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단(肇慶檀)의 '조경'은 경사스러움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로 새 왕조의 건립을 뜻합니다. 전주가 조선왕실의 발상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렇듯 조경단은 조선왕조의 출발이며, 조선왕조의 혼이 영글어 있는 곳입니다. 조경단은 고종이 1899년 단을 쌓고 비석을 세우는 등 각별한 관심을 두고 정성을 다하여 보호한 곳입니다.
당시 시기는 일본에 나라가 먹히느냐 마느냐 하는 극도로 불안정한 시기였으므로, 당시 조선인들은 그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조경단을 돌보는데 더욱 정성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은아 학우는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의 묘역을 관리함으로서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전주 이씨"라는 가문의 단결력을 모으려고 한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경단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입니다. 지금까지 조경단은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폄하하는 식민사관에 의해 저평가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정훈 학우는 조경단이 청명 시대 베이징의 천단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혜영 학우는 이처럼 조경단이 조선인의 아픔과 바람과 의지가 깃든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경하 학우는, 전주에 살면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유적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앞으로는 우리 주변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적 먼저 관심을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지산(乾止山)은 조상에게 안녕을 비는 조경단의 선산입니다. 은아 학우가 본 건지산은 잘 조성된 산책길에 나무가 우거져서 있어서 자연의 소리를 벗하여 산행하기에 좋았습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건지산은 조경단과 전북대학교를 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규 학우는 건지산을 둘러보며 전북대학교가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같이 인공적인 건축물이 가득 차 자연을 느끼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 대학은 건지산을 끼고 있어, 각박한 삶 속에서 자연적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캠퍼스라고 생각합니다. 선명 학우는 상규 학우의 의견에 동의하여, 건지산은 우리 학교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으므로 우리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북대학교(全北大學校)는 한국의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조경단과 건지산은 외국인 학생들에게 자랑할만한 큰 역사적 유산입니다. 캠퍼스 근처에 이러한 중요한 유적을 가진 대학교는 전북대학교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이런 강점을 살리지 못하는 전북대와 전주가, 경하 학우는 안타깝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정훈 학우는,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을 청산하고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역사를 바로 세워 조경단의 가치가 빛을 발한 때 비로소 전북대와 전주가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에 선명 학우는 물론 그것이 우리 스스로부터 노력하고 이루어 나가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상규 학우는 과학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조경단은 조선왕조의 혼이 담긴 곳이라서 그런 것인지 전주는 늘 자연재해를 피해 가는 게 아마도 조선왕조의 혼이 담겨 있어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왕조의 출발이고 기틀인 전주, 그 속에서도 중심인 조경단을 끼고 있는 우리 대학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품어야겠습니다.
전북대학교 학생들은 캠퍼스 안에서의 좁은 대학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유적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 넓은 대학을 다녀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선명 학우는, 전북대학교와 조경단, 건지산이 서로 빛을 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댓글 * 모둠원들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모둠 보고서라 하기 어렵습니다.
수정했습니다.
1) 이러하 사실에서 은아 학우는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의 묘역을 관리함으로서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전주 이씨"라는 가문의 단결력을 모으려고 한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2) 하지만 정훈 학우는 조경단이 유교 국가인 대한제국에서 청명 시대 베이징의 천단 수준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