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발자국 소리
(마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울상입니다. 물에 잠기고 쓸려내려 가는 농작물을 보면서 농민들은 자식 잃은 것 같은 아픔과 슬픔을 느낍니다. 밭을 갈아엎고 씨 뿌려 돌보던 일 년 농사를 망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홍수, 가뭄, 병충해로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농사를 가리켜 ‘벤처사업’이라고도 합니다. 위험 산업이라는 것입니다. 기후 위기는 농민과 어민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합니다. 나는 아직 피해가 없다고 안심하며 즐길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함께 사는 공동체이기에 서로를 생각하며 기후 위기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장마가 지나면 논밭에는 풀이 무성합니다. 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병충해도 많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더운 날 농사일은 목숨을 거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옛말에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가 자주 밭을 둘러보며 가꿀 때 곡식은 잘 자라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무관심한 농부가 되면 곡식은 잡초에 둘러싸여 자라지 못하고 말라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가 좋은 밭에 떨어지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둔다’고 말씀하십니다. (13:8) 그러나 좋은 밭에 떨어져 있다고 저절로 자라고,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는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시면서 농부가 잠잘 때 그 원수가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려놓는다고 하십니다. 좋은 씨를 좋은 밭에 뿌려놓고 돌보지 않으면 잡초 때문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틈틈이 밭에 나가 물을 주고 잡초를 뽑으며 돌보듯이 하나님 나라도 힘을 다해 신앙훈련을 하며 자기 삶을 가꾸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끔 게으른 농부는 매일 곡식을 돌보지 않고 잡초가 많아지면 농약을 뿌려 제거하려고 합니다. 물론 농약을 치면 잡초는 제거할 수 있지만, 땅도 함께 죽어갑니다. 다음 해에는 좋은 땅이 아니라 나쁜 땅이 되고, 먹지 못할 곡식만 얻게 됩니다. 그래서 곡식을 기를 때는 매일매일 밭에 나가 살피고 가꾸어야 합니다. 곡식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쑥쑥 자라겠지요.
어쩌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오해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 믿기로 했으니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축복 받는 일만 남았어.’ 믿기만 하면 저절로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는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좋은 씨를 뿌렸으니 가을에 풍성한 알곡을 수확하게 될 것이라고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비유에서 ‘농부가 잘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려놓고 갔다’고 하십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함께 자랄 것입니다. 그리고 잡초는 그 생명력이 강해 곡식보다 더 빨리 무성하게 자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뿌려놓았지만 돌보지 않으면 가라지만 무성한 밭이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삶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고통을 주시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믿는 이들의 고난은 욥기가 쓰여진 시대에도 의문이었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욥의 친구들이 ‘죄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결론을 내리듯이 죄 때문에 내가 고난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유에서 농부의 죄 때문에 가라지가 밭에 뿌려진 것이 아니라 원수가 뿌려놓았습니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죄 때문에 고난당하기보다 원하지 않는 고난과 시련이 많습니다. 물론 욕심, 교만, 어리석음으로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해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때문에 미움과 박해를 당하고,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신앙의 가치관으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고, 뜻밖의 사건이나 사고로 고통을 겪을 때는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며 원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오해를 풀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 중에는 ‘신앙’ 때문에 당하는 것은 아주 적은 것입니다. 옛날처럼 박해를 받는 것도 아니고 신앙으로 갈등을 겪는 일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정죄하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은 모든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믿음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당한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밭에 좋은 씨가 뿌려지면 좋은 씨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함께 자란다고 하십니다. 예수 믿으면 좋은 일만 가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어려운 일도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농부들이 가라지가 자라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묻습니다. ‘가라지를 뽑을까요?’ 곡식이 잘 자라도록 가라지나 잡초를 뽑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가만 두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주인은 수확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좋은 씨가 자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도 더 강한 생명력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에 비유하자면, 좋은 신앙은 어떤 시련과 박해와 고난을 당할지라도 끝내 믿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 낙심하고, 좌절하면 좋은 신앙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직 어린 신앙이겠지요. 어린 신앙에 대해서는 성령께서 돌보아주시고, 성도들이 농부가 되어 잘 자라도록 보살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난에 대해 고백하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견디고,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셔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데 알곡이 기운이 있어 가라지를 이기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가라지의 힘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그 힘은 하나님 나라의 곳간에 들어가는 희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가라지는 불태워지고 알곡은 곳간에 들여지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끝까지 싸워 이기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 8:18)고 하십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에게서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을 믿음의 확실한 증거로 삼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예수 믿으면 고난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 우리 삶에도 은혜와 고난이 함께합니다. 우리는 고난과 시련을 피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믿음의 열매를 맺는 성실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주님의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을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서 갈아엎어 좋은 땅으로 만든 밭이고, 주님의 말씀이라는 좋은 씨가 떨어진 밭입니다. 복음의 씨앗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성장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마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려놓을 것입니다. 세상 살면서 유혹도 받고 욕심도 부리고, 교만하여 가라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가 ‘잘 때’ 가라지를 뿌려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연단하는 것입니다. 연단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 고난과 시련의 삶이 함께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평화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날을 소망하며 하루하루 농부가 곡식을 돌보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가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