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문화원 제94회 아카데미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시 낭송
거창문화원
제94회 아카데미
태평가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속 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는 이리 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거짓말 잘하면 소용있나 진정을 다한들 쓸데있나
한번 속아 울어 봤으니 다시는 속지 않으리라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는 이리 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꽃을 찾는 벌 나비는 향기를 좇아 날아 들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 사이로 왕래한다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는 이리 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사회: 백승용 사무국장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임진왜란 의병도대장이셨던 김면장군에 대한 이야기로, 우두령, 우척현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김면장군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남재 김재호 김면장군 후원회에 계시는 그 분이 오늘 오셔서 시 낭송을 듣기로 하고, 먼저 그분에 대해서 원장님의 소개를 듣기로 하겠습니다.
이종천 문화원장
오늘 강의를 듣기 전에 방금 국장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병도대장 김면장군의 애송시를 낭송하기로 되어 있는데, 오늘 낭송하실 분은 김면장군님의 후예이신데 이 선생님이 국회 애국시 대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김면장군 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면장군 하면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1592년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왜군들이 부산 영도에 침입을 해서 서울 평양에 20일만에 평양까지 점령을 했는데 그 때 왜군이 올라 갔는데도 영남 지방을 장악하지 못해 그 당시 진주를 통해서 전라도로 침입하려 했는데도 진주 전라도는 이순신 장군에 막혀 들어가지 못했는데 의령 쪽은 곽재우에 막히고 낙동강변에는 김면장군에 막혀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군들이 전쟁을 치루려면 전라도 곡창지역을 점령해야 하는데, 김천에서 우두령을 통해 거창을 넘어서 전라도로 가고 해인사로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 것을 미리 알고 김면장군이 우두령에 그 당시는 우척현 협곡에다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일본 왜군 장수 고바야카와 다카가게 가 1500명을 거느리고 달밤에 가마타고 의기양양하게 넘어 오는데 그 협곡을 김면장군이 덮쳐서 모두 척결을 했습니다.
만약 그 때 김면장군이 이를 막지 못했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정도로 중요한 큰 공을 세운 전투였습니다.
그럼 김면 장군은 어떤 분이시냐? 하면 이 분은 경북 고령 분이신데 만석꾼입니다
만석을 몽땅 의병을 모우는데 다 쓰시고 자기 집에는 쌀 한톨 남기지 않아 가족들은 문전걸식을 해도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어른이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나라 있는 줄 알았지 내 몸 있는 줄 몰랐다”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 가셨는데, 그런 훌륭한 어른이 우리 거창 우두령에서 공을 세우셨는데 그 때 그분과 같이 그 밑에 우리 지역에 많은 의병들이 문위, 윤경남, 변혼, 정용등이 많은 분들이 동조를 해서 참전해서 이 지역을 지켰습니다.
그 분이 고향이 고령이라 우리는 몰랐는데, 지난해 9월 9일에 우척현에 전적비를 세웠는데, 앞으로 성역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 성역화하는 그 주역 남재 선생입니다.
그 주역인 남재 김재호 선생이 이 시를 짓고 낭송하였는데 그 시를 약 5분간 듣기로 하겠습니다.
김재호 선생을 박수로 맞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424년전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의병을 총 지휘한 의병도대장 김면 장군조차 역사 속에 묻혀 있다니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아래 의병좌장을 맡은 사람은 홍의장군 곽재우였고,
의병우장은 1612년 광해군 4년부터 1623년 광해군 15년까지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한 바 있는 정인홍이었다.
그런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조차 역사 속에 묻혀 있다면
임진왜란을 통해 보여 준 우리 선조들의 창의정신과 선비정신은
도대체 누가 어디서 무엇을 기리고 있단 말인가
의병장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의병도대장 김면장군조차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이 현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사학자 정만진 作
의병도대장 김면 장군
때는 임진壬辰 1592년 4월 13일
포악 무도한 왜구들이 부산을 침탈할 제
남명 · 퇴계 양문에서 수학하신 송암松菴 김면金沔선생께서
분연히 일어나 창의倡義하시고,
만여석萬余石 재산을 군비에 충당하셨다.
좌장 곽재우, 우장 정인홍, 선봉장 김홍한장군
그리고 8인의 친족의사
의병장으로 현풍 곽준, 함양 조종도, 고령 박정번
거창출신 의병장 선무원종일등공신 김홍원 장군
참모장 서기 문위, 윤경남, 유중룡
선봉장 변혼, 돌격장 정용 군관 장응린, 박이장
기병유사에 정유명, 성팽년, 김경근
그리고 변희황, 신수, 오희남, 오명상, 전팔고 전팔급 형제
나라가 위태롭고 국왕이 파천播遷하니
‘君有急而臣不死면 烏在其讀聖人書也’라
‘군유급이신불사 오재기독성인서야’
나라가 위급한데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
어찌 성현의 글을 읽었다 하리오
무계茂溪에서 승첩. 합천군수로 제수되시니 교서에
揚兵鼎津則遁賊褫魄하고 接刃茂溪則流屍混江이라
양병정진즉둔적치백 접인무계즉유시혼강
정진을 들이치니 달아나는 적이 혼을 잃었고,
무계에서 칼을 휘두러니 적의 시체가 강을 덮었다
함안咸安 죽현竹峴, 의령宜寧 마진馬津,
고령高靈 개산포開山浦거쳐 성주성星州城을 탈환하고
거창居昌 우척현牛脊峴과 사랑암沙郞岩전투에서 적을 쳐부순 후
돌격으로 김천金泉 지례知禮 적을 섬멸하였다.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관官·의병義兵 통솔하여
금산金山의 적을 토벌. 호남 곡창지역으로 침투하려는
적의 야욕을 분쇄하였고, 도망가는 선산善山 적을 치려던 중
과로過勞로 병을 얻어
진중陣中에서 순국하셨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국왕이 애통하여 예관을 보내 치제致祭하시고.
병조판서에 추증追贈, 선무원종일등공신에 녹훈錄勳. 정헌대부이조판서로 가증加贈되셨다.
‘只知有國 不知有身’
‘지지유국 부지유신’
오직 나라있는 줄만 알았지 내몸 있는 줄 몰랐다는
의병도대장 송암 김면 선생의 우국충정憂國衷情 충의지심忠義之心
거룩하신 선비정신은 영원히 우리 겨례의 사표師表가 되리라
을미乙未 납월臘月 29日 남재南齋 근서謹書
가정의학과 전문의 서울 ND의원 박민수 원장
이종천 거창문화원장, 박민수 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