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온누리가 몸살을 앓고 있는 2023년 여름,
광복절이 지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더위는 여전하고,
게다가 2차 장마니 하는 비 예보는 우리팀의 일정을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성지기가 일이 있어 빠진 채로 8월 22일 (화) 06:30분에 갈마역 3번 출구 밖에서 만나 떠난다.
오늘은 음력 7월 7석, 견우 직녀 일년에 한번 만났다 헤어지는, 그래서 눈물 흘리며 헤어진다는, 눈물이 비가 되어 내려 칠석 치레 하는 날, 내일은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인데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잠이 덜 깨서 그런지, 다들 얼뻥하다. 나는 정부청사역까지 오버런하고,. 조금씩 늦고..
대전 IC를 빠져 나와서 서울쪽으로 달린다.. (중부고속도로)음성휴게소에 잠시 들린다. 8시 19분이다.
휴게소 화단에 나있는 수박이 애처롭게 보인다.
그것도 생명체라고, 꽃피고,열매까지 맺은 모습이 기특하다.
09:27. 멀리 치악산 줄기가 차창 밖으로 구름 속에 보인다. 원주 근처를 지나가고 있다.
웬 터널이 긴가 했더니 둔내터널이란다. 길이가 3.2km, 한참을 달려 속사인터체인지로 빠져 나와 왼쪽으로 운두령 국도길로 들어선다.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 소리가 들리는 듯하는 초등학교 옆으로, 분교도 지나고 생가터로 가는 길도 지나서
도착한 곳이 운두령고개(1089m) 정상 주차장이다. 10:40분이 다 되어 간다. 4시간 걸렸다.
두리번 거리고, 볼 일도 보고, .. 지도 안내도도 보고.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정상 서쪽 평창 쪽에는 높다란 풍력발전용 날개가 거의 미동도 않고 있다.
날씨 걱정을 하면서 왔는데, 아직은 좋은 날씨이다.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운두령(雲頭嶺).
지도도 들여다 보고,
지형도 안내도도 들여다 보고.
현위치 산림생태관리센터 앞에 차를 세워두고 헬기장, 전망대, 계방산 정상 등도 머릿속에 담는다.
계방산 정상까지 거리는 총 4 1.km 소요시간 올라가는데 3시간, 내려오는데 2시간 30분.
우리들 걸음으로야 더 걸리겠지.
10:40분. 드디어 오르막 계단을 찾아 올라간다.
산지기 만보는 20년 전에 와 봤다는 데, 그때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한다.
작은 산지기 보배는 별르고 별러서 오고, 나는 그냥 덜렁덜렁 따라 나선 길.
야트막한 산에 웬 나무다리가 몇 개나 있는지 그냥 건너간다.
길이도 시간도 모른 채 그냥 걷는다. 나는 신발이 무겁다고 핑게대고 맨발등산을 시도한다.
돌무더기(돌탑)가 보이는 곳에서 인증샷 하나 눌러본다.
12:06 제법 시간이 지나갔다.
탐방로 안내도를 들여다 본다.
정상까지 4.1km 중 2.1km 왔으니 절반 가까이 온 셈이다. 그런데
어려운 구간이 앞에 있다. 그것이 끝난 곳에 전망대가 있고. 아이쿠, 큰일이 났다.
내 맨발 산행을 걱정스럽게 보는 산악인이 있다. 대청봉에서 만났던 맨발 산행하는 84세 노인 이야기도 슬핏 들려준다.
다른 일행 두 명(만보, 보배)에 대해 걱정스런 투로 말을 한다.
12:09 첫 만남 (조우). 등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젊은이 두어 명 본 정도가 전부이다..
- 급한 돌계단이 끝인 줄 알았더니 진짜 난코스 구간이 우리를 기다린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돌계단, 길기도 하다.
계단 공사를 하려고 하는지 공사 자재를 헬기로 날라다 놓은 것들이 군데군데 올라가면서 보인다. 4무더기..
그 사이를 뜷고, 올라오는 일행들을 맞이한다.
만보는 아예 웃옷까지 벗고. 12:59분.
급경사 구간 올라오기 전에 간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는데. 기운이 남아 있는지 뚝심으로 오른다.
13:02 급한 계단 구간도 거의 끝나가고,
드디어 전망대가 나타난다. 야생화도 여기저기, 평평한 곳에
노란 점 표시 부분이 계방산 정상. 아직도 멀다.
전망대에 올라 주변 산세도 보고 확인하고..오후 2시가 넘었다.
갈 길도 먼데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천리라는데)을 거꾸로 ' 일도모원'이라고 해서 웃고...
쉬엄쉬엄 가면서 야생화도 보고 안내문 설명도 읽고.
그런데 하늘이 수상해진다. 비가 오려나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칠월칠석 치레하려나
1492m 높이 지점. 1492년이 생각나게 하는 지점.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해....
빛깔도 곱고 생김새가 특이해서 보배한테 물으니 '투구꽃' 이란다.
투구를 닮아서 얻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 못 미쳐서 비를 만난다.
준비한 우산을 쓰고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조심조심 올라간다.
도중에 이미 정상에 먼저 올라간 아까 안내지도판에서 만난 산행인이 평상에서 쉬다가 비가 내려서 내려온다고 말한다.
맨발 산행 중인 나에게 뱀 조심하라고 당부한다..내려 갈 때는 신발을 신으란다.
등산로가 좁아서 길옆에 난 풀이 발목을 툭툭칠 정도이니 뱀을 만나면 큰일이다.
맨발에, 반바지에, 뱀 만나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 .
덜컥 겁이 난다. 사나운 돌길보 더 무서운 뱀.
어쨌거나 정상에 제일 먼저 도착한다. 14:47분이다.
지도에 나온 예상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초과했다.
(가는) 비는 내리고, 안개는 자욱하고..
헬기장 너머로 평상도 있고. 계방산 표석도 있고 돌탑도 있고 전망 사진 안내판도 있고.
혼자서 맨발 인증샷도 찍고 ,
발을 대충 씻고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일행들이 올라온다.
남한에서 다섯번째 높은 산 : 계방산 (1577m)
1. 한라산(1950m) 2. 지리산(1915m) 3. 설악산(1708m) 4. 덕유산(1614m )
5. 그리고 계방산이란다.
6번째는 만항재에서 올라간 바 있는 함백산(1573m)이고.
그러고 보니 내 생전에 한번씩이라도 다 다녀본 산이다.
다섯번 째 산 계방산은 나에게는 맨발로 올라 온 첫번째 산이기도 하고...(덕유산 향적봉도 있지만)
2021년 11월에 표석을 세웠다. 동서남북 방향 표시도 선명하고,
고산자 김정호 : 대단한 한국인이다. 조선8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지도를 만들어내다니 그것도 판각으로까지 해서.
한 인간의 집념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계 같은 것을, 극한을 보여준 대단한 위인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사진 안내판을 보면서 주변 산세도 보면 좋을 테지만, 오늘은 날씨가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을 밟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드린다. 돌탑을 쌓은 정성과 마음에.
< 계방산 정상에서 > 각자 놀음이다.
15시가 넘었다.
다시 왔던 길로 내려 가야 한다. 4.1km
비는 더 이상 심하게 내리지는 않고 안개비처럼 수그러든다.
조심조심 내려오다 전망대를 그냥 지나치려는데, 전망대에서 쉬던 누군가가 부른다.
쉬었다 가라고. . 아니 아까 보았던 그 사람이 아닌가!
세번째 만남이다. 첫 만남이 조우라면, 두번째 만남은 재회이고. 세번째는 무어라 하는가? 구면인가?
그냥 가려다가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눈다.
친절하게 먹을 것을 권한다. 물도, 있고, 음료수도 있고, 초코렛 종류도 있고. 아낌없이 준다.
이것 먹어야 피로가 풀린다면서, 캔 음료도 준다.
조금있다 나머지 일행 두 명도 합세해서 휴식을 취한다.
비는 멈췄지만 안개는 사방에 가득하니 구름 위를 거니는 신선(神仙)이 된 기분이다.
거기다 먹을 것, 마실 것, 푸짐한 경험담, 주로 뱀이야기를 들으면서.
보아하니 우리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에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거기에 얻어 먹기까지 하고. 원 염치가 있어야지. 마음씨 좋은 산 아저씨인지,
산에서 이런 귀인(貴人)을 만나다니.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개띠 생이란다.
만보하고 띠동갑이라 농을 나누고는 또 하산길을 재촉한다.
향기나는 좋은 산(계방산) 에서 향기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맛본다.
15:47 분 오후 4시가 다되어 가는데 정말 갈 길은 멀고. 아마도 오후 6시가 훨씬 넘어야 주차장에 도착할 것 같고,...
발은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깊은 산속 어둠은 빨리 다가오는데..
그야말로 일모도원이다. (부여 대재각에서 보았던가?).
- 마음씨 좋은 분(오른쪽 모자 쓴 사람) -
엉겅퀴꽃 같은데, 곤드레 나물 이란다. 정식 학명은 '고려엉겅퀴'라고 하고,
또 한 가지 배우고 간다. (우리동네에 강원도 곤드레 나물 밥 잘하는 데 있는데.)
아래로 내려 올수록 조릿대(산죽) 군락이 질펀하게 펼쳐져 있다.
5년에 한 번 꽃이 피면 죽어버리고 그 열매가 다시 싹이 터서 자란단다.
다 죽은 곳도 가끔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런 나무다리가 5개가 넘는다.
자세히 보니 다리 아래로는 교통호가 있고, 어떤 곳에는 캐리버 50 발사대 시멘트 거치대까지 남아 있고, 울진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작전과 관계된 된 것인가?. 순간 생각이 든다.
이승복어린이 기념관이 고개 바로 아래 있고 보면. 더욱 그렇다..
- 드디어 도로가 보이고 풍력발전 시설도 보이고 -
마침내 계방산 탐방 원점 회귀 순간이다.
18:32분이 넘어간다. 거의 8시간 가까이 걸린 대장정이다.
아직도 우비를 걸친 채 어기적어기적 거리면서 내려오는 한 사람.
고개 주차장에는 우리 차만 남아 있고 길 한편에 있던 차 안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난다.
또 만난다. 아까 전망대에서 봤던 그 산사나이.
귀인(貴人)이다. 네번째 만남이다.
걱정이 되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의 캔 음료수와 초코렛 과자 등을 한움쿰씩 앞앞에 쥐어준다. 이것 먹으면 피로가 빨리 풀린다면서.
차에 많이 갔고 왔다면서.
이런 고마울데가.. 한번 만남도 아니고 네번씩이나...
- 음료수 캔 이랑 과자를 주고는 총총 걸음으로 되돌아 가는 서울 귀인의 모습-
서울까지 갈길이 먼데도 늦은 그 시각까지 기다려 주다니,
늙은이 셋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란다
.감사함도 잠시 통 성명도 못하고 그저 전화번호나 알려주고는 그냥 각자 반대 방향으로 헤어진다..
서울양반은 홍천 방면으로가고, 우리는 문막에 들려 저녁을 먹고 대전으로 향한다.
오늘 하루도 좋은 사람 귀인을 만나서 아무 탈없이 멋진 산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감사한 하루, 향기 가득한 산행길이었다.
(2023년 8월 24일(목) 자부리 씀)