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김중만 사진작가와 예술과 삶을 이야하며...한창옥의 줌인.포엠포엠 여름82호]
의사였던 부친을 따라1971년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로 갔다. 1년 뒤 혼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수료하였다. 그림을 그리다가 기숙사에서 친구가 5분 만에 현상하는 사진의 매력에 빠진다.
프랑스에서 톱클래스였던 그는 프랑스 엘르. 보그와 작업중에 귀국하여 1985년외국 국적 자가 신고하지 않고 전시회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향방도 모르고 무조건 첫 출발 비행기로 계획되지 않은 낮선 장소에 버려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두 번이나 국외로 추방당해 일본. 미국, 아프리카로 떠돌며 추락의 시련을 겪는다. 20대 후반 혈기왕성할 때다. 1988년 한국국적을 회복한 후 여러 잡지사와 작품사진, 인물사진, 패션사진을 찍었다. 1995년에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에서 사진학을 강의했으며 NEOLOOK편집인으로 일했다.
벽면,바닥에 그림같은 사진들은 자연의 색채처럼 시대를 기록해온 피사체가 아니었을까
포엠포엠을 생각하며 쓴 글이라며 노트를 펼쳐놓는다.
‘마사이 마라’에서 ‘아프리카 케냐’에서 야생동물 찍던 세계적인 작가는 포엠포엠 카메라 앞에 어색함.
포엠포엠지에 나갈 자료사진을 제자가 프린트해오고...
한창옥 시집을 들고 사진 찍어달라며 귀여운 포즈,
카리스마는 접고 순수하게...
세계적 사진작가도 카메라 앞은 쑥스러워요(칠부바지 v넥셔츠,귀걸이 목걸이.발가락.발목발찌.타투는 이분만의 상표)
사진집'포 에이즈 원 로드' 는 매진
김중만 사진작가와 성국 포엠포엠 출판대표
인터뷰중 한창옥 발행인
카메라 앞에서 옷울 여미는 김중만 작가
작업실에서 내려와 주차장
첫댓글 아주 멋지십니다.
김중만 작가님과
포엠 대표 두분님도~^^
느슨한 삶을 생각하다가도
한창옥 발행인님을 보면서 걸음에 힘이생깁니다
감사합니다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들었습니다.
김중만작가께서 공항에서 국외로 추방 당할 때
" 당신들이 나를 예술가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고 했습니다.
내가 시를 쓰면서 외부적인 일로 힘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를 했더랬습니다.
" 당신들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나" 라고요.
그리고 저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진정 존경스럽습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당시,실제 환자는10%뿐이었다고한다
'내일'이 '희망 '이 없어서 그냥 미친척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은 억울한 생각을 버렸다고...
김중만 사진 작가님의 트레이드마크인 레게 머리가 생각납니다. 여름호에서 작가님을 만날 수 있다니 반가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