다.
아들이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설에 보았을 때보다 살이 빠진 듯했습니다. 체중 조절 때문에 운동한다고 합니다. 생태계 연구 분야에서 일을 하니까 현장 출장을 자주 나가니까 얼굴이 까맣게 타서 건강해 보였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꾸준히 운동하고 잘 먹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면 됩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북채 요리했습니다. 검은콩 넣은 밥을 좋아합니다. 아들 둘과 함께 둘러앉아 오랜만에 식사했습니다. 아들만 둘이고 남편까지 남자들 속에서 공주처럼 살아가는 삶이 고맙고 행복합니다. 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는 딸이 없으니 모르겠는데 아들만 둘 있으니 든든합니다. 여자가 엄마 혼자이니 여자를 귀하게 여기고 무엇이든 ‘힘든 일은 우리가 다 한다.’ 주의입니다. 우리 집 남자들은 여자는 예쁘고 귀한 존재이며 약하니까 무조건 아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0년이 넘도록 늑대 소굴에서 살고 있어도 아직도 착하고 예쁜 엄마로 살아갑니다. 김수현보다 잘생긴 아들과 손석구보다 섹시한 남편이랑 오늘도 오순도순 살아갑니다. - 2024년4월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