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Stumbling block’(걸림돌) to ‘Stepping-stone’(디딤돌)>
[1] 닉 부이치치(Nick Vujicic)란 사람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참 멋있고 괜찮은 사람이다. 닉만큼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의사들은 무엇이 그토록 심한 선천성 결함을 유발했는지 지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내가 그리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스럽다. 부모님께 차라리 죽여달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2] 사지가 없는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복음 사역자로 세우셔서 세계 곳곳에서 그분의 영광을 돌리고 있음을 본다. 현재 그는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게 된 과정을 전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시련을 이야기할 때면 아픔을 지닌 사람들은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닉 부이치치처럼 장애를 가진 이가 자신의 시련을 이야기할 때면 그와 흡사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은 깊은 동질감에 큰 위로를 받게 된다.
[3] 아픔과 고통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것들을 경험한 이들을 위로하려 하면 제대로 된 위로라 할 수 있겠는가? 닉의 메시지가 어째서 그토록 놀랍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사지 없이 태어난 최악의 장애자였기 때문이다. 닉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해서 큰 감동과 도전을 주고 갔다.
[4] 그가 자주 찾아가는 제3세계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곤 한다. 심지어 짐처럼 여겨져 쓰레기통에 버려진 채 개죽음을 맞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닉은 이런 비참한 인생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목적과 의미를 알려 준다. 그가 하는 말은 삶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닌다. 특히 장애자로서 정상인과 다름없이 해내는 여러 가지 행동들은 엄청난 감동을 준다.
[5] 닉의 메시지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해줄 뿐 아니라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도 자녀를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도와준다.
그들은 닉의 강연을 통해 소망의 메시지를 듣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닉의 삶을 통해 소망의 메시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Be the Message』의 저자인 Kerry Shook이 닉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6]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팔다리를 준다고 하시면 어떻게 할래요?” 닉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절대 싫어요. 지금은 하나님이 이 장애를 통해 더 큰 영광을 받으신다는 걸 잘 알거든요. 오해하지는 말아요. 예전에는 수도 없이 하나님을 의심했지요. 화가 나고 짜증이 폭발할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나를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걸 잘 알아요. 하나님은 나의 장애를 통해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답니다.” 정확한 고백이다.
[7] 성경에서 잘못 인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구절 하나가 있다. 바로 롬 8:28절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구절을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선하다는 뜻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인내하면 결국은 삶이 잘 풀리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둘 다 아니다.
[8]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은 ‘선한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악한 것’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결론은 선을 이루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더 주의해야 할 점은 ‘선을 이루느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만사형통’이나 ‘일이 잘 풀림’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결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9]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그분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이다.
요셉이 총리가 되기 전엔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총리가 된 이후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
[10] 창세기 37장과 38장의 내용을 요셉을 주인공으로 해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요셉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이해해서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요셉이 긴 세월 동안 고난과 억울함 속에서도 신앙으로 잘 참고 인내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애굽의 총리로 높이셔서 마침내 그가 출세 성공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너무도 잘못된 생각이다.
[11] 본문은 요셉의 ‘인간승리’ 또는 ‘신앙승리’를 보여주고자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럼 요셉의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성경적으로 옳은 해석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자신을 노예로 팔았다가 훗날 애굽에 양식을 사러 온 형들 앞에서 드러낸 요셉 자신의 해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창 45:5~8절의 내용이다.
[12]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13] 그렇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 팔려온 것이 자기 개인 한 사람이 총리가 되어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생명을 보존하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누가 요셉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처음부터 하나님이 노예로 애굽에 팔려가게 하지 않으셨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요셉은 침도 삼키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14] “절대 싫어요. 예전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의아해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잘 알아요. 비록 내가 억울하게 형들과 보디발 아내의 악한 시도 때문에 노예와 죄수로 살긴 했었어도, 하나님은 그들의 악을 선용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실 기회로 삼으셨다는 사실을요.”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모든 사건을 이해할 줄 아는 눈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생각이다. 그렇다. 이게 참 성경적인 관점과 신앙관이다.
[15] 창세기 37장과 39장에 기록된 요셉의 이야기는, 그가 온갖 고난과 수모를 다 당하다가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요셉 자신의 ‘개인영웅담’이나 ‘개인성공담’이 아니라, 자기 백성인 야곱과 그의 후손들을 구원하시고자 열 두 형제 중 한 사람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셔서 총리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감동적인 구원역사의 스토리’로 이해해야 한다.
[16] 오늘 우리 중에는 닉처럼 요셉처럼 화나고 억울하고 원통하게 느껴지는 일을 경험하고 있는 분이 없는가?
타인의 악한 의도에 의한 나쁜 행동들을 하나님이 선용하심으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는 족히 비교가 안 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실 줄 확신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