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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개요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도면상으로 정복한 것이요, 바로 다음 책인 사사기는 실제로 정복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이 드디어 성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셨으며, 이제는 가나안 민족들을 몰아내고 그 땅에 이스라엘이 거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큰 스캔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폭력을 조장하시고, 인종청소를 명하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서구제국주의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인종청소한 것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가나안 민족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측면이 강합니다. 과거에 유다가 가나안의 죄악에 물들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창 38장).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군사력을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이 형편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약속의 땅을 차지해 누리게 하십니다. ‘오직 행위’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예수(히브리어 여호수아에 해당하는 아람어임)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마귀와 죄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여호수아 1장
모세가 죽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약속의 땅을 정복하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수아를 대적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모세와 함께 하셨듯이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이 너무나 과중한 사명이었기에 크게 번민하고 있었던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명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은 일반적인 격려가 아니라 직분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힘주심과 위로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해서 여호수아가 마음대로 행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오직 모세가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해야 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절). 그래야만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율법에 순종해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원리입니다. 율법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환히 비춰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약속받은 여호수아가 명령합니다. 사흘 후면 가나안땅으로 진군할 것이기에 준비하라고 합니다. 양식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편 땅을 이미 차지한 지파들에게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에 동참할 것을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안식을 주셨기에 다른 지파들도 안식을 얻는 것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절). 이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에게 이미 약속했듯이 여호수아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들은 도리어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기원합니다. 약속의 땅이 눈앞에 보입니다!
여호수아 2장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약속의 땅을 건너가기 이전에 모압평야 맞은 편에 있는 성읍, 가나안 땅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리고로 정탐꾼들을 보냅니다. 예전에 광야생활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군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샅샅이 훝어 보고 왔지만 불신앙의 보고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여호수아가 정탐군을 보낸 것은 불신앙의 표시가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이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을 확신한 가운데 정탐군들을 보내었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은 두 정탐군들을 숨겨 주고 추격하는 이들을 따돌립니다. 라합이 목숨의 위협을 무릎쓰고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숨겨준 이유는 소문을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어갈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절).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가 기생으로서 자국민에게 천대를 받았기에 이방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신앙이 들어갈 수 없는 철저한 불신의 상황속에 있는 라합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불신의 상황에서라도 믿음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라합은 자기와 가족들의 생명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고백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죄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안식처를 찾은 이의 당연한 태도입니다. 정탐군들은 이 일을 누설치 말 것과 가족들을 집안에 모을 것과 성벽에 붉은 줄을 매어 표를 삼을 것을 조건으로 하여 그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무사히 돌아온 정탐군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간담이 녹았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절).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이미 먼저 행하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 앞서 가시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여호수아 3장
이제 요단강을 건널 차례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싯딤을 떠나 요단강에 도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물을 바라보면서 3일간 머물렀습니다. 3일동안 요단강가에 머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물이 불어나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지 않고는 건널 수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주목하라고 하고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거룩하게 할 것을 명합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절).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단순한 도강(渡江)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미 말씀하셨듯이 그를 높이겠다고 하십니다( 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가 백성들 전방 1km거리에 앞서가게 하셨습니다. 언약궤가 대부대였던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말합니다. 먼저, 제사장들에게는 언약궤를 메고 강물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백성들에게는 언약궤가 요단 강물에 들어설 때에 강물이 갈라질 것이니 그것을 보라고 했습니다. 언약궤가 백성 앞서갈 때에 요단강이 갈라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절).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장서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뒤를 따릅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들어서자 말씀하신 대로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당시는 추수할 때였기 때문에 강물이 언덕까지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의 발은 물속에 잠겼지만 이내 물이 물러나 벽처럼 양쪽으로 쌓였습니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이 강을 지날 때까지 마른 땅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절).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인 우리를 약속의 땅 천국에 반드시 들이실 것입니다.
여호수아 4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에 홍해를 건넌 것처럼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넙니다. 여호수아에게 약속했듯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먼저 무장하고 건넙니다. 나머지 지파들도 다 건넙니다. 마지막으로 언약궤와 궤를 멘 제사장들이 건넙니다.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있던 12돌을 주워오게 합니다. 그리고는 그 돌들을 이스라엘 자손이 진칠 곳으로 가져가게 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가 요단강을 맨발로 건넜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12돌을 길갈에 세워 기념석이 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절). 이 돌무더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돌들’이었습니다.
한편, 이 돌무더기는 이들의 자손이 물으면 대답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도대체 저 돌무더기를 왜 세워놓았냐고 물으면 요단강물이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절). 이 돌무더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길이 길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전시하는 시각자료, 즉 ‘교육하는 돌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밟고 섰던 바로 그 곳에 또 다른 12돌무더기를 세웁니다. 요단강을 좌우해서 양쪽 언덕에 세워진 12돌무더기들은 하나님의 능하심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돌무더기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기억하고, 놀라운 능력을 베푸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절).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놀라우신 능력의 주님을 늘 잊지 않고 그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여호수아 5장
이스라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요단강을 건너자 이것을 들은 모든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이 녹아 내립니다. 이제 여리고를 공격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자손이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절). 가나안 족속들이 자기들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자손을 일거수일투족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다 아파 누워있다면 가나안 족속들이 당장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을 섬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동안에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으며 그 결과 할례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광야 제2세대들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임을 드러내는 할례를 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요단강을 도하한 날은 유월절 양을 선택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단강 도하 사흘 후부터 유월절을 지킨 셈입니다. 이때부터 유월절은 단순히 출애굽에 대한 기념만이 아니라 가나안 입성을 기념하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유월절에는 가나안 땅의 소산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절). 광야여행이 끝났기에 만나가 그쳤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가나안 땅의 소산도 광야의 만나 이상이나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할례를 시행하고 유월절을 준수한 후에 여리고를 향해 이동합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칼을 빼 들고 서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납니다. 여호수아는 자기들을 대적하는 사람인가 하고 경계태세를 취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군대장관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전의 모세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그 땅이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합니다( 절).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군대장관을 앞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나안 땅을 구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해 임재하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어떤 구별된 거룩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복음 들고 가는 곳마다 거룩한 곳이 됩니다.
여호수아 6장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공격할 군사작전을 가르쳐 줍니다. 참으로 이상한 작전입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굳게 닫힌 여리고 성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앞세우고 매일 여리고 성을 돕니다. 언약궤 앞에는 일곱 양각나팔을 잡은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행해야 했습니다( 절). 아마 제사장들은 승리의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동안 묵묵하게 매일 성을 한바퀴씩 돌았습니다. 마지막 7일째에는 성을 7바퀴나 돌았습니다. 그 후에 여호수아의 명에 따라 모든 백성들이 크게 소리치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의 모든 사람들을 쳐 죽입니다. 어떻게 그 튼튼한 성벽이 무너져 내렸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무기와 군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 성을 쳐 부수었습니다.
모든 여리고 성 사람들이 살륙을 당할 때에 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라합의 가족들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모든 전리품들은 여호수아의 말대로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전쟁을 진두지취하신 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후 여호수아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합니다. 폐허가 된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사람은 모든 자녀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절). 가나안 땅의 첫 성인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를 외치는 증거물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재건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노력으로!”를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자녀들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기업의 제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여호수아 7장
여리고 성의 놀라운 승리에 도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 부근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아이 성을 공략하기로 합니다. 아이성은 여리고 성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성이기 때문에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규모 군대를 조직해 쳐들어갔지만 패합니다. 큰 코 다치자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나안 족속들이 힘을 모아 이스라엘을 진멸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대성통곡하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왜 요단을 힘들게 건너게 해 놓고는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여리고 성의 전리품을 훔친 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에 대한 것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것을 훔친 것은 자기 자신을 바쳐야 하는 것을 훔친 것과 같습니다.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절). 아이성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7장이 시작되면서 아간의 범죄,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의 연결을 봅니다. 한 개인의 죄악이 온 이스라엘의 패배를 가져왔습니다.
여호수아가 제비를 뽑습니다. 각 지파별로, 가족별로 제비를 뽑자 유다지파 세라가족 갈미의 아들 ‘아간’(Achan)이 뽑혔습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왜 이스라엘을 ‘괴롭게’(Aakar) 하였느냐고 책망합니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의 모든 가족들을 돌로 쳐 죽이고, 아간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불사릅니다(고전 5:13). 이렇게 해서 생긴 돌무더기가 ‘아골’(Achor) 골짜기입니다. 여기에 언어유희가 있습니다. 죄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그 어떤 것도 나의 것이라고 가로채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 8장
아간의 죄를 해결하고 나자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두려워 하거나 놀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탈취할 물건과 가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할 수 있습니다( 절). 여리고의 전리품들이 오직 하나님께 돌려진 것과 여리고 성을 재건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다 모범의 역할을 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 성의 전리품들은 이스라엘에게 돌려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을 칠 전략을 가르쳐 주십니다. 아이 서편에 군사를 매복시켜 아이를 치라고 하십니다. 다시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거짓으로 패한 척하고 도망치자 지자 아이성 군사들은 이기는 것 같아 신이 났지만 결국에는 매복에 걸려 참패합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왕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녘에 내려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습니다( 절). 누구든지 이스라엘을 대적하면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가나안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인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제단을 쌓습니다. 모세가 명령한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로 만든 제단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여호수아는 그 돌에 모세의 율법을 기록하여 에발 산에 세웠습니다. 모세가 이미 신명기에서 명한 대로 언약궤를 사이에 두고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서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절). 가나안에서의 정복전쟁도 율법에 대한 순종하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성도의 모든 축복과 저주는 오직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 9장
이스라엘의 소문을 들은 가나안 백성들은 두려워 떱니다. 이때 인근에 살고 있던 기브온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꾀를 냅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소문을 듣고 먼 나라에서 왔으니 화친조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 여호수아는 처음에 그들을 의심했지만 기브온의 사신들의 말솜씨에 매혹되어 그들과 화친을 합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절). 즉 하나님의 율법은 분명히 이방 족속들과의 화친을 금하고 있는데 여호수아는 그것을 어겼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찾는 노력이 없이는 늘 실수하게 마련입니다.
며칠 후에 여호수아는 속은 줄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와 기브온 사람들과 왜 화친을 했는지 말하면서 그 화친을 깨라고 말합니다. 기브온을 치자는 것입니다. 족장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과의 화친 조약을 깰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에 속았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화친조약을 맺었습니다. 만약 그 화친 조약을 깨면 오히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절). 하나님 앞에서 맹세할 때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내에서 마음대로 활보해도 됩니까?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이 자기들을 속인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집을 위해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속였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당신들 처분에 맡기겠다고 말합니다. 자기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서라도 살아남기를 바랬다고 말합니다( 절).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굴욕적으로 종살이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복된 것입니다.
여호수아 10장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자 가나안의 방어선이 뚫려 버렸습니다. 가나안 남부의 다섯 왕들이 동맹을 맺어 기브온을 공격했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화친조약에 근거해 하루 밤 사이에 동맹군들을 급습했습니다. 동맹군들이 도망하여 북서쪽의 요새지로 들어가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큰 우박을 내리셔서 수많은 동맹군들을 죽이셨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태양과 달을 향해 멈출 것을 명했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절).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 밤이 되었어도 빛이 남아 있어 하루가 보통 날의 거의 2배나 길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마지막 날에 있을 피조물의 회복을 미리 보여주셨다고 보면 지나친 말일까요?
여호수아는 막게다 굴에 숨어 있던 동맹군들의 다섯 왕들을 붙잡아 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휘관들에게 그 왕들의 목을 발로 밟게 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강하게 할 것을 당부합니다. 가나안의 왕들이 예외없이 이스라엘의 발 밑에 짓밟힐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자신에게 처음에 하셨던 바로 그 말씀을 지휘관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는 다섯 왕들을 죽여 나무에 답니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이제 차례 차례로 남부의 도시들을 점령합니다. 막게다, 립나, 라기스, 게셀, 에글론, 헤브론, 드빌 등이 이스라엘 앞에 무너집니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표현들읋 보십시오. “대항하고 싸워 그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당일에 진멸하여 바쳤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남방의 모든 왕들이며, ‘호흡이 있는 모든 자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절). 하나님은 피에 굶주린 분입니까?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제거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 죄를 제거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교회의 영역 안에서는 죄가 철저하게 제거되어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11장
여호수아는 먼저 가나안의 중부지방을 점령하고서 남북의 연결을 끊었습니다. 그 후 남부의 연합군들을 쳐 부수었습니다. 이제는 북부정복이 남았습니다. 남부의 동맹군들이 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북부에서도 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하솔 왕 야빈을 주축으로 한 동맹군은 해변의 모래같이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강력한 군대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동맹군들이 참패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동맹군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 병거들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절).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왜 남겨두어 이용할 수 있는 말이나 병거를 없앱니까? 이스라엘은 군사력,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솔만 불사르고 언덕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불사르지 않았습니다( 절). 그 언덕위에 건축된 성읍들을 붙태우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성읍에 거주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존해서는 안되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가나안 북부의 동맹군들은 남부지방의 동맹군들이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히위 족속의 기브온 주민들처럼 이스라엘과 화친을 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했던 까닭입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합니다.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절).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완악하게도 부드럽게도 하십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전에 정탐군들이 보고하면서 두려워하였던 거인족 아낙사람을 무찔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수아 12장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왕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왕들을 쳐부수게 하시고 그들이 다스리던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할 땅이 마련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정복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모세로 거슬러 올라가서 말합니다. 모세는 요단강 동편의 두 왕을 정복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들이 다스리던 땅을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에게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 절).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 요단 서편 땅의 31왕을 쳐 죽였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은 이러하니라”( 절). 쳐서 멸한 가나안 왕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읽기에 지겨울 뿐만 아니라 역겨울 수 있지만 얼마나 의미있는 구절인지요. 이스라엘은 세상 그 어떤 왕들보다 나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주의 백성들이 거할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허튼 약속을 하는 분이 아닙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제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세워집니다.
여호수아 13장
여호수아가 남부의 동맹군을 정복하고, 뒤이어 북부 동맹군도 쳐부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절). 쉽게 말하자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속속들이 정복한 것이 아니라 중요도시 중심으로 점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은 기업을 분배받고 난 후 남아 있는 저항세력들과 싸워서 그들을 몰아내어야 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기록이 사사기입니다. 가나안 정복은 도면상의 분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투쟁을 통해 확보해야 합니다. 이처럼 지상의 교회는 투쟁하는 교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복전쟁이 마무리되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기업 분배를 명하십니다. 여호수아의 사명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기업을 분배함으로 끝납니다. 이 일을 하기 전에 성경은 모세가 이미 두 지파 반에게 기업을 나누어 준 것을 언급합니다(민 32장). 요단강 동편의 땅입니다. 나머지 아홉 지파 반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요단강 서쪽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받은 기업을 소개하기 전에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해야 했기에 기업분배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물이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절).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마 5:5).
여호수아 14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 기업분배하는 일을 두려워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서 길갈에 진을 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흩어지면 가나안 족속들에게 각개격파될까 두려웠을 수 있습니다. 이에 유다지파를 대표하여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가장 먼저 여호수아에게 와서 기업분배를 요구합니다. 갈렙은 약 40여년 전에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갈렙이 밟는 땅을 갈렙과 그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절). 갈렙은 그 약속에 호소했습니다. 이처럼 갈렙은 시종여일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의 근거를 두었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달려 있습니다.
갈렙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힘이 약해지지 않아서 능히 싸움에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거인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던 험준한 헤브론 산지를 기업으로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두려워하던 아낙 자손들을 갈렙 혼자서 치겠다고 한 것은 놀라운 신앙의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모한 행동으로 보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다고 굳게 확신했습니다. 노인 갈렙은 늘 청년 같은 놀라운 신앙의 힘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같이 활기찬 신앙생활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여호수아 15장
가장 먼저 유다 지파가 얻은 기업을 소개합니다. 유다 지파는 메시아 지파이기에 약속의 땅에서 기업을 받을 때도 우선적으로 할당받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가 제비뽑은 땅은 헤브론을 둘러싼 남쪽의 광범위한 땅이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제비뽑은 땅의 경계를 소개합니다(1-12절). 하나님께서는 아주 넓은 땅을 유다 지파에게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갈렙이 제비뽑은 땅을 어떻게 취하였는지를 소개합니다(13-19절). 갈렙은 아낙 자손들을 쳐서 헤브론을 차지합니다. 그후 갈렙은 드빌을 쳐서 취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절). 이에 옷니엘이 드빌을 쳐서 악사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악사는 시집가면서 갈렙에게 청하여 드빌 근처의 매우 비옥한 땅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약속의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으로 유다가 제비뽑은 성읍들을 소개합니다(20-62절). 유다 지파가 거할 성읍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활의 구체적인 터전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다 자손이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절). 여부스 사람들이 요새화된 성읍에서 강력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유다지파가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후에 다윗이 이 성읍을 함락하여 예루살렘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계속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16-17장
요셉 지파가 제비뽑아 기업을 얻습니다. 요셉 지파는 장자의 권리, 즉 두 분깃을 얻은 것처럼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기업을 얻습니다. 두 지파는 가나안 땅의 가장 중심지대와 북쪽 모든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우선 요셉 자손의 기업의 경계를 소개(16:1-4)한 후 에브라임의 경계(16:5-10)와 므낫세의 경계(17:1-18)를 소개합니다. 요셉 자손들은 자기들이 한 분깃만 받아 자기들이 거할 땅이 좁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면서 에브라임은 이미 기업으로 할당받은 게셀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고(16: 절), 므낫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산지라도 개척하라고 권면합니다. 요셉 자손들은 산지와 골짜기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철병거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전투기와 핵무기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승리한 비결을 생각하면 이것은 핑계거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찌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17: 절). 오늘날도 개척자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는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개척자들입니다.
여호수아 18-19장
이스라엘 군대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백성이 살 땅의 중심 실로에 회막을 세웁니다. 유다와 요셉지파는 자기들이 살 땅을 이미 받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머지 7지파는 약속의 땅을 분배받는 일을 주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의 정복전쟁은 가나안의 모든 성읍 하나 하나 다 정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지파들이 자기들이 기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가 계속해서 정복전쟁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주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가 나머지 지파들을 호출합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18: 절)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 3명씩 나가서 분배받을 땅을 지도에 그려오라고 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소극성과 여호수아의 적극성이 분명하게 대조됩니다.
각 지파의 대표자들이 나가서 자기들이 살 땅을 그려 왔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려온 땅을 가지고 제비를 뽑습니다. 각 지파가 그려온 땅을 그대로 받았을까요, 아니면 제비를 뽑았기 때문에 다른 지파들이 그려온 땅에 들어가 살기도 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하는 땅을 주셨을 것입니다. ‘베냐민’은 유다와 요셉 지파가 받은 땅 사이 부분을 분배받습니다(18:11-28). ‘시므온’은 유다지파가 받은 땅 중의 일부를 받습니다(19:1-9). 유다지파가 너무 넓은 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것은 야곱이 예언한대로 시므온과 레위가 자기 누이 디나를 위해 히위족속을 칼로 친 것 때문에 저주받아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인한 것입니다(창 49:7). 그리고 스불론(19:10-16), 잇사갈(19:17-23), 아셀(19:24-31), 납달리(19:32-39), 단(19:40-48) 지파가 각각 기업을 분배받습니다.
레위 지파는 기업분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제사장 직분 자체가 그들의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18: 절).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기업을 받습니다(19:49-51).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수아가 요구한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기업으로 받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들 산지를 받아 개간하여 자기들의 기업으로 삼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그도 하나님의 한 백성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지파가 살 땅이 분배되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20-21장
모든 지파가 다 기업을 제비뽑아 가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지정해 주십니다(20장). 이 도피성은 의도하지 않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한 사람들이 도망가서 살 장소였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절). 살인자는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도망하여 그 성읍 입구에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자기 사정을 아룁니다. 그가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거짓말이 드러나면 그가 도피성에 들었다가 하더라도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살인자는 그 도피성에 들어가서 거주하다가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고 난 이후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이 보복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업이 계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기업은 인간적인 실수로 제외될 수 없습니다.
레위지파의 족장들이 자기들이 살 땅을 구합니다(21장). 자기들은 다른 지파들처럼 제비뽑아 얻은 땅이 없었기에 다른 지파들이 얻은 땅에서 일부를 나누어 주어 거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에 다른 지파들이 자원하여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에게 자신들이 유업으로 받은 땅을 나누어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기업에서 이 성읍들과 그 목초지들을 레위 사람에게 주니라”( 절). 형제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입니다. 이에 레위지파 세 가족(그핫, 게르손, 므라리 가족)들은 모든 이스라엘 지파 속에 퍼져 살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도 도피성 헤브론과 다른 성읍들과 목초지를 받았습니다. 총 48성읍들과 그 주위의 목초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흩어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계속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들의 가르침을 받는 한 하나님에게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레위지파까지 땅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이 마침내 성취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절).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이스라엘과 맞장뜰 자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드디어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여호수아 22장
약속의 땅 분배가 끝나자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편에서 기업을 받은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를 돌려보냅니다. 그들은 이미 요단강 동쪽 땅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에게 약속했듯이 오랜 기간동안 가족의 품을 떠나 정복전쟁을 충실하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편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수많은 전리품들을 주면서 가족들과 나누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가는 그들을 향해 변함없이 율법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절).
어떻게 된 일인지 요단강을 건넌 세 지파는 요단 강가 언덕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큰 제단이었습니다. 제사는 제단이 있는 실로에서만 드려져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분리시키는 것이 됩니다. 즉 이단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단 동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배교의 위험을 간파하고 군대를 동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치러 올라갑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절).
이스라엘 군대는 공격전에 바알브올에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나타냈던 비느하스를 보내어 조사하게 합니다. 비느하스는 요단 동편의 지파들에게 바알브올의 죄와 아간의 죄를 언급하면서 이스라엘을 저주로 몰고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요단강을 다시 건너와 서쪽에서 유업을 받은 우리들과 같이 거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이들 지파는 자기들이 쌓은 단이 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편, 자기들에게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요단강이 자기들과 나머지 지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에 나중에 요단간 서편이 지파들이 자기들을 보고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요단 동편의 자기들도 서편의 백성들과 하나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제단을 쌓았다고 말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동편의 지파들과 싸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그들은 한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양했습니다.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다”( 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입니다!
여호수아 23장
늙어 에브라임 산지의 고향으로 물러나 있던 여호수아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앞에서 고별사를 했듯이 여호수아도 고별사를 합니다. 우선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싸워주신 사실을 언급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절). 하나님이 거룩한 용사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민족이기에 그들을 위해 친히 싸워 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모세의 율법대로 살아가야 할 것을 당부합니다.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절). 이것은 여호수아 자신이 처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입니다. 율법책을 떠나지 않을 때에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소극적인 면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나안 족속들과 통혼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절) 하나님께서 그 민족들을 쫓아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스라엘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게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과 이스라엘 자손이 겪은 것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선하신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상한 것은 죽음을 앞두고 불안증이 도진 것일까요? 하나님의 선한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불길한 말씀도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절). 여호수아는 광야여행시 겪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한 눈 팔지 말고 계속해서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복받기 위해 온갖 우상을 섬기면 그들이 가나안 족속들처럼 멸망할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상 중에 선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24장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기 직전에 요단강이 내려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도 세겜에 백성들을 불러모아 언약을 갱신합니다. 세겜은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나그네로 살았지만, 그는 땅 한 평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바로 그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장소입니다(창 12:6-7).
여호수아는 아브라함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의 백성과 함께 하셨는지를 역설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를 섬기든지 자기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합니다. 여호수아의 말에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들이 알고 이 말을 했을까요? 그들이 말한 대로 지킬 수 있을까요? 그래서 두번째로 여호수아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절). 그러자 백성들은 일제히 ‘진정으로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소리칩니다. 세번째로 여호수아는 너희들이 스스로 증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자기들이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네번째로 여호수아는 이방신들을 제거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다시 한번더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갱신한 언약을 율법책에 기록했습니다. 또한 큰 돌을 세워 언약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언약을 갱신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습니다. 요셉의 뼈는 세겜에 장사되었습니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 그리고 후손들에게 맹세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을 떠날 때에 자기 시신을 메어가 달라고 말입니다(창 50:25). 요셉의 소망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셉의 뼈를 거두어 메고 나왔고 이제 약속의 땅에 묻었습니다. 요셉은 죽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약속은 죽음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 엘르아살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여호수아가 예견한 대로 배교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절). 배교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