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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부
싸이리무 호수
*우루무치에 도착하여 이틀 간 머물렀다. 그리고 여행 끝날 무렵 또 사흘을 더 머물러 모두 닷새동안 우루무치에 머물렀다. 우루무치 이야기는 한데 묶어 본 시리즈 끝 부분에 언급할 예정이다.
8월 4일이다. 우리가 8월 14일 귀국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우리의 여정은 열흘 남은 셈이다. 여행은 지금부터일텐데, 왜 그런지 "이제 여행도 끝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단 여정의 반이 지나면 시간은 가속도를 붙여서 쉭쉭 지나가기 마련이고, 심적으로 조급해지고 뭔가 쫒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때로는 허적거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좀 과장하면 인생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호텔 주변에는 아까부터 무장 경찰 다섯 명이 서로 등을 대고 사방을 조준하며 마치 괴한이라도 잡을 듯한 기세다. 베이징 올림픽이 있었을 때, 무장 봉기가 있었던 바로 그 우루무치에 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실 우루무치 하면 전에는 왜 그런지 무식한 일꾼 같은 생각이 떠 올랐었는데, 이제는 "공중 납치, 공포 정치" 이런 단어가 떠 오른다. 아이구, "오이 김치"도 집어 넣어야겠네.
9시에 싸이리무 호수( 赛里木湖 - 새리목호)를 향해 출발했다. 싸이리무라는 말은 몽골어로 "산등성이에 위치한 호수"라는 뜻이라고 한다. 천산(天)山에 위치한 타원형의 호수인데, 호수가 위치한 해발은 2,073m, 면적 457㎢, 최대 수심이 86m라는 바다 같은 호수다. 실제 그곳 사람들은 그곳을 바다라고 여겨서 싼타이하이쯔(三台海子-삼태해자)라고 한다고 한다.
(우루무치 시내를 출발한다)
(드디어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출퇴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별 체증 없이 시내를 돌고 돌아, 고속 도로에 진입했다. 오늘 가야할 거리는 대체로 약 500-600키로,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감을 잡았다는 듯, 두 사람이 버스 바닥에 누웠다. 사람들이 무슨 동네 불이라도 난 듯 구경한다. 구경하다가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기까지 한다. 누운 사람들은 세상만사 이보다 편할 수는 없다고 한 마디 한다. 정말 그럴까? 버스가 휘청거릴 때마다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일텐데. 두고 볼 일이다.
얼마를 지났을까 모두들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모두들 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행 중에 부채도사가 있었는데, 오늘 어디로 머리를 돌려야 재수가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백 번을 물어도 부채는 오른쪽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믿건 말건, 본래 나는 내가 한 말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무책임한 작자이다. 사실을 따지려면 원조인 장두석씨에게 물어보라. 물어볼 때는 "실례, 실례 합니다."라고 먼저 말을 해야 하며, "실례, 실례 하세요."라고 응답하면 점괘가 잘 나온다는 뜻이다.
(자동차 시트에 쓰여진 글씨는 金龍客車인데 간체로 쓰여서 이상하게 보인다.)
(창 밖의 모습)
창밖에 보이는 것은 옥수수, 목화, 그리고 해바라기뿐이다. 아무리 가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버스 기사인 마씨는 서서히 시장기기 도는지 앞 창문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꽈배기를 물어 뜯기 시작했다. 중국 꽈배기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잘 뜯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시골 개가 검정 고무신짝 물고 늘어지듯 인상을 써가며 뜯어 먹는 것이 애처롭게 보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운전 중 플라스틱 병에 들은 물도 뚜껑을 열어 마셨다. 그러다가 핸드폰 전화가 오면, 능숙하게 물병과 핸들을 한 손에 잡고,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받으면서 "왜?"라고 말했다.
(마 기사님: 이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함께 했다.)
점점 사막 지대에 가까이 온 것 같다. 창밖에 보이는 개울물이 흙탕물이다 못해, 시멘트 물 같다. 아마 상류에 오랜만에 비가 많이 온 것 같다.
12시가 좀 넘어서 어떤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 문제도 있고 해서, 좀더 일찍 휴게소에 들렸어야 하는데, 우리 기사님은 무조건 가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듯 했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언젠가는 베트남에서 5 시간을 쉬지 않고 간 적도 있다. 정말 그때는 죽는 줄 알았었다.
휴게소는 조그만 슈퍼가 있는 빈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옥수수를 샀다. 모든 사람에게 한 개에 3 위엔에 팔았는데, 한 사람에게는 유난히 5 위엔을 내라고 했다. 그 옥수수가 다른 것과는 달리 품질이 좋은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해 보였다. 결국 그 옥수수는 손님의 손에 들려졌다가 환불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나는 캔 커피도 하나 샀다. 찬 것 있느냐고 물었다. "삥전더 요우마?"다. 아내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 뜻을 알더니, 그 후로 언제 어디서건 슈퍼에 갈 때마다, 쥬스를 사건 물을 사건, 아내는 항상 "삥전더 요우마?"라고 마기사 꽈배기 물어 뜯듯이 물어댔다.
(점심을 먹은 우타이)
4시 반쯤 위 지도에 나온 우타이(五台-오태)에 도착했다. 내가 태어난 곳이 충남 금산에 있는 삼태리인데 지도상 오태리가 먼저 나오고 조금 가면 사태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아마 실제로 이곳에도 삼태리가 있을 것 같다.
우타이는 석양의 무법자에 나오는 세트장과 흡사했다. 사람들이 살다가 모두 떠난 듯 빈집이 한 집 건너 있었다. 아무나 지나가다가 건물에 발길질을 해대고 돌팔매를 던졌던 것으로 보였다. 그것 뿐이랴. 아무데나 방뇨를 하고 아무데나 휴지를 버리는 곳으로 보였다.
하지만 조금 걸어가면 아름다운 목화밭이 펼쳐져 있었다. 흙 속에 묻혀진 진주라고나 할까? 어렸을 때 보고 처음 보는 목화에 한 동안 넋이 나갔다. 그래, 어렸을 때는 배가 고파서 목화의 열매를 따 먹었었지. 아마 익지 않은 목화를 "다래"라고 불렀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래를 먹기에는 이미 나는 너무 "세속화, 도시화, 몰지각화" 되어 있었다. 저 목화가 옷감으로 짜여져서 한국에 들여 올 것이다. 우리는 싼게 비지떡이라고 여기며 "중국제"인데 하며 우습게 보아 넘길 것이다. 내가 입는 중국산 내의는 바로 저 땅에서 나온 바로 이 밭 주인의 "피와 땀"의 결과임을 내 이전에 어떻게 알았겠는가? 내가 먹는 밥, 내가 입는 옷, 내가 쓰는 종이 한 장은 모두 그렇게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타이 마을 근처에 있는 목화밭)
우타이 식당에서 먹은 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빵 또한 맛있었다. 물 또한 맛있었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아이들 또한 순수했었다. K는 아이들 사진을 찍고 아이들에게 사탕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번져가더니 이어 미소가 뒤따라 왔다.
"싸이리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모두 잠에서 깼다. 버스는 이미 싸이리무 호수에 도착해 있었다. 시계를 보니 6시 반이다. 끝없이 펼쳐진 싸이리무호! 물은 맑고 찼다. 모두들 손을 담가보고 발을 담가보고 세수를 했다. 이 맑은 물에 세수를 해도 되는지 죄책감이 들었다. "푸른 하늘에 편지를 써"라는 노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숙여 푸른 물을 바라 보았다. 웬 늙은이가 이빨을 들어내어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늙은이는 그 푸른 물에 "그래, 나는 네가 좋아."라고 썼다.
(싸이리무 호수다)
(호수에 있는 사당)
호수에 있는 작은 섬에는 룽왕먀오(龙王庙), 징하이사(靖海寺) 등의 사당이 있다. 두 아이가 와서 자꾸 "치마, 치마"라고 한다. 치마를 입으면 안된다는 뜻인지, 치마를 입으라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가 건네 준 사탕 하나씩을 받은 아이들은 신기하게 그 사탕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치마"라는 말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치마란 사탕이란 뜻임에 틀림없다. *치마(骑马): "말타시오."
목적지인 몽고빠오로 가려면 호수를 끼고 몇 십분을 더 달려야 한다. 아스팔트 길이 먼지 길로 이어진다. 보통 트럭의 몇 배나 되는 큰 차들이 짐을 가득 싣고 황소 개구리처럼 묵묵히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왼쪽으로는 목장이 펼쳐져 있고, 오른 쪽으로는 호수가 있다. 양떼가 풀을 뜯다가 물을 먹다가 한다.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이 막대기를 바쁘게 움직인다. 남산 목장의 양떼가 생각났다. 같은 양이어도 이들의 팔자는 이렇게 다르다.
(목적지 근처)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일행은 공놀이를 한다고 산으로 올라갔다. 위에 평평한 곳이 있다는 것이다. 목적지 몽고빠오에 짐을 풀고 그 주위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물가에 한 아이가 울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뭐라고 소리쳤다. 아마 울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울어댔다. 갑자기 성질을 내던 아버지는 호숫가로 와서 우는 아이의 귓방망이 한 대 날렸다. 아이는 더 울고, 아버지는 또 한 방 날리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바라보고, 지나가던 개도 바라보았다. 결국 이 아이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 하게 되었다. 그래도 호수 속으로는 아니니, 안심하시길.
그 옆에는 조그만 돌 위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은 마부다. 엄마가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꼬마가 바라본다. 꼬마는 역시 바지 가랭이가 터진 옷을 입고 있다. 한참 호숫가를 바라보던 꼬마는 엄마의 손에 무심결에 이끌려 또 어딘가로 당나귀 끌려가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호숫가에 이상한 동물이 있었는데, 말도 아니고 당나귀도 아니고, 노새도 아닌 동물이었다. 사람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안장에 앉아보고 사진 찍는데 사용되는 동물이었다. 옆에는 싸이리무 호임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현재 고도가 해발 2079미터라고 써 있다.
끝 없이 펼쳐진 호숫가를 걸어 보았다. 호수라기 보다는 거대한 바다다. 호수가 크다보니 물결 또한 파도를 이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를 멈추고 내려와서 소리 한 번 지르고, 손으로 물을 들어 올려 하늘에 뿌린다. 양떼가 와서 물을 먹더니, 말 몇 마리가 와서 물 먹고 간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토끼가 와서 먹고 간다는 동요가 생각난다. 바람은 서늘하다 못해 차기까지 하다. 아마 호수의 냉기를 품은 바람일 것이다. 걷다가 걷다가 물을 만지다 만지다, 만들어지지 않는 물 수제비를 띄워보았다.
몽고빠오 주인은 잡은 양을 요리하고 있었다. 칼로 가죽을 벗기면 옆에서 아주머니가 토막을 냈다.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새댁이 트루판에서 보았던 쇠창살에 고기를 꿰고 있었다. 우리 같으면 고기를 꿸 때 가끔 파도 들어가고 은행알도 들어가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중간중간에 양의 비계를 섞어 넣었다.
일부는 끓였다. 흰 거품을 걷어내고 걷어낸다. 그러다가 가진 양념을 넣고 볶는 듯 했다. 어두운 밤 하늘로 고기 볶는 김이 치솟더니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을 감싸고 다시 하늘로 솟는다. 바라보는 한국인의 목구멍에서 침넘어가는 소리 싸이리무 호수에 번진다. 며느리는 최종 마무리된 음식을 여러 접시에 담더니 시아버지로 보이는 주인에게 갖다 바친다. 한국인 한 사람이 말했다. "이상하네. 남자만 먹고 여자는 안 먹네."
내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포함한 남자들이 밥을 먹으면, 여자들은 그 옆에 방바닦에서 먹는둥 마는 둥 한다. 그러다가 남자들의 식사가 끝나면 밥상을 들고 가서 부엌에서 펑퍼짐하게 앉아서 마냥 먹어 댔었다. 너무 먹다가 할아버지에게 들키는 날에는 "밥만 쳐먹고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내가 그런 시대에 살았다. 그런 시대에 살아온 사람이 이 머나먼 중국의 서쪽 끝, 싸이리무 호수에서 카자흐스탄 사람이 요리하는 것을 바라본다. 내가 어렸을 때 50년 뒤에 내가 이런 경험을 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내 팔자가 이렇다! 내 팔자라니! 신이고 귀신이고 앞날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빵을 굽는데, 아래쪽에서 불이 올라오고 위에다가 다시 불을 넣어서 양쪽에서 빵이 구워지게 한다. 정말 맛있는 빵이다. 주인이 조금 주어서 먹어봤다. 저 빵을 좀 사가지고 갔으면 좋겠다고 누가 말한다. 그러나 옆에 있던 사람이 이를 말린다. 욕망은 간절하나 만약 그렇다면 저들은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고 한다. 하여튼 제빵왕 김탁구는 어디가서 무엇하나? 탁구는 그만치고 빨리 와서 제빵 기술을 배워가야 할 터인데....
그때 검은 구름을 뚫고 마지막 햇빛이 산 정상에 훤히 비친다. 모두들 환호성을 울리며 산을 바라본다. 마치 예수가 재림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더니 채 3분이 지나지 않아 이런 기적은 스스로 모습을 감췄다.
정신을 차린 우리도 본격적으로 지지고, 볶고, 끓이고, 무쳤다. 우리 팀 중에는 사실 요리사도 있었고,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요리 솜씨를 뺨칠 정도였다. 아래 사진을 봐라. A: 그 누구의 침이 넘어가지 않겠는가? B: 카자흐스탄 사람. 정답이다. 그들은 물끄러미 요리하는 것을 바라보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돌아갔다. 시뻘건 고춧가루 국물이 놀라웠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산으로 올라갔다. 몇 사람의 원주민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젊은이 몇 명도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사람이 또 올라와서 무슨 말을 하더니, 모든 사람이 황급히 아래로 사라졌다. 무슨 일인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저 궁금할 뿐. 추측컨대, 혹시 말에서 사람이 떨어져 다치지 않았을까?
(다음 날 아침 산 위에 올라가 한 바퀴 돌다가 찍었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꽃이 피기 까지는 오래 기다렸어도 (이태수 "그대, 꽃잎 속의")
그러나 어이 하리. 꽃잎이 머물던 자리는 여전할지언정, 인간이 머물던 자리는 쓰레기뿐이다. 언젠가 지구과학을 전공한 친구로부터 들었다. 지구의 입장으로는 인간은 가장 악독한 독버섯이라고. 인간이 없는 지구를 상상해보자. 푸르름만 있는 자연 그 자체일 것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 지구를 파괴한다. 그러나 지구 자체가 병들어 가고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인간이, 무슨 수로 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손톱 밑에 가시든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고 했다. 이제 이곳을 지나는 도로가 완성되고 사람들이 지금보다 몇 배로 더 몰려들면, 저 맑고 푸른 싸이리무호도 자정의 기능을 상실하고 죽음의 호수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 자연보호는 더 이상 자연 보호가 아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모두의 보호인 것이다.
(쓰레기 천지인 호숫가)
(쓰레기가 나뒹군다.)
(2010년 8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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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나 상세한 설명 잘 읽었습니다. 여행 전엔 공부도 안했다가 덕분에 지금 더 많이 알고 공부하는 것 같아요. 버스 사진에서 흠칫 했는데 바닥에서 잠 잘 잤습니다. ㅎㅎ
저 초원 한가운데서 식사하실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정구씨의 큰 코펠은 실크로드에도 갔군...대나무 저분(젓가락)들도 낯이 익네...투어인케이씨의 인기작가
곽샘의 작품...읽을수 있어 영광입니다...감사...또 감사...
쑹판말트레킹에서는 쓰레기 스스로 다 치우던데...얼마후면 그들도 알게 되겠지요.
안녕하세요.
아, 그러시군요.
저도 힘들기는 했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지웠습니다.
저의 글도 이것을 마지막으로 여기에 올리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남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다 좋았는데, 마지막에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는 부분이 가슴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